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머리털로 예수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거듭난 삶 2019. 8. 13.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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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다.

 

: [12:1-8]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순전한 나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 나사로를 부활시키신 이적은 너무도 크기 때문에, 여기서 사실을 다시 관설한다.

 

 

 

[ 12: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중에 있더라 -

 

마태와 마가는 이와 같은 사건에 대하여 말할 때에,

 

( 26:7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14: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순전한 나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연회 장소를 "문둥이 시몬의 "이라고 하였다.

 

어떤 학자는 상상하기를, 시몬은 마르다의 남편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몬은 알려진 문둥이 었으니 만큼, 결혼하지 못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Grosheide).

 

그러므로 시몬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과는 가족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등도 아마 청함을 받아서 잔치에 참석하였을 것이다.

 

"마르다는 일을 보고" - , 그가 연회 배설(排設) 음식물 준비에 봉사한 것을 가리킨다.

 

10:40 보면, 그는 방면 봉사에 능하였다.

 

( 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동생이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이런 인물도 귀하지만, 그보다도 주님의 진리와 영적 생활에 열중하는 인물이 더욱 귀하다.

 

( 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2 그러나 가지만 하든지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중에 있더라." - 나사로는,

 

부활한 몸으로 자리에 와서 앉은 것만으로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그를 보는 자마다 주님의 능력의 위대하심을 알게 되었다.

 

 

 

[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순전한 나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향유는, 나드(nard) 향유인데,

인도에서 나며 파사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특별히 술을 향기 있게 하는데도 사용되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극히 존경했으며, 자기 오라비를 다시 살리신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향유를 그의 발에 붓는 봉사를 하였다.

 

마리아의 행동은, 예수님을 경배하는 의미와 존귀히 여기는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은 일에서 그것 외에 다른 것을 보셨다.

그것은, 그의 장례를 예비하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만 하고 발에 부었다는 기사는 없다.

 

그러나 문제 것은 없다.

 

라그랑지(Lagrange) 난제를 다음과 같이 해결하였다.

 

, "머리에 기름을 부었을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있는 사실이었으니 만큼, 요한은 그것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마태와 마가는 발에 기름 부은 사실을 기록하지 않은 것뿐이고,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닐 것이다.

 

 

 

[ 12:4] 제자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가룟 유다가 말하되 -

 

26:8 의하면, 마리아의 향유 부은 일에 비평한 이들이 "제자들"이라고 하였다.

 

( 26:8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 14:4에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했음).

 

그러나 요한은 여기서 가룟 유다만 거론한다.

유다가 다른 제자들보다 지도적 처지에서 저런 비평을 하였기 때문에,

요한이 여기서 그의 이름만 말하고 다른 제자들에 대해서는 관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 12:5]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

 

"삼백 데나리온" 노동자 사람의 300 동안의 노동 품값이라고 한다.

 

유다는, 가난한 자를 예수님보다 귀히 여긴다고 여기 말한 셈이다. (Grosheide).

 

이것은 세상 생각으로만 타산하는 그릇된 생각에서 일어난 불평이다.

불평은, 영혼이 예수님에게 사랑을 붓는 것이 천하보다 귀한 모르는 어두움이다.

 

마리아와 유다 사람을 대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마리아는 희생자임.

그는, 주님을 위하여 무엇이나 아낄 모르는 인물이었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최선을 하였으니, 주님의 말씀과 같이 행한 자이다.

 

, 22:37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다.

 

세상 사람들이 악한 일에 최선을 줄은 알면서도 하나님께 그리할 줄은 모른다.

 

인도의 어떤 선교사가 번은 이상한 일을 보았다.

 

, 간지스강 가에 여자가 섰는데, 앓는 갓난아이는 팔에 안고 건강한 아들은 옆에 세워 놓고 있었다. 여자는 오랫동안 거기 있었는데, 얼마 후에 선교사가 다시 와서 보니 옆에 섰던 건강한 아이가 없어졌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여자가 대답하기를, "그를 강에 넣어 악어들로 먹게 하였다" 하였다.

이유를 물으니, 대답은, "나의 (악어)에게 가장 좋은 것을 것이라" 하였다. 인간은 죄로 어두워져서 이렇게 악한 일에 최선을 다한다.

 

(2) 유다는 옳은 것을 비평하였음.

유다는 마리아의 봉사를 비평하였으니, 그것은,

영혼이 그리스도와 뜨거운 관계를 맺는 것이 천하보다 귀한 모르는 그릇된 사상이다.

 

아니라, 그것은, 예수님을 귀한 모르는 그릇된 태도이다.

예수님은 천하의 만배보다 비교할 없는 귀하신 분이다. 이와 같이 귀한 예수님을 위하여 천하를 바친들 아까우랴?

 

그러나 유다는 물질만 귀한 알았으며, 빈민 구제를 구실로 삼아 트집을 잡았다.

 

 

 

[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

 

다른 제자들이 마리아를 비평한 것은, 부주의로, 혹은 피동적으로 그리하였던 것이다.

 

( 26:8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14:4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그러나 유다는, 구절에 나타난대로 자기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위선자(僞善者)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계획적인 악행이었다.

유다는 저렇게 탐심이 강하였고, 그것 때문에 자기 선생을 파는 무서운 죄악까지 범하였다.

 

( 22:3-6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방책을 의논하매

5)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기회를 찾더라)

 

평소에 그의 마음 속에 자라나던 죄악(탐심) 결국 그로 하여금 일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 12: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

 

말씀은 가지로 해석된다.

 

(1) " 여자로 하여금 지금 향유 붓고 남은것을 보관시켜 후일에 (예수님 자신) 장례 때에 사용하게 하라" 뜻이라 .

 

(2) " 여자의 향유 붓는 행동을 중단시키지 말라. 행동이 (예수님 자신) 장례를 예비하는 의미를 가진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해석이 옳다.

 

"이를 두게 하라" 말은, "향유를 보관한 일이 되게 하라" 의미인데, 그것을 보관해 왔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때에 사용하기 위하여 향유를 그때까지 보관하였던 것이다.

 

칼빈(Calvin) 점에 있어서 귀중한 뜻을 지적한다.

 

, "마리아는 그런 비싼 의식(儀式) 흔히 실행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죽음을 위하여 이렇게 희귀한 행위를 취한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흔히 외부적으로 찬란한 의식에 치중함을 금하신다.

 

어떤 해석가들이 마리아의 일에 기준하여 추론하기를, 의식을 성대히 갖춘 예배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마리아의 일은 때에 필요하였으나 신약 계시가 완성 후에는 그런 방식의 의식(儀式) 행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Calvin's Commentary, John's Gospel, Vol. , 가가. 13-14).

 

 

 

[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서부사본(西部寫本) 대표격인 베사 사본(D)에는 말씀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보다 유력한 사본들에 있으니, 말씀은 원본대로 전해진 것임이 분명하다. (Godet).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것은 15:11 말씀과 같다.

 

( 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경내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손을 펼지니라)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은,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언제나 돌아볼 책임이 있음을 지시하신다.

 

(13: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다만 시간적 순서로 , 때에는 예수님의 죽으심의 중요성을 예언적으로 표시하는 의미에서 비싼 향유를 사용함이 합당하다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언 행위는, 복음 전파의 행위이다.

그것은 지극히 귀한 일이며, 따라서 일을 위하여 비싼 향유라도 소비할만하다.

 

스킬더(K. Schilder) 말하기를, 점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왕으로 말씀하시면서

 

"먼저 나요 다음에 너희들이라" 하신 셈이라고 하였다.

(Christus in Zijn Lijden, Kampen, p.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