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어린양
성 경: [요 1:29-34]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나아오심을 보고 -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현재 중간태 분사 '에르코메논'('나아오다')을 사용함으로써, 본문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전달되는 효과를 연출한다.
▶ 보라 - 헬라어 '이데'는 찬탄이 섞인 감탄사로서, 침례 요한의 적대자들이 떠나고, 그가 증거한 예수께서 밝은 빛처럼 찬연하게 다가오셨을 때에 그가 드러낸 찬탄과 감격을 극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본문은 '하나님의 어린 양, 곧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분'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
19-27절이 예수께 대한 요한의 간접증언의 성격을 띠는 반면에,
(19-27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자라
25) 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침례를 주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여기에서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직접 증언한다.
침례요한의 사역에 대한 성격 규정,
(6-8절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15절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사두개인들과의 논쟁을 통한 그리스도에 대한 간접 증언을 거쳐서 드디어 그리스도의 오심을 보고 감격과 놀라움에 떨리는 직접 증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원어상 본문에는 문장을 종결하거나 서술하는 동사가 없다.
그리고 '보라'는 감탄사에 이어
'하나님의 어린양'(the lamb of God, NIV)
'세상 죄를 지고가는 분'이 동격으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은 죄된 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대립 관계를 보여주며, 이러한 관계를 화목케 할 존재를 부각시키고 어두움 속에 빛이 비추어 세상을 밝게 하듯이
(5절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죄악에 빠져 헤매이는 이 세상을, 은혜와 진리의 세계로 변화시킬 그리스도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17-18절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한편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역의 성격을 뚜렷이 반영한다.
'어린양'에 해당하는 헬라어 '암노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사용되었는데,
두 번은 본서의 본장에서,
(본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6절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한 번은 행 8:32에서,
(행 8: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리고 또 한 번은 벧전1:19에서이다.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이 중 벧전 1:19는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야에 관한 예언의 일부인 사 53:7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신약성경의 몇몇 구절에서는 사 53장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적용시키고 있다.
(12: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눅 22: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행 8:32-35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벧전 2:22-24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또한 죄를 대속하는
'속죄양'에 관해서는 구약의 여러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창 22:2-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레 14:10-25 제팔일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수양 둘과 일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또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삼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취할 것이요
11) 정결케 하는 제사장은 정결함을 받을 자와 그 물건들을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12) 어린 수양 하나를 취하여 기름 한 록과 아울러 속건제로 드리되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13) 그 어린 수양은 거룩한 장소 곧 속죄제와 번제 희생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며 속건 제물은 속죄 제물과 일례로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이는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14) 제사장은 그 속건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우편 귓부리와 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 발 엄지가락에 바를 것이요
15) 제사장은 또 그 한 록의 기름을 취하여 자기 좌편 손바닥에 따르고
16) 우편 손가락으로 좌편 손의 기름을 찍어 그 손가락으로 그것을 여호와 앞에 일곱번 뿌릴 것이요
17)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는 자의 우편 귓부리와 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 발 엄지가락 곧 속건제 희생의 피 위에 바를 것이며
18) 오히려 그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그 정결함을 받는 자의 머리에 바르고 여호와 앞에서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하고
19) 또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 그 부정함을 인하여 정결함을 받으려는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 희생을 잡을 것이요
20) 제사장은 그 번제와 소제를 단에 드려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정결하리라
21) 그가 가난하여 이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그는 흔들어 자기를 속할 속건제를 위하여 어린 수양 하나와 소제를 위하여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일에 기름 섞은 것과 기름 한 록을 취하고
22) 그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취하되 하나는 속죄 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삼아
23) 제팔일에 그 결례를 위하여 그것들을 회막문 여호와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24) 제사장은 속건제 어린 양과 기름 한 록을 취하여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25) 속건제의 어린 양을 잡아서 제사장은 그 속건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 발 엄지가락에 바를 것이요;
민 6:12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 년 된 수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로 드릴지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때에 그 몸을 더렵혔은즉 지나간 날은 무효니라).
[요 1: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 본문은 15절의 말씀을 다시 반복함으로써, 침례 요한에게 나아온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증거해야 할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재차 환기시킨다.
특히 본문에서 '내 뒤에 오는 사람'에서 '사람'의 헬라어 '아네르'에 주의할 필요가 있는데 '아네르'는 일반적인 의미인 '인간'을 가리키는 '안드로포스'와는 달리 '남성'을 가리킨다.
