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거듭난 삶 2019. 6. 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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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게 하는 증언

 

: [ 5:30-47]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심판은 의로우니라

3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32)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증거가 참인 아노라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35)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나의 하는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있느냐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너희의 바라는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면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 5:30]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심판은 의로우니라 -

 

말씀은 19절의 내용을 결론적으로 재설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행사, ,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치신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변증하신 말씀이다.

그의 행사가 정당한 이유는, 그가 자행(自行) 자지(自知) 하시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그를 보내신 , ,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듣는대로) 실행하시기 때문이다.

 

"심판한다" 말이 여기서는 그의 재림시의 종말적인 것을 가리키지 않고, 그의 복음을 통하여 살릴 자를 살리시는 주권행위를 가리킨다.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 5:3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

 

말씀은 유대인들을 표준하여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증거 하신다면, 그들은 멋모르고 그것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실상 예수님의 자증(自證) 오히려 당연하다고도 생각되는 것이다.

 

8:14 말하기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하였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들은 누구든지 자율적(自律的)으로는 그에게 대하여 증인이 없다.

 

그들도 성령을 받아야 그리스도의 증인이 있다.

그들의 증거도 저렇게 그리스도께서 성립시킨 것이니만큼,

그리스도의 자증에 속한다고 있다.

 

스키페르스(R. Schippers), 성경에 있는 "증거" 말은 법정 술어의 의미가 있는 말이라고 한다.

 

그는, 점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여 요한복음의 특색을 나타내어 보여준다.

 

, "요한복음은 하늘과 세상,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대립의 기세를 보여준다. 대립의 기세는 소송의 광경으로 결정적으로 나타낸다. 특별히 유대인들이 미망(迷妄) 빠져 스스로 재판장인 체하나, 실상은 하나님의 재판정에 있어서는 피고(被告)였던 사실이 드러난다"라고 하였다.

(Getuigen van Jezus Christus in Het Nieuwe Testament, pp. 159-160)

 

 

 

[ 5:32]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계시다고 말씀은,

 

크리소스톰(Chrysostom)이나 대다수의 헬라 주석가들의 의견과 반대로 알렉산드리아의 시릴(Cyril) 라틴 주석가들에 의하면,

아버지의 증거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 학자 뷕셀(F. Buchsel), 이것이 침례 요한의 증거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스키페르스(Schippers)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를 가리키지 않고 침례 요한의 증거를 의미한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 "예수님께서 자기의 증거와 남의 증거를 관설하는 문맥에서,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염두에 말이라고 하기에는 도무지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Getuigen van Jezus Christus in het nieuwe Testament, p. 162).

 

 

 

[ 5: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

 

유대인들이 침례 요한에게 심문자들을 보낸 것은, 1:19-28 기록되어 있다.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표준이었다.

그는 진리 (眞理)대로 말한 증인이었다. 그러므로 10:41-42에는 말하기를,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하였다.

 

"증거하였느니라." 말의 헬라 원어는 현재 완료 동사로서, 과거에 행한 일의 결과가 아직 남아 있음을 표시하는 시형(時形)이다.

 

그러므로 말은, 침례 요한의 증거한 바가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때에도 아직 효과적이고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 5: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 요한의 증거는,

예수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의 회개를 위한 것뿐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자증적(自證的)으로 진리이시며 빛이시다.

그의 참되심의 성립은 어두운 인간에게 의존하시지 않는다.

빛은 자체의 증거로 알려질 뿐이고 어두움의 증거를 요구하지 않는다.

 

밝히 비추고 있는 태양의 존재를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가 촛불을 필요는 없다.

태양은 자체를 자증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여기 침례 요한의 증거에 대하여 말씀하신 목적은,

침례 요한의 증거 목적이 그들의 구원을 위한 것인 만큼,

그것을 그들에게 기억시켜 그들로 하여금 믿어 구원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5:35]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

 

"비취는 등불" 일시적으로 좁은 범위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그것은 침례 요한의 증거에 대하여 적당한 비유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체이시고, 세상을 비추신다.

 

 

 

[ 5: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나의 하는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

 

"나의 하는 역사" 그의 이적들을 가리킨다.

 

역사는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신 사실을 밝히 보여 주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이란 말은 그가 메시야로 오셨다는 뜻이다.

 

 

[ 5:37-38]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 함이니라 -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셨다.

 

그런데도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증거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것처럼 강퍅했다. 그들은 증거의 형태("형용") 전연 모르는 자와 일반이었다.

 

이유는 이렇다.

, 그들이,

구약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자처하며 그의 형용을 보았다고도 자처하나,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 자처하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 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

 

말씀은, 귀절들(37-38) 정당성을 증거한다.

 

, 구약 성경은 영생을 주는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는데,

유대인들이 성경을 상고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그와 같은 행동은 성경을 바로 앎이 아니다.

,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것과 같다.

 

 

 

[ 5:41-44]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있느냐 -

 

구절들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유를 말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지 않으시고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신다.(41,43).

 

그러나 유대인들은 실상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하지 않았다.

그러니 만큼 그리스도와 그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

 

 

 

[ 5:45-47]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너희의 바라는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면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구절들은,

다시 39-40 말씀에 연속하여 구약 성경(모세) 대한 유대인들의 무식,

혹은 불신의 태도를 책망한다.

 

그들이 구약 성경을 믿었더면 예수님을 믿었을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구약을 배척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들을 정죄할 자는 구약 성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