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거듭난 삶 2016. 4. 3.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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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마가복음 9:1529 무리가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아이가 죽은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없느니라 하시니라.

 

 

예화 1)

 

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라는 동화책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하지. 그래서 네가 만일 친구 하나를 만났다고 그들에게 말하면, 그들은 정작 친구에 관한 정말 중요한 질문인

 

친구의 목소리는 어떻든?

어떤 게임을 제일 좋아한다구?

나비 수집을 좋아하는 친구니?

 

이런 질문은 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만 하는 거야.

 

' 아빠가 돈을 얼마나 버신다니?

 

이런 질문을 통해서만 어른들은 사람들을 알려고 하지.

 

만일 네가 그들에게

 

'오늘 너무 멋진 집을 보았어요. 장미빛 나는 벽돌로 만들어지고, 창문에는 제랴늄이 가득 피어있구요,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멋있게 앉아 있었어요' 라고 말하면

 

그들은 전혀 집이 어떤지 알아차리질 못하지.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한단다.

 

'오늘 십만불 짜리 집을 봤어요' 그렇게 말하면

 

'! 정말 멋지겠는 '이라고 말한단다."

 

 

예화 2)

 

인도의 속담에는 詩句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만일 그가 그의 일을 끝내지 않았다면 그가 게으르다고 하고,

내가 일을 끝내지 않았다면 나는 너무 바쁘고 많은 일에 눌려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만일 그가 자기 관점을 주장하면 고집쟁이라 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개성이 뚜렷해서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으면 콧대가 높아서 그렇다 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순간에 복잡한 다른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가 친절하게 하면 나로부터 무엇을 얻기 위해 친절하다 하고

내가 친절하면 그것은 나의 유쾌하고 좋은 성격 때문이라 합니다.

 

 

개의 예화를 소개드렸습니다.

 

우리는 그냥 웃으며 넘겨 버립니다마는 그와 내가 이렇게도 다르니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악하고 이기적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남을 돌아볼 아는 사람, 자신을 넘어서고 이웃을 생각할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자기 것에만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유아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자신의 문제에만 묶여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앙의 초보자들에게 많이 사용하시는 것은 기적적인 사건입니다. 놀랄 만한 일들의 연속이지요. 그래야 그들이 변덕없이 믿음을 지켜갈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사역의 초기에는 이러한 기적사건들의 연속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뀝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삶을 송두리째 꿰뚫어 보셔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합니다.

 

가버나움의 왕의 신하가 한마디로 병에서 고침을 받습니다.

 

38년이나 병자도 낫습니다.

 

겨우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습니다.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역의 마지막 단계로 가면 갈수록 기적보다는 오히려 말씀을 주심으로서 계속적으로 우리의 믿음을 갖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같이 너희도 계명을 지키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이렇게 말씀으로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기적을 보이시기보다 말씀하면서 주의 제자가 되도록 요구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의 단계에서 만나는 사건들입니다.

 

중에 가지, 중요한 ‘기도의 삶’에 대한 신앙을 배우고자 합니다.

 

다니엘이 예레미아 25장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통치 원년에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년수를 깨달았나니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예언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해 포로로 잡혀 갔는데 70년이 되면 해방되어 되돌아 온다."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금년이 70년째 이니까 가만히 있어도 해방이 되겠구나. 고향으로 가기 위해 준비하자" 라는 생각을 다니엘은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에 우리는 다니엘이 취했던 행동을 보면서 그의 믿음을 배우십시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하나님 여호와께서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9:3-4)

 

예언의 말씀을 읽고 다니엘이 취한 행동은 금식하며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고 자복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다니엘이 기도에 들어간 결과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9:22)"

 

기도했던 다니엘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일을 생각하고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백성과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9:23-24)"

 

이미 하나님의 예언이 되었지만 다니엘이 기도하였을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성도의 기도가 땅에서 하나님께로 올려감으로 하나님의 뜻이 아래 땅에서 이루어 것입니다.

 

3 6개월 동안 이스라엘에 비가 오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날을 지내고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18:1)

 

그러나 곧바로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과연 언제 이루어 주셨는가를 지금 살펴 보십시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 땅에 끓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왕상18:42-43)"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엘리야는 그대로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 무릎 사이에 이마를 땅에 대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환에게 비오는 구름이 나타났는가 여부를 살펴보라 했습니다.

 

"없습니다!"라는 사환의 말을 일곱 되풀이 들었을 때까지 하나님의 응답은 시원치 않았습니다.

 

"일곱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왕상18:44)

 

7번째로 다녀와서

 

"바다에 손바닥 만한 구름이 떴나이다." 라는 사환의 말에 엘리야는

 

"됐다. 왕에게 가서 피할 준비를 하시라"라고 지시를 합니다.

 

하늘에 구름이 없을 지라도 바다 편에 손바닥 만한 구름 점을 보고 그것이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을 엘리야는 알게 되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그러한 기도를 했습니다.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것인즉) 심은 알리라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36:36)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신다는 것을 듣고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모습을 갖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음절에서 말씀하십니다.

 

"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36:37)

 

하나님은 이루기를 결정 하셨지만, 땅에서 주의 백성들의 기도하는 음성이 하늘에 올라올 때에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성경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누구를 허물잡기는 쉽습니다. 위로는 대통령에서 밑으로는 국회의원, 야당, 여당 친구, 아내까지도 비판하고 욕하기는 쉽습니다.