특히 이 용어는 결혼 관계에 있어 남성이 여성의 머리가 됨을 시사하는 용어이다.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따라서 이 용어는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를 따르는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머리가 됨을 암시한다.
▶ 계심이라 - 이것의 헬라어 동사는 '에이미'의 3인칭 단수 현재형인 '에스티'로서 침례 요한에게 증언을 받는 현장에서의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또한 동사 '에스티'는 '계시니라'(1절)로 번역된 '에이미'의 3인칭 부정과거형인 '엔'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즉 '엔'이 영원전부터 선재하고 계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면,
'에스티'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시고 인류구속을 위하여 공생애를 시작한다는 현장감(現場感)을 느끼게 한다.
[요 1: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 예수와 침례 요한은 친족 관계였다.
(눅 1: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따라서 침례 요한이 예수를 모를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침례 요한의 진술은 바로 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 물로 침례를 주는 것은 - 본문은 침례 요한의 사역을 함축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즉 침례 요한의 사역의 골자(骨子)는 메시야의 도래를 예비하여 죄사함을 받아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침례의 시행에 있었다.
(겔 36:25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슥 13: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당시의 침례는 기종자나 참회자를 물속에 완전히 잠갔다가 일으키는,
즉 물에 잠기는 것은, 본래의 나는 죽어 장사(葬事) 지내는 것이고,
물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은,
부활이요, 생명되신 예수님을 믿어 영원한 새 생명(거듭남, 중생)으로 다시 태어나는 심오한 진리의 의식인 것이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골 2:12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3: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받더라;
행 8:36-38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주고).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요 1: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 '하늘'은 일반적으로 지상과 대칭되는 창공과 우주를 의미한다.
그리이스인들은 하늘을 신들의 거처인 올림푸스로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의 관점에서 볼때 '하늘'이란
(1)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창공 혹은
(창 1:6-8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행 4:24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2)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을 의미한다.
(전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막 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하지만 위의 두 개념은 엄밀하게 말해서 서로 판이하다.
즉 피조된 이 세상과 영원한 하나님의 거처인 하늘나라는 동일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의 '하늘'은 후자를 가리킨다.
이는 그리스도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듯 성령도 함께 계셨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여기서 성령의 강림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보증(保證)하며, 그리스도의 사역을 돕기 위한 것이다.
특히 성령이 '불이 혀'(행2:3)로 상징된 것과는 달리 예수의 침례시에 비둘기로 상징되어 강림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 죄에 대해서 순결하신 그리스도의 본성
(마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2) 온유하신 그리스도의 성품,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 하나님의 사랑과 총애를 받으시는 그리스도의 사역등을 의미한다.
(아 1:15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막 1:11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눅 3: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그리고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 임한 성령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침례 요한이 눈으로 볼 수 있게끔 임하였음이 분명하다.
(33-34절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요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 나에게 말씀하시되 - 앞 구절과 연관되어 침례 요한의 예언자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즉 이 표현 방식은 계시를 전달할 때 선지자들이 주로 사용한 양식이었다.
(사 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렘 2:2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겔 3:24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이는 침례 요한이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증언한 것처럼 자신이 구약의 선지자들과 같이 그리스도의 도래(到來)를 예언하고 준비하는 자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 32절의 반복적 증언으로서, 32절이 요한의 목격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본문은 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근거한다.
▶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 - 성령 침례란 성도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 생명으로 함께 거듭나는 중생의 경험을 가리킨다.
이 근본적인 변화의 체험을 통해 어두움의 자녀가 빛의 자녀로,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의 지체로 된다.
(고전 12:13-14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한편 여기서 물과 성령은 서로 대조적인 관계에서 언급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침례 요한이 설교한 모든 것이나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눅 3:3)는 궁극적으로 모두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성령의 역사는 오순절 성령 강림 때까지 제한성을 가졌다는 것 뿐이다.
(행 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결국 요한의 침례는 성령침례를 예표하고 준비시키는 의의를 지닌다는 점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이다.
[요 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 침례 요한의 이러한 증언은 막연한 추측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을 생생하게 반복한 것이다.
(막 1:11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사복음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장이며
(마 26:63-64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막 3: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눅 4: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특히 본서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말씀이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로부터 시작하여,
(1-4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에 관해 보다 심도있게 묘사하고 있다.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19: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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