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은총과 진리(참)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임하였다

거듭난 삶 2019. 5. 1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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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라는 것에 대하여

 

 

요한복음 1 17 :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것이라.(개역한글)

 

 

'율법은 모세에 의해 전해지고, 은총과 진리()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임하였다'(요한복음 1:17)

 

'형제여, 원하기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의 (심령) 함께 하시기를, 아멘'(갈라디아서6:18)

 

 

 

성서에 '은혜'라는 말이 있다. 혹은 다만 '()'이라 하고, 또는 '()'라고 한다.

 

또는 은총이라고도 한다. 문자에서 살피면, 아주 하나님께 특별 총애입어 받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옳다, 많은 그리스도 신자는, 그러한 천박하고 저열한 의미에 있어서 귀한 말씀을 해석한다.

 

하지만, 실제 어떠한 것인지는 이것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문자에 의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성서에 다른 말씀에 있어서와 같이, 말씀에 있어서도, 문자는 진의의 표호(a sign)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달리 좋은 문자를 발견할 없는 까닭에, 다만, 문자를 써서 문자이상의 의미를 자세히 알려 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같은 ,

신앙이라는 , ,

모두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말하는 사랑이나 신앙은,

이러한 문자로서 나타내는 것과는 전혀 별다른 것이다.

 

은혜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은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은혜의 자의를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참으로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면 은혜란 무엇인가?

 

문자가 보여주는 대로,

사람이 자신에 있어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와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임은 분명하다.

 

사랑의 선물(은사)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선물이라고 하여, 물론 '물건' 아니다.

그렇다고 은총이라고 하여, 다만 사랑 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이것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알지 못한다.

 

영어로 이것을 grace라고 한다.

그리고 그레이스라고 하면, 풍아(elegance), 우아(refined)등의 의미가 있다.

 

왕공귀족같이 유복한 집에서 자란 자에게는 절로 온후한, 품격 높은 데가 있다.

하지만, 풍아, 우장(superiority)으로는 크리스천이 칭하는 은혜는 다그치지 않는다.

 

은혜는 물론 사람을 온후하게 하고,

따뜻하게 하며, 부드럽게(친절하게)한다.

그러나 이는 결과임에 지나지 않는다.

 

은혜 그것은 아니다.

은혜는 (thing)이다.

성질(nature) 아니다.

그러면 은혜란 무언가?

 

이것은 그리스도로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심령) 주시는 사랑의 힘이다.

간단히 말하면 성령이다.

 

그러나 불살라 버리시는 성령의 불이 아니라,

죄를 사하시고, 이를 없이 하며,

이에 대신하여 선의를 주시는 영의 힘이시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로서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 풍성히 거했다.

 

' 아들( 예수) 성장하여, 정신 건강히, 지혜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총이 위에 있더라'(누가복음 2:40) 있는 것은 이것이다.

 

예수의 생애가 은혜로 충만 되어 있는 생애였다.

 

그러므로 그에게 들은 사람은,

 

' 입에서 나오는 은혜의 말씀을 기이히 여겨'(누가복음4:22)

 

말했다는 것이다.

 

그의 온아한 풍채,

유화한 거동,

닿기만 하면 덕이 흘러나오는 애심은,

모두 그에게(예수 안에) 차고 넘치는 은혜의 결과이다.

 

사랑의 전류랄지 화광의 저축이라고 일컬을지,

여하하든, 강한, 효력 있는 영능임은 확실하다.

 

그리고 모두 그리스도에게 구원된 자는,

다소 (능력) 받는 것이다.

이것을 받아, 죄는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생래의 () 성은 없어지고,

대신 사유(용서) 성이 임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교육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우의 변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신사 또는 숙녀로 것이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경솔하게(매우 가볍게) 노하지 않고, 사람의 악을 생각하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기뻐한다.'(고린도전서13:5-6참조)

 

얼마나마 있게 것이다.

 

실로 그리스도의 은혜 같은 것은 달리 없다.

세상의 왕공귀족은 (능력) 알지 못한다.

어떠한 도덕으로서 대도 힘은 얻지 못한다.

 

그리스도만이 기이(신비) 능력() 저축소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그에게 이르러,

이렇듯, 사람을 마음의 근저에서 선화하는 절대의 (능력) 은사에 참여할 것이다.

 

 

요한복음 1 17절에 이르기를,

 

율법은 모세에 의해 전해지고(주어지고), 은총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 한다.

 

율법은 주어지고, 은총(은혜) 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로서 율법을 주셨지만,

은총을 내리심에는, 아들 예수로써,

자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신약이 구약보다 귀하고 예수가 모세보다 (superiority) 이유는 여기에 있다.

 

주어졌다 오셨다와의 차이다.

 

구원의 은총은 다만 위에서의 명령에 의해 주어진 것은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형상을 취하여 우리들 사이에 나타나, 우리에게 주시는 이시다.

 

은총은 주어지지 않고, 오셨다고 한다.

 

말씀은 육체로 되어 우리 안에(가운데) 거하셨다(1:14 참조) 복음의 진리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내촌감삼의 (191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