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섹시 한류 걸그룹 돌풍

거듭난 삶 2010. 10. 2.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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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귀여운 것들 비켜!
 

소녀시대·카라·브아걸·포미닛 등 섹시 한류 걸그룹 돌풍
한겨레
» 1. 지난 8월 소녀시대의 일본 쇼케이스 모습(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18일 일본 도쿄 요요기 체육관에서 열린 걸스어워드 2010 추동복(F/W) 무대. 지루한 듯 패션쇼를 지켜보고 있던 객석 여기저기에서 갑자기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귀에 익은 강한 비트의 음악소리가 행사장 안에 울려퍼지고, 조명이 켜지자 늘씬한 다섯명의 미녀들이 서 있다. 멤버 전원 90년대생, 5인조 걸그룹 포미닛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까지 조용하던 관객석은 “꺄~” 하는 함성으로 뒤덮이고, 현란한 춤과 노래에 넋을 잃는다. 좀 전까지 일본에서 인기있는 아티스트가 나오고 모델이 런웨이를 걸을 때도 시큰둥하던 1만5천명의 관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포미닛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다. 포미닛뿐만 아니다. 이날 행사 테마곡은 일본 데뷔 한달도 지나지 않은 소녀시대의 노래 ‘소원을 말해봐’(GENIE)로 선정되었고, 행사장에는 일찌감치 소녀시대의 복장과 헤어스타일 등을 고스란히 따라한 ‘코스프레’를 한 일본 소녀들이 가득했다. 걸스어워드는 2009년부터 시작된 젊은이들의 패션행사이지만, 이날은 패션보다는 포미닛, 소녀시대의 라이브 무대를 목적으로 행사장을 찾은 팬들도 많았다.

» 2. 브아걸이 지난 13일 일본의 유명 방송인 잇코와 함께 벌인 ‘레츠 시건방 이벤트’의 한 장면(제이피뉴스 제공)

요즘 일본에서 한국 걸그룹은 행사장이나 공연장 등 특정 장소뿐 아니라 도심 곳곳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도쿄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집결하는 신주쿠에 가면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가 간간이 들린다. 경쾌한 멜로디와 소녀들의 예쁜 목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는 사람도 있고, 길게 뻗은 각선미에 홀린 듯 뮤직비디오에 시선을 고정하다 디브이디 매장으로 들어가는 남성도 목격된다. 소녀시대, 카라의 디브이디 발매 포스터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된 반면, 일본의 국민아이돌 여성그룹으로 불리는 에이케이비48(AKB48) 포스터는 그 옆자리로 밀렸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도쿄 중심가에서 케이팝(K-POP)이 흘러나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부야의 명물 대형 전광판에서 카라의 뮤직비디오가 흐르고, 10대 소녀들은 소녀시대 코스튬플레이에 열광한다. 가장 먼저 일본을 방문했던 카라는 8월에 〈미스터〉 앨범을 내고 오리콘 위클리 차트 5위, 현재까지 앨범판매량 6만장을 넘겼다. 그보다 조금 늦게 〈지니〉 앨범을 발매한 소녀시대는 첫 주에만 4만~5만장 판매를 기록하며, 해외 여성 아티스트 최고의 성적인 오리콘 위클리 차트 4위를 기록했다. 각 방송사는 이들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8월부터 9월 두달간 일본 신문, 잡지는 한국 걸그룹 열풍에 대한 특집기사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 3. 소녀시대 쇼케이스를 보기 위해 줄을 선 일본인들(연합뉴스)

NHK 9시뉴스 머리기사로 ‘소녀시대’ 공연 다뤄

점잖고 딱딱하기로 유명한 일본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 9시뉴스는 지난달 22일 소녀시대의 첫 일본 쇼케이스 공연을 이례적으로 머리기사로 전하기도 했다. 〈엔에이치케이〉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한국 걸그룹 열풍을 진단하고 “춤, 노래, 외모를 갖춘 한국 걸그룹을 여성팬이 동경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일본 걸그룹은 귀엽고 친근한 매력을 내세우지만 한국 걸그룹은 철저하게 멋있는 스타일을 유지한다. 이런 차이는 일본 연예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며 핑크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 내 우파적 시각을 대표하는 잡지 〈주간 신초〉는 지난 8일 발행호에서 소녀시대 등 한국 걸그룹 돌풍을 다루면서 아마추어 분위기가 나는 에이케이비48에 비해 소녀시대는 외모, 실력 모두 완벽하기 때문에 팬들을 빼앗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다소 호들갑스런 우려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일본 내 한류붐은 몇년 전부터 계속돼온 현상이지만, 한국 걸그룹의 인기는 기존의 한류를 한단계 진화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여기에는 5인조 남성그룹 동방신기가 큰 몫을 했다는 게 대다수 일본 연예관계자의 지적이다.





