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임원으로 산다는 것
기업 임원 자리는 경제적 부와 사회적 명예가 따르지만 그만큼 부담과 스트레스도 큰 자리다. 한 기업체 임원이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중앙포토] | |
임원이 되면 연봉이 껑충 뛰고 승용차가 지급된다(일부 기업은 승용차 유지비 전액 지원). 비서가 딸린 별도 칸막이의 사무공간이 주어지고, 골프장 회원권과 월 100만원 넘는 판공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혜택도 적지 않다.
하지만 혜택만큼 부담이 만만치 않다. 분기·반기별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게다가 노조가 보호해 줄 수 없는 계약직이기 때문에 언제 ‘해고 통보’를 받을지 모른다. 통상 상무보가 상무로 승진하는 비율은 20~30%에 그친다. 3년 후면 같이 진급한 상무보 동기 가운데 절반 이상이 회사를 떠날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임원은 ‘임시직원’의 준말이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막중한 책임=현대자동차 그룹 임원인 L씨는 매일 오전 4시40분에 기상해 6시까지 출근한다. 7시부터 임원회의가 있어 한 시간 먼저 출근한다. 8년째 같은 생활이다. 그는 부장 때만 해도 7시에 출근했었다. 하지만 임원이 되고 나선 다름 임원들과 보조를 맞춰야 했다. 임원들은 6시 반 이전에 출근하는 데다 토요일에도 평상시처럼 출근해 점심 이후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그는 “급여가 많아져 집에서는 좋아하지만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스트레스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SK그룹 주력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B씨. 요즘 배기량 2700㏄ 고급차인 K7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서울파이낸스센터의 헬스클럽을 이용할 수 있는 연간 회원권도 받았다. 그러나 걱정이 적지 않다. 자신이 책임지는 업무영역도 넓어졌고 참석해야 하는 회의도 늘었다. B씨는 “부장 때보다 1시간은 일찍 눈이 떠져 오전 7시10분이면 회사에 도착한다”며 “일찍 나오는 데 불만은 없지만, 숙면을 못하는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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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따가운 시선=5대 그룹 계열에서 일하는 50대 초반의 이모 상무는 동기 중에서 가장 빨리 임원이 됐다. 벌써 6년차다. 이 상무는 “처음엔 시기와 질투에 시달렸다”며 “임원 되더니 달라졌다는 말이 돌고, ‘그 일은 부하직원이 다 한 것’이라는 뒷말이 나왔다”고 털어놨다. 이어 “특히 임원 1~2년차 때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임원이 되면 친구를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이 상무는 “밥 사고, 술 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만능 컨설턴트’도 아닌데 주위에서 너무 많은 것을 상담해와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고 전했다.
좌절과 공허에 빠지지 않으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50대 초반의 대기업 홍보담당 모 임원은 “홍보 임원이 저녁 약속도 없으면 무능하다는 말을 들을까 봐 별 필요 없는 일정을 잡는 경우도 있다”며 “그러나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정시에 퇴근해 집에서 정서적인 안정을 취한다”고 말했다.
◆젊어 보이려 주름 펴기도=임원들이 자신의 임기를 가장 걱정하는 때는 매년 10~11월이다. 1년 실적의 윤곽이 대체로 이때 드러나기 때문. 실적이 부진했다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조용히 성형외과를 들락거리기도 한다. H사의 임모(59) 전무는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기 위해 점 뽑고 주름 펴는 것은 기본 노력”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주변에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면서 정신과를 찾기도 하지만 대개는 병원 출입기록을 남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건설업체 D사의 L모(59) 부사장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등기이사 임기가 오는 3월 만료되는데 그 전에 사표를 써야 할지 고민 중이다.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1952년생 이전 태생’은 대표이사 빼고는 사표를 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돼서다. L 부사장은 “마음을 비웠다”며 “5월에 아들 결혼식을 잡아놨는데 그게 제일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태진·김선하·이상재 기자
임원이 되면 …
삼성
· 승용차 그랜저나 오피러스 2.7, SM7 중 선택 가능
· 상무보 평균 연봉은 1억5000여만원, 연봉의 50%가량을 성과급으로 별도 지급
· 항공 비즈니스석, 골프 회원권, 정밀 건강검진 등 혜택
현대·기아자동차
· 평균 연봉 1억5000만원 선, 성과급 별도
· 법인 휴대전화, 골프 회원권 등 사용 가능
· 상무부터 별도의 집무실과 업무 보조하는 비서 배치
SK
· 배기량 3000㏄ 이하 승용차 사용 가능
· 업무 보조 비서 배치, 100만원대 건강검진 혜택 등
LG
· 부장 때보다 연봉 100%가량 인상
· 본인과 배우자 건강검진, 상해보험 등 혜택 자료: 각 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