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거듭난 삶 2019. 6. 2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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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명을 먹이시다.

 

: [ 6:1-15]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하나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 6:1]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

 

여기 "디베랴 바다" 이름은,

주님 당시의 이름이 아니고 후대의 것이었으나,

저자가 이방 교회의 식별을 위하여

"갈릴리 바다" 말에 첨부한 것이다.

 

디베랴 바다라고 해야 당시 이방 사람들이 알았다.

 

 

 

[ 6:2]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

 

"표적"이란 말은, 예수님의 이적으로서 메시야이신 사실을 보여주는 표란 뜻이다.

 

표적들에 대한 참조할 성구들,

 

( 14:14 예수께서 나오사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1: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40-42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42) 문둥병이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2:11-12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3:1-5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3) 예수께서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4)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시고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손이 회복되었더라,

 

6: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9: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2:11 예수께서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러나 대중은 예수님의 이적의 표적 성격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호기심과 육적요구를 위하여 예수님을 좇았던 것이다.

 

* 참조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들은 아직 그의 말씀이 이적보다 귀한 몰랐던 것이다.

 

 

 

[ 6: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

 

여기 말한 "" 언덕을 의미하므로 이것은 갈릴리 바다의 해변 언덕을 가리킨다.

 

유대의 랍비들은 보통으로 높은 앉아서 제자들을 가르쳐 주었다.

 

 

 

[ 6: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

 

여기 "유월절"이란 말이 모든 사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교부들의 증거는, 이것이 없는 편을 지지한다. 홀트(Hort)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있는 것이 연대적으로도 자연스럽고 저자의 신학적 견지에서도 자연스럽다. (Schlatter, Barrett).

 

 

 

[ 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

 

예수님께서 눈을 드시고 무리를 보신 것은, 그들을 위하여 무슨 좋은 일을 하시려고 그리 하신 것이다.

 

"빌립" 대하여는 1:44, 12:21, 14:8 참조하시라.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물으신 문제는 그의 신앙을 시험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빌립은 신앙적으로 문제를 취급하지 못하였다.

 

그의 당한 것은 모세가 주린 백성을 앞에 두고 당한 난제와 같으며

 

( 11:13 모든 백성에게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22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엘리사의 종이 당한 것과도 같았다.

 

(왕하 4:42-43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보리떡 이십과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 6: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

 

예수님께서는, 때에 자기의 권능으로 군중을 먹이실 대책을 벌써 생각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육신을 먹이는 문제보다 영적 문제,

, 제자들의 신앙 교육을 더욱 중히 하셨다.

 

그는 빌립의 신앙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에게 문제를 주셨다.

그것은, 빌립이 군중의 가련한 정형을 보고 동정심을 가지는 여부를 아시려는 시험이 아니다.

그것은, 비범한 방법으로 먹을 것을 준비해 주실 있는 주님의 능력에 대한 그의 신앙 여부를 알아 보시려는 시험이었다. (Grosheide).

 

이와 같은 시험은 신앙을 배양하는데 유익하다.

 

 

 

[ 6:7] 빌립이 대답하되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

 

데나리온은 노동자 사람의 하루 품삯이다.

그러므로 200 데나리온이면 상당한 금액이다.

 

빌립의 계산은 다만 현실적이고 타산적인 것이다.

그에게는 건전한 이해력은 있었으나 신앙은 없었다.

그는 일찌기 예수님의 이적들을 보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때에 신앙적으로 생각하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이렇게 주님의 권능에 대해서는 건망증이 많다.

 

 

 

[ 6:8] 제자 하나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

 

빌립과 안드레는 종종 함께 나타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같은 고향 사람인 사실과 그들이 제자 가장 먼저 선발된 까닭인 듯하다.

 

* 참조 (12:20-22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 12:21)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 12: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1:41-44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안드레의 (9), 부분 기사를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

 

, 때에 많은 사람 가운데 음식물이라고는 다섯개와 물고기 마리 뿐이었으므로 이적으로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밝혀 주었다.

 

부분 기사가 이적이 아니고 단지 사람에게 있었던 음식물을 먹도록 하였다는 합리주의 해석은 안드레의 말을 위반하는 것이니, 그것은 그릇된 해석이다.

 

 

 

[ 6:9] 여기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

 

"보리떡" 가난한 사람들의 양식이다.

 

"물고기"라고 것은 멸치와 같이 작은 고기라고 한다.

 

안드레도 여기서 그리스도의 권능을 믿지 못하고 현실주의 견지에서 낙심하고 것이다.

 

 

 

[ 6: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

 

무리를 앉힌 것은 그리스도의 긍휼의 표현이며, 그들이 앉은 것은 그들의 순종이다.

 

그들은, 그저 단순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권위 있는 지도를 받으려고 감심으로 순종하였다.

언제나 신앙의 태도는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마땅히 자기 스스로 지혜 있는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권위(權威) 믿고 순종하며 기다려야 한다.

 

여기 5,000명이란 것은, 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들만을 계수한 것이다.

 

( 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이때에 남자들만 계수한 것은, 여자들과 아이들의 인권을 무시한 것이 아니고, 남자들의 대표적 지위를 염두에 것이다.

 

 

 

[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

 

"예수께서 떡을 가져" 말씀은, 제공한 다섯 개의 보리떡을 받으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여기서 전연 없는 데서 창조하심이 아니고, 조금이라도 있는 것을 가지시고 많게 하셨다.

 

"축사"하셨다는 말은 감사하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적은 것을 가지고도 하나님께 감사하셨다.

감사하는 자리에 많은 축복이 임한다.

 

 

 

[ 6:12-13]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 예수님은 선물을 관대하게 주시지만 낭비하는 것을 금하신다.

물질이 헛되이 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남은 조각이 바구니에 찼더라 - 유대 풍속에, 식사에 봉사하고 남은 음식은 봉사자들의 분깃이 되었다고 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봉사한 12사도들은 저렇게 필경 받은 상급이 컸다.

 

[ 6:14]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선지자라 하더라

세상에 오실 선지자라 - " 선지자" 대하여는 18:15 예언되었으니 , 메시아를 가리킨다.

 

( 18:15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았기 때문에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하였다.

 

(15 참조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았으나, 진리대로 바로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저희의 물질 문제나 해결하여 주실 메시아로 알았던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니, 그가 거기 응하시지 않았다.

 

어쨌든 사건은, 먹이신 이적이 얼마나 위대하였던 것을 증명해 준다.

그들이 권능을 뒤에는, 로마 정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막바로 예수님을 유대의 임금으로 추대하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응하시지 않은 것은, 그가 군중의 메시아 관념이 육적(肉的) 것을 합당치 않게 보셨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