2004년 〈겨울연가〉 욘사마 붐 이후 한류의 주 소비층은 중년여성이었다. 최근 1~2년 새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동방신기 덕분에 일본 내 한류 중심이 드라마에서 가요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 3. 소녀시대 쇼케이스를 보기 위해 줄을 선 일본인들(연합뉴스)

2006년 신인 가수로 일본에 진출해 바닥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온 동방신기는 그동안 갈고닦은 유창한 일본어 실력과 뛰어난 외모, 성실한 매너로 한류스타를 넘어선 아티스트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31일 일본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엔에이치케이〉의 홍백가합전 출장, 일본 가수들의 꿈이라는 도쿄돔 10만명 동원 콘서트, 지난해 일본 음원판매 3위 등 외국인 아티스트로서는 이례적인 인기를 누렸다. 동방신기 인기는 팬들을 자연스럽게 케이팝으로 끌어들였고, 특히 유행에 민감한 10대, 20대 젊은 팬들이 소녀시대를 비롯해 한국 가요계를 이끌고 있는 걸그룹에 눈을 돌리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실 한국 여성그룹의 일본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만도, 2004년 일본인 멤버 아유미를 중심으로 4인조 여성그룹 슈가가 일본 진출을 시도했고, 같은 해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던 4인조 여성그룹 쥬얼리가 일본 대형 매니지먼트사와 손을 잡고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는 보아의 성공 이후 에스이에스, 천상지희 등 소속사 탤런트, 가수들의 일본 진출을 꾸준히 시도했지만 이 모든 그룹이 눈에 띌 만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지지부진했던 한류 걸그룹 일본 진출에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 5인조 걸그룹 카라다. 한류팬을 자처하는 일본 인기 개그맨 게키단 히토리의 적극적인 추천이 데뷔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탤런트, 작가로 활동하며 일본 내에서 꽤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게키단 히토리는 자신이 출연하는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요즘 카라에 푹 빠져 있다”며 입소문을 냈다. 대가 없는 게키단 히토리의 홍보활동은 일본 진출을 노리고 있었던 카라에게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서 앨범을 발매하지도 않은데다 정식 데뷔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카라는 지난 2월 3000명 규모의 유료 쇼케이스에 성공했다.

의외로 조용하게 일본 진출을 선언한 여성 4인조 브라운 아이드 걸스(브아걸) 역시 일본에는 없는 스타일로 팬층을 넓혀가고 있다. 2006년 데뷔해 벌써 5년차 중견 아이돌인 브아걸은 멤버들이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하는 싱어송라이터, 실력파 아이돌로 유명하다. 브아걸은 이런 특징을 살려 일본에서도 대규모 팬미팅 대신 마니아층을 다지는 소규모 공연 위주로 내실을 다지고 있다. 브아걸 팬들은 “다른 걸그룹이나 일본 걸그룹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연륜이나 경력에서 드러나는 여유와 농염한 섹시미에 반했다”고 입을 모은다.

» 4. 지난 8월 카라의 일본 데뷔 공연(디에스피미디어 제공)

한국의 걸그룹이 기본적으로 일본을 벤치마킹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걸그룹과 다른 무엇이 있기에 ‘아이돌 소비 선진국’인 일본의 많은 팬들이 한류 걸그룹에 빠져드는 것일까?

두 나라의 중요한 차이점은 한국은 아이돌에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이상형을 요구하지만, 일본 여성 아이돌의 조건은 ‘귀여움’이라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를 풍미한 일본 대표 아이돌 모닝구무스메, 지난해부터 국민아이돌 자리를 꿰찬 에이케이비48을 보면 지나치게 예쁘거나 가수로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각자 개성을 살려 아이돌을 소비하는 계층인 중년남성에게 귀여운 여자아이로 인정받는 것, 그것이 바로 일본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조건이다.

일본 아티스트는 자신의 분야에서 노력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반해, 아이돌은 힘들고 피곤한 현대인에게 보는 것만으로도 힘과 용기를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일본의 아이돌은 가창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완벽한 미인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듯이 아이돌도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5. 소녀시대의 일본 팬들(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새로운 자극에 목마른 일본시장에 섹시 걸그룹이 ‘숨통’

일본 아이돌 시장은 오랜 경험을 통해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발전해왔지만, 정체되어 있어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는 팬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측면도 케이팝 걸그룹이 파고들 여지이다. 자극을 필요로 하던 일본 아이돌 시장에 모델같이 예쁜 외모, 몇년간의 트레이닝을 거쳐 거침없는 호흡을 자랑하는 한국 걸그룹의 인기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소녀시대의 일본팬들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일본 아이돌에 비해 훨씬 성숙하고, 프로 같은 느낌을 준다. 멋지다”고 입을 모은다. 한류 걸그룹 팬 중에 같은 또래의 10대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일본 연예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자신감 넘치고 섹시한 이미지의 한류 걸그룹에 자신을 투영하는 롤모델로 존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6. 거리에 걸린 한국 걸그룹의 음반 발매 선전물(제이피뉴스 제공)

그러나 ‘한국 걸그룹의 미래는 밝은가’라는 질문에 의문을 표시하는 전문가들도 다수 있다. 이제까지 발매된 일본어 앨범은 모두 한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고 검증을 거친 곡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통하는 측면이 있지만, 신곡을 발매할 경우 통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현재 10~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라는 제한적인 걸그룹 소비층이 확대돼 좀더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두고 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또한 2005년 무분별한 한국 영화 수입이 한류 붐에 찬물을 끼얹었듯이, 걸그룹 붐이라고 무분별한 방일 활동은 좋지 않다는 충고도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일본인의 특성과 성향을 파악한 체계적인 홍보활동이 계속되어야 붐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아이돌이 10~20년 장수하는 일본과 비교해 한국 아이돌 수명은 짧은 편이기 때문에, 해체나 멤버 교체 등의 변수가 생길 경우 팬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도쿄=안민정 〈제이피뉴스〉 기자 slion@jp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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