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삶으로의 변화
"(요2:1-1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기쁨이야말로 종교생활의 핵심이요 신앙의 본질이며 다른 모든 종교적인 덕목보다 위대한 것이다. "(A.J.헤셀).
기쁨이 없는 인생은 기름이 없는 램프와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행동의 제재(制裁)를 받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충격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생각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면서도 기쁨이 없다는 사실이다." <막스 러너>
이 말의 뜻은 우리가 자유를 보장받을 때 과연 기쁨도 함께 보장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한마디로 표현해서 '기쁨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진실한 기쁨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 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이러한 말씀들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인생의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표적(2:1-11) 記事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으로, 물이 즉각적으로 기쁨의 상징인 포도주로 변화된 질(質)의 변화이며, 예수님이 "質의 主"(the master of quality)이심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무(無)맛의 물 같은 인생을, 포도주 맛 같은 '기쁨'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권능, 삶의 質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삶에 들어오실 때는 언제든지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것과 같은 새로운 질적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예수없는 인생은 무미건조하고 진부하며, 그가 무엇을 가졌든, 어느 위치에 있든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여러분의 삶이 참된 기쁨의 삶으로 변화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다음으로, 물이 포도주로 변하기까지는 믿음과 순종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너무나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에 시중드는 사람들에게로
가서 예수께서 시키는 대로하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무엇을 하시고자 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가 무엇인가 옳게 일을 처리하시리라는 것을 아주 확신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우리가 가는 길을 알지 못하는 암담한 시간도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우리에게 부닥쳐오는 사건들의 이유와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와같이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서도 신뢰하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 가운데 온전한 순종이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부자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는 하인들을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몹시 부리는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하인들은 늘 불평하며 지내는데, 드디어 할아버지의 회갑날이 되었습니다. 이 날만은 좀 편히 쉬면서 잘 먹을 수 있겠구나 하고 하인들은 좋아하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집 안에 있는 모든 하인들을 불러 놓고 볏단을 주면서 새끼줄을 꼬라고 명령했습니다.
새끼줄을 꼬되 가능하면 가늘고도 길게, 그리고 단단하게 꼬라고 명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인들은 즐거운 잔치날까지 귀찮은 일을 시키는 주인을 원망하며 그저 되는 대로 굵게 성의 없이 꼬았습니다. 전혀 꼬지않은 사람도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만은 시키는대로 순종해서 가늘고도 단단하게 길게 꼬았습니다.
저녁에 구두쇠 주인이 나타나더니 난데없이 엽전이 가득 쌓인 광문을 활짝 열고서는
"그 동안 나를 위해서 너희들 수고 많이 했다. 자기들이 꼬은 새끼줄에 엽전을 가능한 만큼 많이 끼워서 각자 독립하여 자유롭게 살아라."고 깜짝 놀랄 말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자, 어찌 되었겠습니까? 전혀 꼬지 않은 사람은 물론, 굵게 적당히 새끼줄을 꼬은 사람들은 기가 막혔지만, 주인의 말에 순종하여 가늘고 길게 꼬은 사람은 엽전을 한 다발 끼워서 나왔다는 이야기 입니다.
일단 순종하고 나면 나중에 그 뜻을 알게 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닥치는 어떤 사건이나 시련에 대해서 미리 알려고 조급해 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이므로 믿고 순종하는 것만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하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일단 순종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먼저 순종해야 한다고 믿는데 문제의 해결이 있습니다. 표적(Sign)이나 기적은 이처럼 믿음과 순종이 있어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실 때, 직접 하늘을 여시고 오천 명을 먹이실 떡이나 만나를 내리게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소년을 통하여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요구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가 예수님께 바쳐질 때, 이것을 통하여 축사하시고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이적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냥 앉아서 공짜로 기적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누구의 희생을 통해서, 때로는 누군가의 귀한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役事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물고기와 보리떡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필요로 하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물론 그것들이 반드시 있어야만 기적을 행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면,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실 때,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호령하시자마자 즉시 지진이 일어나며, 나사로가 무덤 앞에 막힌 큰 돌을 박차고 나왔으면 더 멋있고 놀라운 이적으로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돌을 옮기는 일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돌을 옮기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실, 시체가 사흘이나 지났으므로 사람들은 의심도 가졌었고 또한 좀 더 빨리 주님이 오시지 않았음에 대해 불평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단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돌이 옮겨져야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기적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도 전에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대로 순종하라는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는 상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寶血)을 의미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삶의 신성한 축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인생의 모든 기쁨을 신성하게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그의 방법대로 추구하지 않으면 인생의 즐거움이란 결코 현실적이거나 지속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기쁨이 결코 베풀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위해 풍성하게 예비하신 것을 누리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바로 죄의 존재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은 오직 의로우신 예수밖에는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신성한 인간의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당신의 삶의 주빈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의 질적(質的)인 변화, 풍성한 삶의 거룩하고 영원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시고 그 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날마다 표적(Sign)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할 인간이 그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기쁨을 상실하였다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참 기쁨의 자리에 다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참 기쁨을 누리시기를 원하십니까? 혹 참 기쁨을 찾기 위하여 이 세상의 것에 연연해하며 동분서주하지는 않습니까?
진정으로 참 기쁨을 누리기 원하신다면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참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 항상 기쁨이 넘치게 하시며 아울러 이 세상 마지막 날 당신을 어여쁜 신부로 맞이하여 완전한 기쁨이 넘치는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