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거듭난 삶 2019. 5. 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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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신 예수

 

: [ 1:9-10]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 1:9]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 6-8절에 걸친 침례 요한의 소개로 인해

 

(6-8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하려 함이라

8) 그는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자라)

 

잠시 중단되었던 4, 5절의 주제가 본절에서부터 다시 이어지고 있다.

 

(4-5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기서 '' 사도 요한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로서 '거짓에 반대되는 '(알레데스) 아니라 '불완전을 완전케 하는 ' 의미한다.

 

따라서 ''(true)이란 용어는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빛의 세력인 성도들의 참된 주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 12:13 성도들의 것을 공급하며 대접하기를 힘쓰라;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살전 5:5 너희는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또한 이신 주님께서는 말세에 어두움의 권세를 종식(終熄)시키고 빛의 왕국인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다.

 

( 21:9-27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편에 , 북편에 , 남편에 , 서편에 문이니

14)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성과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갈대를 가졌더라

16)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갈대로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17)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천사의 척량이라

18)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21)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성전이심이라

23)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등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세상에 와서 - '세상' 헬라어 '코스모스' 원래 질서와 연관된 의미를 지닌 용어로서, ' 부분들이 모여서 구성되어 있는 ' 의미하였다.

 

따라서 용어는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 등이 질서있는 상태에 있을 사용될 있었다.

 

그후 헬라인들은 각각의 통일된 구성체들(코스모이) 질서와 조화로써 완전한 통일체를 형성한 우주를 '코스모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각각의 '코스모이'들이 '코스모스' 되는 근본적인 규준(規準) 바로 '로고스'라고 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이러한 개념을 도입하지 않았다.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당시 헬라적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헬라어로 성경을 기록하고 복음을 전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코스모스' 개념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사용하였다.

 

신약성경에서 '코스모스'

 

(1) 구약성경에서 사용한 '하늘과 '( 20:11)

(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동의어인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우주.

 

(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2) 인간 역사의 현장인 '지구'.

 

( 1: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3) 타락한 '인류'등을 가리킨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따라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본절의 '세상'이라는 개념을 요약한다면,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창조되었지만,

인간의 타락과 함께 부패된 ,

다시 말해서 어두움의 세력인 사단의 권세가 지배하는 곳이다.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 사람이란 인류라는 집단 또는 어느 단체와는 무관한 개념으로서, 실존하는 사람 사람이라는 개체적인 의미이다.

 

그리고 여기서 빛은 참빛이신 그리스도의 존재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비취는 ')이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따라서 참빛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개인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신다는 뜻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이 구약 시대에서 처럼 민족, 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악된 세상에서 중생(born again)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성도들 개개인을 통하여 끊임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인 교회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서로 차별이 있을 없으며, 성도 하나 하나가 모두 귀한 형제자매들임을 깨닫게 된다.

 

 

 

[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 1절에서는 영원전부터 그리스도가 계셨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면, 본문에서는 세상에 오셨던 그리스도의 지상생애 기간을 보여준다.

 

학자들은 본문에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다는 사실을 가지로 해석한다.

 

(1) 창조 이후 성육신하기 전까지 ()으로서 세상에 계신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

(2) 성육신부터 승천하시기까지의 예수의 생애를 가리킨다는 견해.

 

전자는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 문장에 착안한 견해인 반면에 후자는 9절의 말씀과 연관시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취할 있는 방편은 본절의 문장을 중심으로 하고 9절과 11절의 연관 관계를 살펴 보는데 있다.

 

주지하다시피 본절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의 문장을 일단 차치하고 본절의 전체 의미를 보면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으나 세상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11절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왔지만 자기의 소유들로부터 따돌림 당했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10절과 11절은 문장의 전체 의미에 있어 일치한다.

 

그러므로 본절의 처음 문장은 세상에 참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묘사한 9절과 연관된다. 그러므로 앞의 학설 후자가 타당하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 세상의 창조주이자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실 그리스도에 대한 세상의 무지를 보여준다.

 

어둠에 잠긴 죄악된 인간의 관점에서 예수는

 

(1) 목수의 아들

 

( 13:55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모친은 마리아,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2) 귀신들린 자에 불과하였다.

 

( 12:24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3: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더구나 예수를 따르던 군중들도 예수를 기적 행위자 내지는 정치적 메시야로 판단했다는 사실을 연상한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세상의 무지함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기에서 '알지'(에그노) '알다'(기노스코) 3인칭 단수로서

 

(1)감각적인 지각(아이스다네서다이)

(2) 사물들에 대한 지식(도케인),

(3) 선천적인 지식(에이도)등을 나타내는 용어들과는 의미가 다르다.

 

'기노스코' 후천적, 객관적 관찰로써 온갖 대상(사물, 인간, 불변하는 영원한 실재) 대해 파악하는 지식까지도 포괄하는 용어이다.

 

특히 1:25에서는 남녀간의 성적 관계를 의미하는 구약성경의 뉘앙스를 살림으로써

 

( 4:1 아담이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31:17 그러므로 아이들 중에 남자는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여자는 죽이고)

 

용어가 인간 간의 긴밀한 관계를 통한 ''까지도 표현함을 있다.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서 용어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것이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를 의미하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도 ''이며, 예수와 성도들의 관계도 역시 ''이다.

 

(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그리고 성부와 성자께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다.

 

(4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속에 있게 하셨고;

 

17:3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러한 '' 사랑에 의해 평가되고, 사랑을 매개로하여 계속 유지된다.

 

(요일 4:7-1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결국 '알지 못함' '' '미움, 다툼' '사랑', 그리고 '영원한 심판' '영생'으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