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은 지구를 돌고 있다. (북한이) 5일 우주로 쏘아올린 광명성 2호는 지금 이 시간 위성궤도를 돌고 있다.”
적어도 평양에서는 이게 진실이다.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 등 관영 선전매체들은 발사 사흘째인 8일 밤까지도 ‘위성의 성공적 발사’를 되풀이 보도했다.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서 현장을 지켜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만족을 표시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있던 그 자리에서 “폭풍 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라 장내를 진감케 했다”는 보도도 이어진다.
열기는 평양뿐 아니다. 유엔 주재 신선호 북한대사는 뉴욕 유엔본부에서 외신기자들에게 “우리는 매우 행복합니다. 로켓 발사는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축하해줘야 한다는 주문도 덧붙였다. 그는 정말 행복하고 감격스러운 표정까지 지어보였다.
이 정도면 가히 집단 최면 상태라 할 수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체가 ‘위성 궤도 진입’이라는 주문을 외우고 외워 사실로 믿게 된 상황이 온 것이다. 이럴 수밖에 없는 속사정도 있다. 북한이 쏘아 올린 로켓 광명성 2호는 김정일의 아호(雅號)를 딴 명칭이다. 1994년 7월 사망한 김일성은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일을 ‘광명성’으로 부르길 즐겼다. ‘조선 민족을 인도하는 별(지도자)’이란 의미다. 광명성 2호는 김 위원장의 분신인 셈이다. 그러니 북한 로켓은 발사대를 떠난 순간부터 궤도 진입 성공이 예고돼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코 다시 떨어져서는 안 될 광명성이었기 때문이다.
로켓 발사를 둘러싼 북한의 이런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8년 8월 31일 쏘아 올린 대포동 1호의 경우도 성공적 궤도 진입을 주장했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가 위성으로부터 전송돼 오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맑은 날 육안으로 위성을 볼 수 있다면서 주민들에게 하늘을 주시하라고 독려했다. 당시는 아무 예고없이 쏘아올렸고 장거리 미사일로 간주돼 이런 터무니없는 선전행태가 북한 당국의 치기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국제사회에 평화적 우주 이용을 위한 로켓 발사라며 장거리 미사일 개발 움직임이란 의혹을 일축하려 했다. 그랬기 때문에 위성 궤도 진입이 이뤄지지 못한 이번 발사는 실패일 수밖에 없다. 북한은 9일 열릴 최고인민회의 12기 회의에서 또 한 번 위성 발사 성공쇼를 벌일 예정이다.
안타까운 건 북한의 고급 간부나 일반 주민 등 2300만 명 가운데 누구 하나 김정일 체제가 벌이고 있는 집단적 허구 의식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패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김정일 위원장도 ‘궤도 진입 성공’ 보고에 기뻐하며 관계자들과 사진 찍는 허세를 부려야 한다.
그렇지만 지도자부터 어린아이까지 동원된 쇼는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11년 전 대포동 1호 때와 북한의 사정이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당간부뿐 아니라 주민들이 외부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루트가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단기적으로 체제 결속 약발이 먹힐지는 모르지만 곧 엄청난 후유증을 겪을 것이란 얘기다. 집단최면에 빠진 북한에 기상나팔을 울려줄 지혜로운 대북정책을 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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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은 돌고 있다” 집단 최면 걸린 평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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