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거듭난 삶 2019. 10. 4.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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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위한 간구 5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간구]

 

: [ 17:20-26] 내가 비옵는 것은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사람들만 - 말은 단순히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사람들로서 예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본장의 기도가 만찬에서 행해진 것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18:1 만찬에서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18:1 예수께서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왜냐하면 공관복음서는 예수가 만찬 곧바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희 말을 인하여 - ''(로고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자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메시지 전체를 드러내는 복음적인 가르침을 의미한다(Bernard).

 

이런 의미에서 제자들에 의하여 전달된 메시지 역시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본질적으로 '진리'이다.

 

제자들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원문상 진리 '안에서'(19)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 성도들의 믿음은 제자들의 말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제자들의 믿음이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것에서 기인하듯이 그들의 보내심을 받음(18) 통하여 믿음을 가진 새로운 신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교회를 세우리니'( 16:18)라고 말씀하실 제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질 지상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이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 전파자의 사명을 강조하기 위해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0:14)라고 진술했다.

 

이처럼 교회의 기초(基礎) 말씀이며, 말씀이 전파될 교회는 형성된다.

 

믿는 사람들 - '믿는 사람들' 현재 분사형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미래적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할 같다.(L. Morris, Turner, Bernard)

 

미래적 의미를 현재 분사로 나타내는 용법은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어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므로 말은 '믿게 자들' 번역하는 것이 분명한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많은 영역 성경들은 미래형으로 번역했다. (KJV, Scoffield Bible, Jerusalem Bible, MLB, NIV, LB).

 

 

 

[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어 - 본절에는 '하나' 이끄는 가지의 목적절이 나온다.

 

목적절은 모두 20절의 '내가 비옵는 것은' 연결된다.

 

본문은 그중 번째 '하나'절로서

성도 공동체의 연합을 성부와 성자의 일체성에 근거하여 간구하는 내용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어 그의 일을 하시며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으므로 분은 하나로 존재하고 일하신다.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듯이

 

(11 나는 세상에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저들의 증거를 통해 얻게 사람들, 교회 역시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신다.(C.K. Barrett).

 

그러나 하나 됨이 의미가 제도적이거나 조직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서는 된다. 더구나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주체성을 상실한 기계적으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존재 양식에 있어서 각각 독립적이나 본질에 있어서는 완전한 일체를 이루듯이 교회내의 지체들도 나름대로의 다양한 특성을 지니는 가운데 통일성(統一性) 띠는 것이다.

 

(15:1-8 나는 참포도나무요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없음 같이 너희도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안에, 내가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없음이라

6) 사람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안에 거하고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제자가 되리라;

 

고전 12:12-13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몸이 되었고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그러나 성도들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는 질적 측면에서 엄연히 구분된다.

 

우리 안에 있게 하사 - 이는 번째 '' 이끄는 목적절이다.

 

예수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사실을 전제하고서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로 묶어 '우리 안에'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역으로 아버지와 아들도 우리들 안에 와서 거처를 삼으시고 함께 하신다는 점을 시사한다.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말을 지키리니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하나' 이끄는 세번째 목적절은 앞의 목적절의 결과로 등장한다.

 

성도 공동체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일체를 이룸으로써 세상이 이를 통해 믿음을 갖게 되기를 간구하시는 내용이다.

 

물론 이는 세상 전체가 믿음을 갖게 되리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15: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다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죄를 핑계할 없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아버지를 보았고 미워하였도다)

 

다만 세상 사람들 중에는 지금은 비록 불신 가운데 있지만 장차 믿음과 구원에 이르게 자들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세상을 감동시키는 성도들의 하나 됨은 성도들의 배후에서 하나가 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능력과 모든 은혜에 의한 것이다.

 

결국 성도들은 예수와 하나님 안에 거하는 풍성한 은혜와 연합(聯合) 증거들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게 주신 영광을 - 예수의 영광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했던 영광과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지상의 모든 사역을 마친 후에 아버지와 함께 누릴 영광들을 모두 포함한다.

 

특히 예수는 마지막 설교와

 

* 참조 : (16:14 오직 너희에게 말을 것은 너희로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대제사장적 기도 속에서 십자가와 영광을 분명하게 연결시키셨다.

따라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영광은 아들이 행하는 모든 사역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십자가를 통해 영광의 역설적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 제자들 역시 아들의 영광을 소유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이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영광이요 영원히 사랑 가운데 거하는 축복이다.

 

(딤후 2:12 참으면 또한 함께 노릇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20:4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동안 노릇 하니)

 

아들의 영광이 아버지의 모든 뜻에 순종하는 속에서 나타났듯이 제자들의 영광도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가운데서 나타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각기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뒤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셨다.

 

( 9:23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믿음 안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함으로 순종과 겸손과 수난을 통하여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성도들의 십자가이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형벌이 아니라 제자 됨의 사명과 하나님의 자녀 됨의 존귀함을 드러내는 것이다(Barclay).

