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
첫번째 것보다 정밀도 높아
맞춤 의학시대 빨라질 듯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소장 서정선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학과 공동으로 30대의 건강한 한국인 남자의 지놈 지도를 완성한 뒤 해독까지 했다고 8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학술지 네이처 9일자에 발표됐다.한국인의 지놈이 해독되기는 지난해 12월 가천의대 이길여암당뇨연구소 김성진 박사의 지놈 해독 성공에 이어 두 번째다. 세계적으로는 여섯 번째다. 특히 이번 지놈 해독은 고도로 정밀하게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해독은 하나의 지놈에 10~30회를 반복했지만, 이번에는 최대 1만 번까지 반복했다.
한국인 두 명의 지놈이 해독됨으로써 한국인을 위한 ‘개인별 맞춤의학’ 시대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인 지놈이 해독되기 전까지는 미국인의 지놈 해독 결과를 들여와 연구에 활용했었다. 그러나 인종이 다르면 지놈도 다르고 약물의 효능도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번 연구 결과, 이 30대 남자의 경우 항암제인 블레오마이신에 대한 저항성이 5배나 강했으며, 스타틴이라는 콜레스테롤 약물에도 저항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약물을 질병 치료에 사용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또 고혈압과 당뇨·녹내장 등에도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놈 해독 결과를 이용하면 어떤 약물의 효능 여부를 사전에 알아낼 수 있다. 이 남자의 경우 유전자가 통째로 사라진 것도 다수 발견됐다. 소화효소 중 하나인 트립신 효소 중 하나는 아예 없었다. 소화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인간의 후각 기능과 관련된 유전자가 660개 정도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쥐의 냄새 관련 유전자는 1300여 개에 이른다. 인간 생존에서 냄새에 의존하는 경우가 줄어들면서 관련 유전자가 퇴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이 남성이 지닌 30억 개의 염기서열 중 한 개의 염기가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SNP: 단일염기 다양성)은 345만 개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호르몬을 만드는 등 인간 생명현상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까지 변종을 만든 SNP(nsSNP라고 함)는 1만162개였다. 외형상 정상인 사람도 수많은 유전자와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있으며, 이에 따라 특정 질병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이번에 해독된 한국인의 지놈과 이미 해독된 중국 한족과 아프리카 흑인의 지놈을 비교한 결과, 한국인과 한족 사이의 공통 유전자가 한국인과 흑인 사이의 공통 유전자보다 많다는 의미다. 인종학적으로 한국인이 흑인보다는 한족에 더 가깝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서정선 교수는 “이번 해독은 한국의 지놈 분석 기술력을 세계에 알린 쾌거로 개인 맞춤의학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지놈(genome)지도=지놈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를 합성한 용어. 지놈 지도는 인간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구성하는 약 30억 개의 염기 순서를 짜맞춰 지도로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