 

엘리야가 하늘을 향해 기도했던 것처럼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예수를 믿기 시작한 때부터 하늘나라에 가는 날까지 우리는 기도생활을 꾸준히 해야 하는데 혹시 나에게도 기도의 부족함이 없는가를 스스로 살피고 더욱 노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삼상12:23)"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년 동안 메시아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 아셀 지파 바누엘의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일곱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된 팔십 사년이라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2:36-38)"

 

늙은 할머니 안나의 소망은 메시아 오기를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나라는 지체도 없고 보잘것 없고 힘없는 소박한 할머니 분이 기도하던 때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본문 말씀은, 벙어리 귀신들린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예수님) 계시지 않을 "귀신아 물러가라!" 기도해 보았지만 낫게하지를 못해서 소년의 아버지가 다시 예수님께 와서 부탁을 하는 장면입니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9:22-23)"

 

믿는 자에게는 능치 일이 없다는 놀라운 교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못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가정, 직장, 사회생활 등에서 믿는 사람으로 모든 일을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음을 겪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똑같았습니다. 제자들이 답답해서 저녁에 물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들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물어야 질문입니다.

 

"주님, 주님은 믿는 자는 수있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귀신들린 소년을 고치지 못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십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없느니라 하시니라(9:29)"

 

믿으면 되는데 믿음에 기도를 더해야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기도가 빠진 믿음은 아무것도 없는 힘없는 믿음이라는 것을 제자들 스스로 입증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 이외에는 능력있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1. 신앙의 인물들은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의 시간을 잃어버리기보다는 차라리 사자와 함께 있는 길을 선택했고,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사람 하이드는 30 동안을 밤낮으로 기도만 하기도 했습니다.

 

수백만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돌이킨 당대 최고의 복음전도자인 D.L 무디는 기도를 통하여 능력을 받았습니다.

 

마틴 루터는 "오늘 일이 많이 있지만 처음 3시간은 기도로 보내리라." 다짐했고,

 

사무엘 차드렉은 "악마의 한가지 관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악마는 우리가 기도할 때는 떤다." 했습니다.

 

아드니람 저드슨은 "진심으로 기도하면 어느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응답이 온다." 했습니다.

 

 

2. 기도는 응답과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주실 준비가 되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너희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 하셨고 ,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받게 하려 함이니라(15:16) 하십니다.

 

로이드 죤스는 “인간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과 마주하고 앉을 가장 위대하고 가장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3. 기도의 영향력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십자가의 수난을 앞에두소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기도의 힘으로

십자가의 수난을 능히 감당할 있었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실 있었습다.

 

 

4. 기도는

 

심장박동과 같은 것이고,

비행기의, 자동항법장치와 같은 것이며,

군사기지의, 레이더와 같은 것입니다.

 

인간에게, 심장 박동이 멈추면, 죽음을 의미하고,

비행기의 자동항법장치가 멈추면, 비행기는 추락을 의미하고,

군사 기지의 레이더가 작동을 멈추면, 패배를 의미하기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이만큼, 기도는 중요한 것입니다.

 

5. 기도를, 호흡이라 말합니다.

 

호흡을 4분만 멈추면, 사람의 생명은 죽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를 안하면, 영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다음부터는 분별력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6. 기도를 안하는 사람을 보면

 

신앙생활이 지극히 수양적(修養的)이며, 이성적이며, 교리적이며, 종교적인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잠시 후에, 다가올 십자가 사건의 사연들에서 얼마나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알았었다면, 아마도 기도 시간에 잠들어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

한국교회에, 그리고 나라와 민족 앞에,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

가정 속에, 있어야 좋은 여러 가지

직장 속에, 있어지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에도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안일하게 잠들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기도 안하는 사람일수록, 이성과 논리(論理) 발달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기준과 뿌리가, 이성과 상식에 근거한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영의 소리에 근거를 둡니다.

 

우리는 미래를 정확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미래에 다가올 어려움에 대하여, 준비하라 하시는 성령의 감동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됩니다. 안주할 없습니다.

 

7. 우리는 다시 겟세마네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처럼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나름대로 기도를해야 합니다.

 

기도 안하면, 잔머리만 굴리게 됩니다.

기도 안하면, 잠에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십자가 같은 고생도, 넉넉히 감당할 있게 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소망을 품고 인내할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곳은 겟세마네동산 입니다.

기도 없는 주의 일은, 자기야망이 됩니다.

기도할 없을 만큼 바쁘다면, 일이 무엇이든 그것은 우상입니다.

세상에 기도하는 일보다 중요하고 바빠야 일은 없습니다.

기도를 대신할 만큼, 중요한 일도 사실은 없습니다.

 

인간의 심장을, 대신할 만한, 다른 장기가 없고,

비행기의 항법장치를, 대신할 만한 다른 기계가 없고

레이더를, 대신할 만한 무기는 없듯이...

기도 또한 그렇습니다.

그것이 목회든, 선교든, 구제든, 예배든,

 

삶의 우선은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기도 없는 리더십들과, 사역자들이 우글거려서 큰일입니다.

그들은 천지분간을 못하는 소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어찌될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일을 해주셨기 때문에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캐나다 앨버타에 사는 크로푸트라는 인디언 부족의 족장이 있었습니다.

 

1885년에 대규모 인디언 폭동이 일어났는데, 크로푸트는 자기의 부족을 평화 가운데 인도하면서, 저들의 폭동에 가담하지 않고 진정을 시켜 놓았습니다.

 

캐나다 정부에서는 그것을 감사하는 표시로서 크로푸트에게 평생 동안 캐나다 열차를 무료로 이용할 있는 선물로 기차표를 주었습니다.

 

크로푸트는 기차표를 받고 감사하는 표시로서 가죽끈에 매어 목에 달았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그는 기차표를 목에 걸고 있었는데, 사실은 평생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마치 평생 기차표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약속들을 활용하여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지 나중을 위해 보관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믿고, 의지하고, 시험해보고, 이를 경험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모험을 시작해봅시다.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실

 

주님의 축복과 영광을 체험하는 경험들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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