 

따라서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박힘으로 획득한 영광을 세상 가운데서 실제적으로 나타낼 때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그곳에서 영원한 영광을 보게 것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17: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1절의 문장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21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내주하는 속에

제자들도 함께 거한다는 논조(論調) 전개되지만,

본절은 보다 수직적인 의미에서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제자들의 관계를 하나로 묘사하고 있다.

 

제자들과 아버지의 상호 연합을 위한 중보적 매개체로서의 아들을 설명하면서 세상 가운데서 사랑을 나타내야 제자들의 온전한 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L. Morris).

 

다시 말해서 제자들이 아버지와 연합할 있는 것은 아들이 제자들 안에도 있고 또한 아버지 안에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들을 통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느니라)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 구절은 '저희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12)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제자들이 세상에 드러내어야 온전한 하나 됨을 강조하고 있다.

 

'온전함' '수행하다', '완성하다'(4:34;5:36;17:4) 등의 의미이며 성경 말씀의 '성취'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

 

(19:28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제자들의 하나됨은 아버지와 아들의 온전한 일체(一體) 수중에로 지향되어 가야 한다. 그리고 온전함을 이루라는 것은 하나가 되기까지 온전히 장성하라는 뜻이며 또한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최종적인 연합과 완성은 마지막 때에 성취될 것이지만 교회는 성장의 모든 단계에서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된다.(C.K. Barrett).

 

세상으로 알게 하려 -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이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을 보면, 설령 믿음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감탄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궁극적으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려는 계획과 연결된다( 2:10).

 

한편, 하나님의 사랑과 아들을 보내심이 불가분적 관계에 있음과 같이 제자들을 사랑하는 것과 그들을 세상에 보내는 역시 불가분적 관계에 있다.

 

성도들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로서 나타나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基礎) 때에만 가능하다.

 

 

 

[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 ' 있는 '이란 세상의 어느 곳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이다.

 

예수는 앞에서 제자들에게 '나의 가는 곳에 없다'(13:33) 말씀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후에는 따라 오리라'(13:36)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은 결국 미래의 시점을 염두에 것이며, 종말론적인 소망에 관한 것이다(C.K. Barrett).

 

예수께서 세상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이라고(11) 말씀하심으로 임박한 십자가의 수난과 영광을 예고하신 있다.

 

이제 제자들을 당신이 계신 곳에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저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뒤를 좇아 고난에 동참하라는 것이며 또한 고난 뒤에 있을 영광에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L. Morris).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이미 영광에 참예하였으나(22)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보좌에 앉으신 그의 영광에 참예하게 것이다.

 

(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 - 22절에서 '영광' 지상 사역의 절정인 십자가 죽음과 주로 연관된 것임에 반해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본절은 미래에 회복될 영광에 강조점을 둔다.

 

영광은 그가 창세 전부터 가지고 있던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의미한다.

본절은 그리스도의 신적 선재성(先在性) 회고하며 동시에 미래적 완성을 바라보고 있다.

 

성도들은 지금은 거울 보는 것과 같이 희미하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있으나 그때에는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과 같이 보게 것이다.

 

( 22:4 그의 얼굴을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 17: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알았사옵나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 요한은 형용사 '의로운'(디카이오스) 하나님에게만 사용하고 있다(C.K. Barrett).

 

칭호는 11절의 '거룩하신 아버지' 같이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신구약 전체에서 강조되는 사항이다.

 

( 12: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116: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119:137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3:26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6: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하나님의 의는 근본적으로 불의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을 구별하는 칭호이며, 주님은 아버지의 의로우심을 선포하심으로 아버지에 대하여 무지한 가운데 있는 불의한 세상을 단호히 정죄(情罪)하고 있다.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 세상의 무지는 가지로 지적되는데 하나는 아버지에 대한 무지이며 하나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셨다는 사실에 대한 무지이다.

 

예수는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낸 것을 믿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셨으며 또한 세상의 믿음을 위하여 제자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되기를 기도하셨다.

 

(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본문에서는 아버지와 제자들 사이를 연결시키는 중보자로서의 예수의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제자들은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를 알게 되었으나 세상은 아들을 거부함으로 여전히 무지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 제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중재된 지식이다.

 

 

 

[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알게 하리니 - 아버지의 이름은 아버지의 본성을 의미하며 아들의 지상 사역 가운데서 가장 확연히 나타났다.

 

아들은 땅에서 행하는 모든 행동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격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알게 하리니' 장래의 사건을 암시하는데 혹자는 바로 이후에 있을 십자가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며(L. Morris)

 

또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성경이 증거할 사역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Reynolds, C.K. Barrett).

 

우리는 본문이 가지 모두를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겠다.

 

저희 안에 있게 하려 - 이는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말씀하신 마지막 설교의 부분과 연관을 맺고 있으며 또한 제자들이 장래에 알게 사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예수는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그들 안에 영원히 머물 것이다.

 

(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