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합한 사람
행 13: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약 사백 오십 년간)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본문은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중에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행한 전도 설교의 한 부분입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얘기의 한 토막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로 고생할 때에 큰 권능으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았고 광야 40년간의 부족한 고생을 참아냈고 가나안 땅에 일곱 족속을 멸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얻어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후에 초대 왕 사울을 통하여 국가로 성장하였고 다윗 왕 때에 이르러 크게 번영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다윗을 세우시며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삼상 13:14)에 보니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야 이스라엘 왕이 될 것입니다.
이새의 여덟 아들이 순차로 사무엘 앞에 나와 뵈올 때 제 1차로 장자 "엘리압"이 나왔습니다. 키가 크고 용모가 준수하였으니 엘리압 자신도 장자요 키가 크고 미모의 인물을 자부하였으려니와 사무엘 선지자도 그렇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합당히 여기지 아니하시사 (삼상 16:8)에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 차남 "아비나답" 다음 삼남 "삼마"가 나왔으니 다 합격하지 못하였고 장자로부터 칠남까지 다 낙방하였습니다.
장자의 조건, 인물 됨됨이의 미모의 조건, 학식의 조건, 수완 등 자기의 특징을 다 자부하였으나 하나님 앞에는 이 모든 것이 쓸데가 없었습니다. 제 칠남은 행운을 기다렸을는지도 모르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는 이 모든 조건들이 소용이 없었습니다.
맨 나중 막내 "다윗"이 불리워 왔습니다. 이때는 다윗 같은 막내 어린애는 왕 되기에는 너무 주제넘은 생각이라 하여 선택하는 좌석에 아예 데려오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목동에 지나지 않은 무자격자이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마음에 합한 사람이기에 (삼상 16:12)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이 마음에 합하다고 기름 부을 수도 없고 만민의 마음에 든다고 이스라엘 통치자가 될 수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야 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합한 자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게 할 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신앙을 가진 자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입니다.
다윗의 형제들은 모든 조건을 다 훌륭히 갖추었으나 믿음이 시원치 않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것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모두 신앙의 노래인데 그 중에 23편은 다윗의 시로 다윗의 시편 중에 만인이 애송하는 시입니다. 이 시는 베들레헴 목동 시절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을 때 지었던 시입니다.
양떼를 지키는 목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가 되기에 합한 자였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과 불레셋 대장 골리앗과의 대결에서 다윗의 신앙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골리앗이 막대기와 물매를 가지고 싸우려 오는 다윗을 향하여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오느냐 내게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짐승에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말하기를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답하였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싸움에 나가 물 맷돌 하나로 골리앗의 머리를 정통으로 마치어 단번에 대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닙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있었고 이 믿음이 있는 까닭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외모가 훌륭하고 멋있게 잘 생겼을지라도 그런 외형적인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 있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히 11:6)에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이 있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믿음으로 잘 되고 축복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성도들에게 이런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하겠는데 오늘날 이상하게도 믿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믿음의 은사를 충만히 받아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에는 역사가 따르는 법입니다.
미국의 역사 중에 남북 전쟁의 시기에 치열한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상하게 북군이 남으로 내려갈수록 실패를 합니다. 그 때 사령관은 당황한 나머지 대통령에게 정황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각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우리 북군이 남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패전을 하고 돌아오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고 낙심 중에 보고합니다. 링컨 대통령은
"여보시오. 사령관! 사령관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 줄로 믿습니까? 죽은 것으로 믿습니까?"라고 도리어 질문을 했습니다.
"그거야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그래요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신가요? 아니면 불의의 하나님이신 가요?"
"그야 물론 의의 하나님이시지요" 그러면 사령관에게 한 마디만 더 묻습니다.
"사령관이 지금하고 있는 전쟁은 의의 전쟁입니까? 불의의 전쟁입니까?"
거듭 묻게 되자 낙심 중에 있었던 전쟁 사령관은 두 말을 못하고 용기 백배하여 나아와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의의 하나님이요 의로운 자의 편이신데 이긴 줄로 확신한 믿음으로 가지고 싸우게 될 때 마침내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심 없이 믿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다윗은 사랑의 사람인고로 하나님 마음에 들었고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이에 다윗도 때로는 사랑하기 힘든 자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1) 다윗은 자녀를 사랑했고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아버지를 왕위에서 내쫓고 자기가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부왕 아버지를 죽이려고 쫓아다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피신하면서도 그를 미워했다는 말이 한 마디도 기록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쫓던 장남 압살롬은 나뭇가지에 머리가 걸려 대롱대롱 걸려 있을 때 다윗의 장군의 칼에 찔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때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통곡하면서
"압살롬아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을 뻔 하였노라!"고 하면서 그런 불효자식을 위하여 울었다는 걸 볼 때 그는 얼마나 사랑의 사람이었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2) 다윗은 친구도 많이 사랑한 자입니다.
