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거듭난 삶 2019. 10. 9.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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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스의 심문

[하나님 아들의 수난]

 

: [ 18:19-24]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 18: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대제사장 - 예수께서 체포당하신 해의 공식적 대제사장은 가야바였으며 예수가 붙잡혀 곳은 안나스가 있는 곳이었다.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 - 안나스의 심문은 예수의 의도들에 초점이 있다.

 

안나스는 가지를 묻는데 하나는 예수의 제자들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교훈에 관한 것이다.

 

전자는 제자들의 숫자, 성향,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 모으는 이유 등에 관한 것일 있다.

 

그리고 후자는 다음 가지로 해석된다.

 

(1) 예수는 가르침을 통해 어떤 것을 기대하는가 그의 교훈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으로 예수가 제자들을 규합하여 무력혁명을 일으키려 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고 있다.

 

(11:47-48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2) 예수가 가르치는 중심 교의가 무엇이냐 하는 것으로 예수의 가르침에서 구약의 교훈에 반하는 이교적인 사상을 찾아내 정죄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있다.

 

 

 

[ 18: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드러내어 놓고 - 안나스의 가지 질문 가운데 예수는 제자에 관한 것은 대답하시지 않고 교훈에 관한 것만 대답하셨다.

 

예수는 안나스가 묻는 질문의 의도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의 물음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안나스는 거만과 권위에 도취되어 지극히 상투적인 질문으로 예수의 가르침이 이교적이고 폭력적이라고 인정할만한 혐의를 잡아내려 했지만 예수는 자기의 모든 언행이 공개적이었음을 밝힘으로써 안나스의 의도를 좌절시킨다.

 

세상에 - '세상' 주로 공중 권세 잡은 마귀의 활동 영역으로 언급되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인간들이 사는 생활 터전을 의미한다.

 

그리고 말은 예수의 교훈이 공개적이었음을 말하는 다른 표현이다. 예수는 결코 은밀한 곳에서 비밀스럽고 파괴적인 것을 가르치지 않았고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회당과 성전 - 예수께서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는 것은 그의 가르침이 공개적이었음을 결정적으로 증명해 준다.

 

회당에서의 가르침은 6:59,

 

(6:59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성전에서의 가르침은 7:14;8:20 언급된다.

 

(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8:20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은밀히는 아무것도 - 예수는 쿰란 종파와 같이 은밀하게 공동체를 형성하여 엄격한 제한을 두어 가르치지 않고 언제나 공개적으로 가르치셨으므로 산헤드린 회원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교훈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다.

 

 

 

[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 예수는 안나스가 질문을 통하여 포착하고자 의도한 어떤 내용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의 물음 자체가 어리석은 것임을 지적하셨다.

 

안나스는 예수가 공개적으로 가르치신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고는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 그들은 예수를 잡기 위해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질문한 것은 예수의 발언 가운데서 책잡을 만한 것을 찾아 내고자 함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재판 원칙은 피고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강요받을 없으며, 피고의 진술을 유죄의 근거로 삼을 수도 없게 되어 있다.

 

다만 증인들의 증언이나 구체적인 물증의 객관성과 타당성에 의해서만 유죄를 선언할 있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예수는 안나스의 교활한 음모에 일침을 가하면서 증인들을 요구하고 있다.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 예수의 요구는 잔꾀를 부리지 말고 적법한 방식으로 증거를 제시하라는 뜻이다.

 

참고로 공관복음서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산헤드린은 예수를 심문함에 있어서 비록 거짓된 증인들이었지만 그들로 하여금 증언하게 하여 심문을 하는 모습이 묘사되고 있음을 있다.

 

( 26:59-63 대제사장들과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사람이 와서

61) 가로되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있다 하더라 하니

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뇨 하되

63)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14:55-59 대제사장들과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으나 증거가 서로 합하지 못함이라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여 가로되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 오히려 증거도 서로 합하지 않더라).

 

 

 

[ 18:22]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 '하속' 직역하면 '관원들 곁에 있었던 사람' 의미한다.

 

표현으로 보아 사람은 대제사장의 경호원이거나 산헤드린 경비원이었을 것이다. 그는 안나스를 대하는 예수의 태도가 불손하다고 느꼈던지 손으로 예수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다드(C.H.Dodd) 구절을 예수의 수난과 관련된 50:6 연관지어 예수가 손으로 뺨을 맞았다고 추정한다.

 

( 50: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뱉음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따라서 본문의 묘사는 손으로 뺨을 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랍비 율법에 의하면 심문 중에 있는 피고는 대제사장의 질문에 순순히 응해야 한다.

 

이것과 관련하여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대제사장에게 설득당하지 않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에게 불경건한 자처럼 정의를 등지는 것이다'(Josephus, C. Apion, II). 그러나 이런 것은 지극히 권위주의적이고 편의주의적 발상일 뿐으로 피고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강요받지 않는다는 랍비적인 가르침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또한 대제사장 안나스의 하속이 예수의 뺨을 친것은 정당한 선고에 의해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육체적 가혹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유대법에 위배되는 불법적 과잉 충성의 행위였다.

 

특히 유대인들에게 있어 어떤 사람의 뺨을 친다는 행위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런 행위는 거의 금기시되었다. 따라서 예수께서 뺨을 맞은 것은 말할 없는 수욕(羞辱) 의미하며 또한 50:6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있다.

 

 

 

[ 18: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 본문에서 예수는 정당한 항의를 한다.

 

만약 예수가 가운데 잘못된 것이 있다면 대제사장이 정당하게 심판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심판이 내려지기도 전에 또는 그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이의 제기는 지극히 정당했다.

그것은 안나스의 침묵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한편 본절에서 보여준 예수의 태도는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쪽 뺨도 돌려 대라' 그의 말씀( 5:39) 모순되는 것으로 이해될 있다.

 

그러나 말씀의 핵심은 상대방의 행위에 대하여 절대 복수하지 말라는 데에 강조됨이 있다. 지금 예수가 보여준 행동은 정당한 발언을 것일 뿐이었다.

 

 

 

[18: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 안나스는 자기의 의도가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고 있으며 그리하여 이상의 심문을 포기하고 예수를 당시의 실제적인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었다.

 

요한은 안나스가 예수를 가야바에게 보냈다는 짧은 기록만을 남길 공관복음서에서 자세히 언급된 가야바 앞에서의 심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 26:57-68 예수를 잡은 자들이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뜰에까지 가서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

59) 대제사장들과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사람이 와서

61) 가로되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있다 하더라 하니

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뇨 하되

63)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66) 생각이 어떠하뇨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자가 누구냐 하더라;

 

14:53-65 저희가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모이더라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뜰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55) 대제사장들과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으나 증거가 서로 합하지 못함이라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여 가로되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 오히려 증거도 서로 합하지 않더라

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가로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1)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증인을 요구하리요

64)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22:66-71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이어 예수를 공회로 끌어들여

67)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여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68)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할 것이니라

69) 그러나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70) 가로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

71) 저희가 가로되 어찌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대신 요한은 베드로의 부인(否認) 이야기를 강조했다.

 

아마 요한은 가야바를 수장으로 하는 산헤드린이 예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 거짓증언과 억지로 인한 것이었으며 사실상 예수는 무죄하였다는 사실이 빌라도 앞에서의 심리 과정에서 충분히 드러난다고 보아 가야바 앞에서의 심문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요한은 안나스가 당시 가야바보다 실제적인 영향력을 많이 끼칠 있었으므로 안나스 앞에서의 심문만 묘사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