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있은지 일곱 달이라

거듭난 삶 2021. 1. 2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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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 반환을 위한 회의

 

성 경: [삼상 6:1-3]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있은지 일곱 달이라

2) 블레셋 사람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꼬 그것을 어떻게 본처로 보낼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3) 그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연고도 알리라.

 

 

 

[삼상 6: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있은지 일곱 달이라

 

 

여호와의 궤 - [3:14-17]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15)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블레셋 사람의 지방 - 여기서 '지방'(사데)'', ''을 뜻한다는 점에서,

 

(2: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왕하 4:39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서 야등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서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저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그 당시 언약궤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빈 들(field)에 보관되어 왔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언약궤가 들어간 도시마다 여지없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즉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빈들에 보관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 한 것이다.

 

 

일곱 달 - 이것은 물론 문자적인 일곱 달(seven months)을 의미한다.

하지만 성경의 숫자 표기상 '일곱'(7)이라는 숫자가

보통 '완전함'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언약궤가 블레셋 사람들에 의하여

대책없이 빈 들에서 너무 오래 방치되어 있었음을 강조한 말로 볼 수도 있다.

 

 

 

[삼상 6:2] 블레셋 사람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꼬 그것을 어떻게 본처로 보낼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잘못 다룸으로써

엄청난 재앙을 만났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제 정치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종교적인 방식에 의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5:8 이에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할꼬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10-11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가로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11)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 '제사장'(코하님)은 구약 성경에서

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제사 직분자에게 적용되지만,

여기서처럼 이교(異敎)의 제사장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사용된다.

 

(3:11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그런데 이 이교의 블레셋 제사장들은 말할 나위도 없이

다곤(Dagon) 우상숭배 의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자들이었다.

 

한편 '복술자'(코세밈)는 원래 '몫을 나누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즉 복술자(卜術者)는 작은 나무 가지들을 흔들다가

그것이 나뉘어져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점()을 치던 자들이었다.

 

(23:23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하리로다;

 

18:10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을 하는 자나 무당이나).

 

그런데 이들은 이스라엘이 극도로 타락했던 시기에는 이스라엘 안에도 존재했고,

또한 지도층 인사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3:2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아무튼 이들이 소집된 것은,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궤를 돌려보내는 구체적인 방법 및

궤를 다루는 요령에 대해,

그리고 복술자들은 궤를 돌려보낼 날짜와 시기 등에 대해

블레셋 방백들에게 조언하기 위함이었다(Pulpit Commentary).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꼬 - 블레셋 방백들의 이 질문은

또 다른 재앙없이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질문이었다.

 

 

본처로 보낼 것을 - 이 말은 법궤를 빼앗기기 이전 법궤가 안치되었던

실로(Shiloh)의 성소가 여전히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발굴된 고고학적 자료에 따르면,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 전투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 영토로 쳐들어 갔고, 심지어 그들은 실로의 성소까지도

그때 파괴했던 것 같다. (Albright).

 

(7: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26:6 내가 이 집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따라서 여기의 '본처'(本處)는 실로(Shiloh)라는 특정 장소를 뜻하지 않고,

단지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삼상 6:3] 그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연고도 알리라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 본 구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 나라 사람들로부터 '. 금 패물과 의복'을 받아 나왔던 사건과 유사하다.

 

(3: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갈 때에 빈 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11:2 백성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12:35-36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105:37 그들을 인도하여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 지파 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1:6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드렸더라).

 

더욱이 두 사건의 밀접한 유사성(類似性)

다음과 같은 사실들로써 명백히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

 

첫째,

본서 6:8과 출애굽기 12:35 모두 언약궤 및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돌려보낼 때 함께 보낼 예물을 언급하면서

공히 '켈리'('물건') 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6: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 드릴 금 보물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12: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둘째,

본문에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나 출애굽 시의 상황 모두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극심한 징벌을 받은 후에야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언약궤 및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돌려 보내기로 작정하였다.

 

(5:3-12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더라

5)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당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할지라 그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8) 이에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할꼬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9) 그것을 옮겨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에 더하사 성읍 사람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종이 나게 하신지라

10)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가로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11)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 참조 : (7:10-12:30)

 

 

한편 바로 이같은 사실들은,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실수로

타인의 소유물이나 사람을 취했을 경우에는

그 실수를 깨달은 직후 잘못 취한 물건이나 사람을 돌려보내면서

실수에 따른 보상금(報償金)을 지불 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Klein).

 

한편 여기서 '보내지'(테솰레후)는 잘못으로 취한 물건이나 사람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보내는 것을 가리킨다.

 

(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21:34 그 구덩이 주인이 잘 조처하여 짐승의 임자에게 돈을 줄 것이요 죽은 것은 그의 차지가 될지니라;

 

삼하 9:7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 여기서 ''는 물론 여호와 하나님을 뜻한다.

따라서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무언가 잘못을

범하였음을 인정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한편 '속건제'(아솽)는 모세 율법대로 따른다면

하나님의 성물(聖物)이나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죄를 범했을 경우에

그 죄를 속함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혹은 예물이다.

 

(5:14-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5)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그릇 범과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너의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수양을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16) 성물에 대한 범과를 갚되 그것에 오분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수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이때 죄를 범한 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피해자에게 피해물 외에 별도로 1/5을 배상금 조로 주어야 했다.

 

(6: 5-6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 보내되 곧 그 본물에 오분 일을 더하여 돌려 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6) 그는 또 그 속건제를 여호와께 가져 올지니 곧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수양을 속건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어 올 것이요).

 

따라서 모세 율법에서 언급되고 있는 속건제(repayment offering)

배상(賠償)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견지에서, 여기서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이

모세 율법에서처럼 체계적으로 정리된 '속건제'(贖愆祭)라는 개념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하여 의심치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 '아솽'이라는 단어가 '배상'의 뜻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고 볼 때,

블레셋 사람들은 단순히 하나님께 대해 인간적 차원의 배상을 위하여

이와 같은 예물을 생각한 듯하다.

 

또한 이같은 판단은 본 구절에서 원상회복의 의미가 있는

'보내다'(솰라흐)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확증될 수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의 '속건제'는 차라리 '배상'이라는 말로

번역함이 더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Klein).

 

 

그리하면 병도 낫고 - 블레셋 술사(術士)들이 여호와께 예물을 바치려고 했던

첫 번째 이유였다.

여기서 ''은 말한 나위 없이 쥐에 의해서 전염되어지는 독종(毒種),

곧 흑사병(pest)의 일종이었다.

 

(5: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니).

 

 

그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연고도 알리라 - 이것은 블레셋 술사들이

여호와께 예물을 바치려고 한, 두 번째 이유이다.

즉 그들은 예물을 바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멈춰진다면,

블레셋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그같은 진노가 내려진 것으로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란 점을 언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