원수이기도 하였을 사울왕의 아들인 "요나단"과 친구인데 이미 몰락해버린 가문이 되었지만 그 친구 요나단이 죽은 후에도 그의 유일한 후손인 다리를 저는 병신아들 "므비보셋" 을 평생을 보살펴 주고 그를 자기의 상에서 같이 식사를 할 정도로 사랑을 했던 것입니다.
3)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까지 사랑했고
사울왕은 자기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많은 국민들이 영웅시하는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다니었지만 다윗은 그의 칼날을 피해 다니면서도 한 번도 복수를 하려고 하지도 아니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려고 했더라면 여러 번 기회가 있지만 한 번도 그에 대한 복수를 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4) 하나님을 사랑했고
그가 쓴 시편 句句節節을 다 읽어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말씀을 빼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만큼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충만해 있는 면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사랑의 은사가 충만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진 것입니다.
다윗이 바로 이와 같은 점에 있어서 하나님의 합한 사람이요 축복의 사람이라면 바로 우리도 그와 같은 사랑의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다윗과 같은 좋은 은혜를 받고 살게 될 것입니다.
3. 다윗의 기도한 점이 하나님이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고
다윗 왕을 가리켜 聖君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임금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죄가 없어서 죄를 짓지 아니했기에 성군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왕도 무서운 죄를 범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왕은 나라가 적군과의 전쟁 중에 있으면서도 어느 날 낮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그때는 전쟁이 일어나면 임금이 전쟁 최전선에 나서서 진두지휘를 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다윗은 왕궁에서 낮잠을 잤었습니다. 그는 낮잠에서 깨어나 산책을 합니다. 옥상으로 올라가 시원스럽게 기지개를 켜면서 사방을 보는 순간 그의 눈이 멈추게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의 눈은 저 건너편 집에 "우리아" 장군의 아내인 "밧세바"가 목욕하는걸 보게 되고 그 순간 그에게는 음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다윗은 일선에서 선전 분투하는 장군의 가족을 각별히 돌봐 주고 보호해 줄 책임이 있는 것이어늘 도리어 장군의 아내를 불러드려 동침하는 무서운 음란죄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또한 얼마 후 밧세바에게서 쪽지 한 장이 전해졌는데
"왕이시여 당신의 생명이 내 배에서 살아서 숨쉬고 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에 다윗은 이 음란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일선에서 용전하고 있는 우리아 장군을 긴급 소환하고 아내와 동침하게 함으로 자기의 죄를 숨기려는 계략을 꾸미려 했습니다. 그러나 애국 애족의 사람 우리아 장군은 지금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때에 아내와 평안한 잠을 잘 수 있느냐고 하며 왕궁 뜰에서 뜬눈으로 밤을 세우는 책임감있고 충성스런 용사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또 일선 군단장에게 통치하기를 우리아를 최일선 철책부대로 보내라는 것이요 전쟁을 하다가 우리아만 두고서 후퇴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대로 시행했더니 이번에는 우리아가 계략대로 전사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음란죄에다가 살인죄를 범하면서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완전범죄가 이루어지리만큼 완벽하게 죄가 덮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까지는 속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나단 선지를 불렀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의 죄를 책망케 했던 것입니다. 이에 다윗 왕은 나단 선지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신약에서의 헤롯왕은 선지자 침례 요한이 바른 말을 한다고 목 베어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의 위대한 점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나단의 말을 듣고 나니 마치 전광석화와 같이 깨닫는 마음이 생기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침상을 적시리 만큼 눈물로 회개했던 걸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을 불러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셔서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삼상 16:13)에 보면 "이 날 이후 여호와의 신이 다윗에게 크게 감동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에게는 성령을 물 붓듯이 충만히 주사 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을 여호와의 신에 감동케 하셔서 그가 붓을 들면 詩人이요, 비파를 들면 音樂家요, 검을 들면 勇壯이요, 법을 잡으면 政治家요, 법궤 앞에 서면 宗敎家입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한 메시야가 다윗의 씨를 통해서 나셨으니 곧 예수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누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까? 죄를 짓지 아니하고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또한 잘못한 점이 있다면 곧 바로 회개하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4. 다윗의 순종한 점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은 자기 스스로 제사장직을 수행함으로 하나님의 성역의 축복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세우신 선지자를 무시함으로 곧 하나님의 권위을 무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명령을 불순종하여 아말렉왕 "아각"을 개인의 기쁨으로 살려 보내고 우양(牛羊)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지 않고 자기의 욕심으로 사용하려고 끌어왔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음으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선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택할 왕은 순종의 왕, 신앙의 왕이 아니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순종의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칼을 피해 광야 피난 시절에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였고, 전쟁터에서도 순종하였고, 초장에서 보좌로 올라 왕좌에 있을 때도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다윗왕은 순종 왕의 모범이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역대 제왕을 경계하실 때도 내 종 다윗 같이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왕상 9:4).
