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거듭난 삶 2019. 3. 2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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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를 판단하지 말라


 

: [ 14:10-12] 네가 어찌하여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 14:10] 네가 어찌하여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네가 어찌하여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 바울은 앞서 3절에서의 책망을 다시한번 반복하고 있다.

 

번째는 연약한 형제에 대한 언급이다.

 

, 채소만 먹는 자들이 고기를 먹는 자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판단하느뇨' 해당하는 헬라어는 '크리네이스' 의문문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책망에 대한 강한 어조이다.

연약한 형제들은 자신들의 무지와 성숙하지 못한 신앙으로

믿음이 강한 자를 판단한다.

 

바울은 이들에 대하여

'너희가 무슨 권리와 근거로 그들을 일방적으로 판단하는가?'하며

연약한 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행위를 돌아보도록 질문 형식으로

그들의 행위를 깨우치고 있다.

 

번째는 믿음이 강한 자들에 대한 언급이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업신여겼다.

 

, 음식을 먹는데 있어서 고기도 먹고 채소도 먹는 자들이

채소만 먹는 자들을 업신여겼다.

 

'업신여기느뇨' 해당하는 헬라어는 '여수데네이스'

강자가 약자를 멸시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여기서 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가 연약한 자를 업신여기는 교만한 태도를 책망하고 있다.

양자(兩者)간에 이러한 태도는 결코 어느 쪽도 정당화 없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모두 온당치 못한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 바울은 자신을 포함하여

믿음이 강한 자나 연약한 모두가 서로간에 판단하지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유는 장래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여기서 '심판대' 해당하는 헬라어 '베마티'

운동 경기에서 심판이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그런데 장소에 있는 심판은 경기 도중에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보면

즉시로 그들의 자격을 박탈하여 정정당당하게 경기하도록 하며

승리한 자에게는 상을 주었다.

 

(고전 9:24-27 경주할 때에 달리는 자들이 달릴지라도 사람이 상을 받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리라.

25) 이기려고 애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서 절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을 관을 얻고자 일을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관을 얻고자 하느니라.

26) 그러므로 내가 이와 같이 달리되 정해진 것이 없는 것처럼 하지 아니하고 이와 같이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하지 아니하며

27) 오직 내가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따라서 각자는 날에 자기가 행한 대로 직고하며 선악간에 심판을 받을 것이니

남을 판단하거나 업신여기는 행위를 삼가 주의하여야 것이다.

 

(11-12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 14: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기록되었으되 - 다음에 나오는 인용문은 혼합형으로서 45:23 49:18 결합시킨 것이다.

 

( 45: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입에서 의로운 가운데 말이 나갔은즉 그것이 돌아오지 아니하리니 이로써 모든 무릎이 내게 굴복하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

 

49:18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이들이 함께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장식을 걸치듯 그들 모두를 몸에 걸치며 신부가 두르듯 그들을 몸에 두르리로다)

 

바울은 기억에 의존하여 구절을 무의식적으로 혼합 인용했든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인용했을 것이다(Dunn).

 

아무튼 어느 방법이든 간에 구약성경의 권위있는 가르침을 인용하여

자기의 교훈을 뒷받침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글에서 종종 있다.

 

인용문 역시 앞절(10)에서 형제를 업신여기고 판단하는 이를

엄하게 책망하면서 결국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

상기시킨 교훈에 대해 구약성경으로 인증(認證)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Hendriksen).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 말은 선지서에서 자주 나타나는 관용구로서,

반드시 성취될 중차대한 진리를 선언할 쓰는 표현이다.

 

( 14:28 그들에게 이르되, 주가 말하노라. 진실로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귀에 말한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49:18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이들이 함께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장식을 걸치듯 그들 모두를 몸에 걸치며 신부가 두르듯 그들을 몸에 두르리로다;

 

22:24 주가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비록 유다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오른손의 인장 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빼내어;

 

5:11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역겨운 것과 모든 가증한 것으로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미약하게 하고 눈이 아끼지 아니하며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이는 신약성경에서 주께서 중대한 말씀을 하시기 전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규칙적인 관용구를 사용했던 것과 흡사하다.

