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거듭난 삶 2019. 9. 3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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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위한 간구

 

: [ 17:6-9]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아버지로부터 것인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 예수는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12:28)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은 아버지의 (4) 이루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인물 전체를 대변하는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예수께서 나타낸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품성, 인격, 능력, 구속 사역, 은혜, 사랑 모두를 포함하며

그것은 예수 자신의 모든 사역을 통하여 세상 앞에 현현(顯現)(Manifestation)되어졌다.

 

예수의 자기 계시는 신적 존재의 영원하고 본질적인 '사랑' 세상에 나타내신 것이다.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는 대략 가지 견해로 갈린다.

 

(1) 이미 그들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되어 있었음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Beza, Calvin).

(2) 예수를 만나기 전에 그들은 언약의 체제 하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었음을 갈리킨다고 보는 견해.

 

하나를 확증적으로 지지하기는 어려우나 문맥상 (1) 견해가 무난하리라 본다.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 하나님과의 정당한 관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써 유지된다.

 

사실 본서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단지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으며,

 

(8: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

 

(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말을 지키리니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또는 '계명들' 지키도록 명령받았다.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같이 너희도 계명을 지키면 사랑 안에 거하리라)

 

한편 예수는 자신의 말이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하시며 자신의 말을 지키는 자를 아버지께서 사랑하리라고 하셨다.

 

(14:23-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말을 지키리니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따라서 본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는 것은

율법(노모스)이나 구약의 계명들(엔톨레) 준수했다는 의미보다

 

본서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말씀'(로고스)이신 예수를 영접했다는 의미로 이해될 있다.

 

 

 

[ 17: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아버지로부터 것인 알았나이다 - 예수는 자신의 구체적인 선교 사역이 아버지에게 의존(依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본절을 앞절과 연결시켜 이해하면,

본절은 제자들이 예수 자신의 말씀을 지킴으로 아버지의 말씀을 지킬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이란 단지 '예수의 말씀'이나 '이적' 사역에 필요한 요소들 뿐만 아니라 예수 안에 포함된 모든 것들을 강조하여 표현한 말이다.(Lenski).

 

반면에 제자들이 '알았다'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비밀을 알았다는 의미보다는 예수의 하시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에 대한 지식일 것이다.

 

한편 '지금'이라는 말은 지금까지 예수의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제자들이 드디어 예수의 모든 것이 하나님과 연유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 17: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 헬라어 원문에서 본절은 '왜냐하면'으로 시작함으로써 앞절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여기서 '말씀' 입술로써 이야기한 것과 같은 하나님의 개개의 말씀들을 지칭한다.

 

(3: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이는 말로써 전달한 사상을 뜻하고 '로고스'(6, 14) 구분된다.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본서에서 '로고스' 말이라는 의미 보다는 '예수의 인격' 관계되어 많이 사용되었다.

 

한편 본절 속에는 다섯 개의 부정 과거 동사가 나온다.

 

먼저, 개는 예수께 관한 것이며 나머지 개는 제자들에 관한 것이다.

 

(1) '나오다' '보내다'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역사적인 사실을 나타내는 부정과거로 사용되었다(Lenski).

 

반면에

 

(2) 나머지 '받았다', '믿었다' 등은 제자들의 영적 상태의 변화를 암시한다.

 

제자들은 동시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의심을 품고서 말씀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 대한 이해와 지식으로 성장해 갔으며 (16:30)으로부터 믿음이 생겨났다.

 

(16: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물론 '아는 ' '믿는 ' 시간적 순서를 엄격히 규정(規程)하기란 쉽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 표현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따라서 보다 중요한 것은 안다는 것과 믿는 것은 순서에 관계없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본절에서 강조하는 바는 말씀을 받음으로 그들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1:12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17: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 본절에서 예수께서 위하여 간구하는 대상을 제자들에게만 제한시키셨다고 해서 세상을 위하여 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제자들은 세상과 구별되어 있다.(L. Morris).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과 제자들은 밀접한 상호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Lenski),

예수는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유지시키신다.

 

특히 '비옵나니' 종속 관계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말하는 것을 가리키며, 이는 중보자로서의 예수의 신적 신분을 시사한다.

 

한편 예수께서는 '세상' 위해서도 기도하신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며 궁극적으로 세상 역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대상이다.

 

(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본장 속에서도 예수는

 

세상이 '믿을 '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세상이 '알게 ' 위해 기도하신다.

 

(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예수는 제자들의 죄만을 짊어지신 것이 아니라 세상 죄를 짊어지셨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는 세상의 어리석음과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하셨다.

 

(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세상은 제자들과 달리 하나님과 대립적(對立的) 위치에 있다.

 

따라서 기도의 내용이 서로 다른 것은 필연적이며, 세상을 위한 기도는 이상 세상이 '세상적'이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고 나아가 회개에 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L. Morris, C.K. Barrett).

 

예수는 세상에서 그의 말씀을 듣고 회개를 외쳐야 하는 제자들을 위해 먼저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