사울은 무용자요 민심을 잘 수습하는 정치적 역량이 있는 자이었으나 하나님에게는 순종치 않은 왕이었고 다윗은 사울보다는 이런 점은 미흡했으나 순종의 왕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초장에 있을 때나 옥좌에 있을 때나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여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던 자로 자기를 내세우는 일 없이 항상 하나님을 내세워 하나님 뜻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5. 다윗의 충성심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고
다윗은 어릴 때 아버지의 양을 치는 보잘것 없는 목동이었습니다.
(삼상 17:34)에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의 새끼를 음키면 내가 따라가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라고 했습니다. 누구하나 보는 이 없는 벌판에서 홀로 양을 칠 때도 양 한 마리의 생명을 위해 충성하였던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같이 사람이 안보는 현장에서도 조그마한 양 한 마리를 위해서 이같이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대 목자로 쓰시려고 온 백성을 그에게 맡기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 25장에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충성을 다하여 갑절의 결실을 맺은 두 달란트 및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을 향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더 큰 일을 맡기리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4:2)에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부지런하여 양을 치는 데 열심이었으며, 장성하여 나라 일에 치신 치수 선정을 베풀었고, 또한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목재와 석재와 철재와 많은 금을 준비하기에 얼마나 열심이며 노력하였습니까? 이런 충성을 하나님은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낮고 높고 천한 것이 있겠습니까? 적으나 크나 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를 들어 사용하시고 축복을 하십니다. (눅 19:17)에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도록 살아봅시다.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의 삶을, 충성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6. 나단 선지자의 책망에 죄를 회개한 점이 마음이 들었고
다윗은 하나님께 범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대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나단 선지자의 지적과 동시에 하나님께 깊은 회개를 하였습니다(삼하 12:7-14). 그리고 그는 범죄와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았습니다.
1)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나단선지자의 지적에 대하여 즉시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잘못 판단하신다거나 혹은 명백히 드러난 죄에 대하여 그저 어물어물 넘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기의 죄를 깨달음과 동시에 즉시로 회개하였습니다.
다윗은 어떠한 변명이나 핑계가 자기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시 않는 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죄를 하나님 앞에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고 의로우사 사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실제로 자기의 범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을 때 나단은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였나니 당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2) 자기의 죄악성을 깨달았습니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노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3).
다윗은 자기 자신이 순간적인 실수로 인하여 범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죄의 요소가 표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밧세바의 사건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죄 속에 파묻혀 살고 있으며 언제든지 죄를 범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자기가 범죄치 않고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의 도우심뿐이라는 사실까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0-11)
이것은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과 일치합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7장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3) 자범죄 뿐 아니라 원죄도 깨달았고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다윗은 밧세바와의 관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중에 자기에게는 원천적인 죄의 욕망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는 그는 그 원천적인 죄에서 욕망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하는 중에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죄중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어렴풋하게 원죄의 교리를 밧세바의 사건을 통해서 확연히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러한 사실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시 51:6)고 했습니다.
다윗의 이같이 깨닫고 회개하는 모습을 여호와께서는 그의 중심을 보시고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7. 다윗의 의리적인 면이 마음에 들었고
(삼하 23:)에 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5 다윗이 사모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니이다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16"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목이 말랐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의 용사들이 길어 온 베들레헴의 우물물은 자기가 마실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의 신복들이 사선을 돌파하고 길어 온 물을 그의 개인의 육체적인 목마름 요구에 채워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성경 여러 경우에서 볼 수가 있는데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사로잡아간 연합군들을 파한 후 승전하고 돌아올 때 소돔 왕이 나아와서 노획한 전리품을 취하라고 했으나 그것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친 것뿐입니다. 이유는 나중에 소돔왕이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자기(소돔왕) 때문에 치부하였다 할까 하여서입니다(창 14:13-24).
이는 참으로 인간의 방법으로 얻은 물질을 원치 아니하고 여호와만 믿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아람 나라 군대 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 후에 그가 엘리사에게 예물을 드릴 때 그것을 거절하였습니다(왕하 5:16). 그도 대의에서 행동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청도교의 지도자 "크롬웰"의 군대가 가는 곳에는 패전이 없었습니다. 승리 뿐 이었습니다. 이 군대는 도덕과 윤리 교육이 항상 맑고 밝았습니다. 그의 군사들은 이혼자가 없었습니다. 그는 영국 왕관을 세 번이나 얻을 기회가 있었으나 모두 거절하였습니다.
우리는 좋아해야 할 것이 다른 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명백하게 나타내는 사람이 되려고 하면 명백한 의리를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이런 의미에서 세 용사들이 길어 온 물을 자기 육체의 만족을 위하여 감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같은 점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왕상 15:5)에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막 10:21)에 보면 예수께서 한 부자 청년을 향하여 네가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하신 바가 있습니다.
이같이 다윗에게는 한 가지 밧세바를 취한 일 외는 모두 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힘썼던 사람입니다.
그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였을 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죄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는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찾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