사회

밤낮 없는 실적 스트레스…임원 25시

거듭난 삶 2010. 2. 1.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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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은 5%라고요? 밤낮 없는 실적 스트레스…임원 25시는 고달프다

[중앙일보]

2010.01.31

한국에서 임원으로 산다는 것

기업 임원 자리는 경제적 부와 사회적 명예가 따르지만 그만큼 부담과 스트레스도 큰 자리다. 한 기업체 임원이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중앙포토]
대기업 임원은 샐러리맨의 꽃으로 불린다. 군대에서 말하면 ‘별’을 다는 것과 비슷하다.

임원이 되면 연봉이 껑충 뛰고 승용차가 지급된다(일부 기업은 승용차 유지비 전액 지원). 비서가 딸린 별도 칸막이의 사무공간이 주어지고, 골프장 회원권과 월 100만원 넘는 판공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혜택도 적지 않다.

하지만 혜택만큼 부담이 만만치 않다. 분기·반기별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게다가 노조가 보호해 줄 수 없는 계약직이기 때문에 언제 ‘해고 통보’를 받을지 모른다. 통상 상무보가 상무로 승진하는 비율은 20~30%에 그친다. 3년 후면 같이 진급한 상무보 동기 가운데 절반 이상이 회사를 떠날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임원은 ‘임시직원’의 준말이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막중한 책임=현대자동차 그룹 임원인 L씨는 매일 오전 4시40분에 기상해 6시까지 출근한다. 7시부터 임원회의가 있어 한 시간 먼저 출근한다. 8년째 같은 생활이다. 그는 부장 때만 해도 7시에 출근했었다. 하지만 임원이 되고 나선 다름 임원들과 보조를 맞춰야 했다. 임원들은 6시 반 이전에 출근하는 데다 토요일에도 평상시처럼 출근해 점심 이후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그는 “급여가 많아져 집에서는 좋아하지만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스트레스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SK그룹 주력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B씨. 요즘 배기량 2700㏄ 고급차인 K7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서울파이낸스센터의 헬스클럽을 이용할 수 있는 연간 회원권도 받았다. 그러나 걱정이 적지 않다. 자신이 책임지는 업무영역도 넓어졌고 참석해야 하는 회의도 늘었다. B씨는 “부장 때보다 1시간은 일찍 눈이 떠져 오전 7시10분이면 회사에 도착한다”며 “일찍 나오는 데 불만은 없지만, 숙면을 못하는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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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직원에 대한 책임감도 훨씬 커진다. 또 다른 대기업의 이모(52) 상무는 “내 실적이 나쁘면 그게 부하직원의 성과급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노심초사할 때가 많다”며 “부서 실적을 위해 독려했는데 ‘저 혼자 출세하려고 저런다’는 말이 들릴 땐 씁쓸하다”고 말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5대 그룹 계열에서 일하는 50대 초반의 이모 상무는 동기 중에서 가장 빨리 임원이 됐다. 벌써 6년차다. 이 상무는 “처음엔 시기와 질투에 시달렸다”며 “임원 되더니 달라졌다는 말이 돌고, ‘그 일은 부하직원이 다 한 것’이라는 뒷말이 나왔다”고 털어놨다. 이어 “특히 임원 1~2년차 때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임원이 되면 친구를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이 상무는 “밥 사고, 술 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만능 컨설턴트’도 아닌데 주위에서 너무 많은 것을 상담해와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고 전했다.

좌절과 공허에 빠지지 않으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50대 초반의 대기업 홍보담당 모 임원은 “홍보 임원이 저녁 약속도 없으면 무능하다는 말을 들을까 봐 별 필요 없는 일정을 잡는 경우도 있다”며 “그러나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정시에 퇴근해 집에서 정서적인 안정을 취한다”고 말했다.

◆젊어 보이려 주름 펴기도=임원들이 자신의 임기를 가장 걱정하는 때는 매년 10~11월이다. 1년 실적의 윤곽이 대체로 이때 드러나기 때문. 실적이 부진했다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조용히 성형외과를 들락거리기도 한다. H사의 임모(59) 전무는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기 위해 점 뽑고 주름 펴는 것은 기본 노력”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주변에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면서 정신과를 찾기도 하지만 대개는 병원 출입기록을 남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건설업체 D사의 L모(59) 부사장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등기이사 임기가 오는 3월 만료되는데 그 전에 사표를 써야 할지 고민 중이다.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1952년생 이전 태생’은 대표이사 빼고는 사표를 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돼서다. L 부사장은 “마음을 비웠다”며 “5월에 아들 결혼식을 잡아놨는데 그게 제일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태진·김선하·이상재 기자

임원이 되면 … 

삼성
· 승용차 그랜저나 오피러스 2.7, SM7 중 선택 가능
· 상무보 평균 연봉은 1억5000여만원, 연봉의 50%가량을 성과급으로 별도 지급
· 항공 비즈니스석, 골프 회원권, 정밀 건강검진 등 혜택

현대·기아자동차
· 평균 연봉 1억5000만원 선, 성과급 별도
· 법인 휴대전화, 골프 회원권 등 사용 가능
· 상무부터 별도의 집무실과 업무 보조하는 비서 배치

SK
· 배기량 3000㏄ 이하 승용차 사용 가능
· 업무 보조 비서 배치, 100만원대 건강검진 혜택 등

LG
· 부장 때보다 연봉 100%가량 인상
· 본인과 배우자 건강검진, 상해보험 등 혜택 자료: 각 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