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거듭난 삶 2019. 9. 1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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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에 대한 경고

 

: [ 16:1-4]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말을 것은 너희로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 16: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 '이것' 버나드(Bernard) 핍박 외에 보혜사 성령에 대한 약속이 '이것'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는 표현으로 보아 '이것' '핍박'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하겠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15:26, 27 보혜사 성령에 관한 내용도 전혀 배제할 없다.

 

(15:26-27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한편 구절과 같은 표현이 15:11에도 나오지만 구절에서는 부정문이 뒤이어 진술된다.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5:11에서는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연합이 강조되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진술된 반면

 

구절은 '핍박' 강조된 뒤에 언급되고 있으므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 '실족하다' '넘어뜨리다' 의미하는데 본서에서는 '기독교의 신앙을 포기하는 ', '배교'(背敎) 의미한다. (C.K. Barrett).

 

그렇지만 단어가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마태복음에서는 '배교' 아니라

 

( 11: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26:31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죄를 범하는 것을 뜻한다.

 

( 5:29 만일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백체 하나가 없어지고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여기서 예수는 유대 사회에서 가장 징계인 '출회'(혹은 출교) 사형을 염두에 두고 계신(2) 같다.

 

예수는 자신이 십자가에 체포될 제자들이 흩어지고 수제자 베드로조차 예수를 부인하게 것을 미리 아시기 때문에 그들 혼자의 힘으로 앞으로 닥쳐올 박해를 견딜 없음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이 그와 같은 박해를 만날 그의 말씀을 기억하여 실족하지 않도록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너희를 출교할 아니라 - 우리는 제자들이 유대인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출회' '유대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것만 의미하지 않고 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유대 랍비들은 '출회' 가지로 세분 하였으나 구약적 의미에서 '출회'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되어 유대인들과 교제의 떡을 없는 것을 의미했다.

 

* 참조 (9:22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따라서 예수를 믿는 신앙과 예수를 배척하는 유대교의 긴장 관계는 제자들이 현실적으로 직면하는 문제였다.

 

'출회' 종교적인 것으로부터 쫓겨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당시대의 문화, 교육, 경제 외에 사소한 마을의 공고문이나 사장 정보 등으로 부터도 분리되는 현실적인 고난이었다.

 

실제로 유대 지도자들은 급속히 성장하는 기독교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유대 기독교인들을 회당으로부터 파문(excommunication)시키는 일들을 강행했으며 주후 90년경에는 랍비 가말리엘 2(Rabbi Gamalie II) 기독교를 이단으로 정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기도교인들은 '출회'라는 고난의 역사를 통하여 신앙을 더욱 돈독히 하여 새로운 기독교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때가 이르면 - '' 번역된 '호라' 관사 없이 사용되었다. '호라' 본서에서 관사와 함께 예수의 사역과 관련하여 가지로 구분되어 언급되었다.

 

(1) 아직 이르지 아니한 '' 의미로 사용되었다.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7:6 예수께서 이르시되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준비되어 있느니라,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8:20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2) 이미 성취된 '' 의미로 사용되었다.

 

(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7 지금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때에 왔나이다;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6:32 보라 너희가 각각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17:1 예수께서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가지 때의 관계를 오스카 쿨만(O. Cullmann) '이미' '아직' 긴장 관계로 표현한 있다.

 

그러나 본절의 '' 예수의 사역과는 관계가 없다.

 

'' 예수가 세상을 떠나신 있게 제자들 성도들의 순교의 '',

박해의 '' 가리킨다.

 

본문에서 요한이 관사를 생략한 것은 예수의 사역과 관련된 때와 구분함과 동시에 박해가 어느 시대이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던 같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 이와 같이 말하는 자들이 구체적으로 행하는 일들은 앞에서 언급되었던 것으로

 

(1) 출회시키는 일과

(2) 죽이는 일이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하는 열광적인 자들에 의하여 수많은 신앙인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다.

 

사도 바울은 그가 다메섹에서의 개심(改心) 전에는 하나님 섬기는 열심으로 성도들을 죽이고, 외국에 있는 성읍 다메섹까지 찾아가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다고 고백했다.

 

( 26:9-12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모든 회당에서 여러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거나 사형당했다. 그외에 종교 개혁 지도자들이 로마 교회로부터 숱한 박해와 순교를 당했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적 맹신이 빚은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그러나 성도들은, 예수도 같은 유대 지도자들의 편견과 독선에 사로잡힌 맹신의 결과로 십자가를 지셨기에 이런 일을 당할 이상히 여길 필요가 없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앞으로 있을 핍박에 대해 미리 가르치신 이유도 그들이 일을 당할 이상히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16:3] 그들이 이런 일을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 구절은 5:21 반복으로 예수는 2절에 기록된 광신적인 핍박자들의 열심이 영적 무지에 근거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에 대한 자신의 지나친 열심이 그리스도께서 바울 자신에게 계시하기 이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고백했다.

 

( 1:13-14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동족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무지는 이성적인 지식의 결핍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데서 기인함으로써 종교적 독선과 아집 편견에 사로잡힌 상태를 의미한다.

 

( 3: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아노라;

 

고전 2:8 지혜는 세대의 통치자들이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어느 시대에서든지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단지 성경 지식만을 소유한 사람은 바리새인들이 지녔던 것과 같은 종교적 독선과 편견으로 인해 형제를 핍박하는 무지에 빠질 있다.

 

 

 

[ 16:4] 오직 너희에게 말을 것은 너희로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 예수께서는 종종 미래에 되어질 일들에 관하여 말씀하실

 

' 말을 이른 ' 같은 표현을 사용하셨다.

 

(2:22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13: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16: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특히 13:19에서는 표현이 제자들의 믿음과 관련이 있지만

 

(13: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본절에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있을 제자들의 사역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제자들은 앞날에 닥칠 자신들의 일들을 미리 예수로부터 직접 들은 실제로 일을 당하게 되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위로와 확신과 기쁨을 얻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성령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예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14:26 보혜사 아버지께서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들은 핍박을 당할지라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 '처음부터' 표현은 예수의 공생애 시작 또는 예수가 제자들을 만난 시점을 의미한다.(H. R. Reynolds).

 

그런데 그때부터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있을 핍박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 가지로 해석될 있다.

 

(1)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활동하면서 그가 행하시는 일들뿐 아니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끊임없는 핍박을 목격했으므로 구태여 그러한 핍박에 대해 말씀하실 필요가 없었다.

 

(11: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2) 예수가 땅에 계시는 동안은 핍박의 대상이 예수 자신이었으므로 핍박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이 떠날 시간이 다가왔으므로 제자들이 핍박의 대상이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실 필요가 있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가 행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이해하지 못했을 때가 많았으며

 

(14:8-9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때로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처음부터 핍박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면 그들은 더욱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