 

( 3: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없느니라, 하시니라,

 

5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없느니라,

 

11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도다;

 

5: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자기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외에는 아무것도 스스로 없느니라. 그분께서 무슨 일들을 하시든지 이것들을 아들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24-25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그는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는데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 구절은 70인역(LXX) 45:23 문자적 인용이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예언의 말씀은,

 

( 45: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여기서 구약성경의 원래의 의미 그대로 사용되었다.

 

, 분이신 지고(至高) 하나님의 최종적 권위에 대항하는 자들은

모두 최후 심판시에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무릎꿇고 인정할 것이다.

 

( 45:21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피차 상의하여 보라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냐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예컨대 남을 업신여기고 판단하는 행위는,

 

(10 네가 어찌하여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심판의 영역을 침해한 것이다.

 

따라서 형제를 판단하는 일은 하나님의 권위에 반역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는 우상 숭배의 올무에 빠지는 행위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21-25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그리고 '자백하다'(여소몰로게오)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70인역(LXX)에서 '인정하다', '자백하다', '찬양하다'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Dunn).

 

(15:9 이방인으로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1:25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10:21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최후에는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 숨김없이 자백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내용에 대해

모든 인류가 주께 찬양하며 경배하고 복종하게 됨을 나타낸다.

 

, 구절은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판단하는 이방인들의 회심(悔心) 암시하면서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통치 행위인 구원과 심판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최종 목적이

자기들이 업신여기고 판단하는 이방인들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들의 회심이 이스라엘과 성경에 의해서

선포된 하나님께 대한 일종의 순종임을 상기시켜 주면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크신 구원 안에서 서로 받을 것을 촉구한 것이다.

 

아울러 45:23 인용문이 2:10, 11에서는

 

( 2:10-11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부활하시고 승귀(昇歸)하신 그리스도의 신분과 역할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자백' 말할 사용된 반면

본절에서는 '하나님께 자백하리로다',

하나님의 심판에 적용되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바울이 그리스도의 주권과 하나님의 궁극적 권위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자신의 통상적인 습관을 따르고 있다고 있다.

 

 

 

[ 14: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 앞에 나온 구약성경 인용문에서 끌어낸

권고적인 결론으로서 이것은 10절의 사상을 되풀이 것이다.

 

여기서는 단어가 매우 강조적인 것으로서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Denney, Cranfield).

 

'각인'(헤카스토스) 어느 쪽도 배제(排除)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강한 자나 연약한 ,

판단하는 자나 판단받는 양쪽 모두를 가리킨다.

 

'자기 일을'(페리 헤아우투) 자기가 판단하는 형제의 일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일에 관해서 직고해야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께'( 데오) 자기 파당이나 혹은 자기와 친밀한 동료에게가 아님을 강조한다.

 

, 인간이 아는 모든 것을 아시되 사람 마음의 은밀한 생각까지

아시는 하나님께 직고해야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앞에 벌거벗은 같이 드러나느니라).

 

'직고하리라'(로곤 도세이) 장부에 적힌 대로

세밀히 '보고하다', '회계하다', '계산하다' 뜻으로

심판의 철저성을 나타낸다.

 

( 3:17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신약성경의 용례를 보면 12:36; 16:12; 19:40; 13:17;벧전 4:5 등에서 똑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16: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9: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벧전 4:5 저희가 자와 죽은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바울에게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믿음이 있다고 하여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심판의 최후 계산()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6-16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양심이 증거가 되어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날이라;

 

고전 3:12-15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불이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가운데서 얻은 같으리라;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예외없이 각각 자기가 행한 일을

하나님 앞에서 자백할 뿐만 아니라 계산해야 한다는 진리를

단어마다('각인',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강조하여 선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