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글락을 얻은 다윗
성 경: [삼상 27:5-7]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께 은혜를 받았거든 지방 성읍 중 한 곳을 주어 나로 거하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거하리이까
6)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7)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한 날 수는 일년 넉달이었더라.
[삼상 27:5]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께 은혜를 받았거든 지방 성읍 중 한 곳을 주어 나로 거하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거하리이까
▶ 내가 당신께 은혜를 받았거든 – 문자적으로는
`내가 당신의 눈에서 호의를 발견했거든',
(If I have found favor in your eyes, NIV)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결국 다윗이 `아기스'와
용병(傭兵) 관계를 형성한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다윗은 아기스와 용병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그에게 적절한 요구를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아기스는 다윗과 바로 이같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정치. 군사적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을 것이다.
▶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거하리이까 - 당시 다윗의 군사가
약 육백 명이었다면,
(2절 다윗이 일어나서 자기와 함께 있던 육백 명과 함께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그의 가족까지의 숫자를 모두 합칠 경우 거의 삼천 명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많은 숫자는 `왕도'(王都) 가드의 시민들과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항상 있었다.
바로 이같은 점을 내세워서 다윗은 왕도 `가드'를 떠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이 가드를 떠나려고 했던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였다.
즉, 다윗이 지방 성읍의
독립된 거주지를 요구한 진정한 이유는
(1) 우상 숭배가 성행하던 가드에서 가주할 경우
자신의 백성들이 이교적(異敎的) 혼합주의에 빠져들 우려가 충분히 있었고,
(5:8-9 그러므로 그들이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영주를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궤를 어떻게 처리하랴? 한즉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궤를 가드로 옮겨가라, 하므로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궤를 거기로 옮겨갔더니
9) 그들이 그 궤를 옮겨간 뒤에 주의 손이 매우 큰 파멸과 함께 그 도시를 치니라. 그분께서 큰 자든 작은 자든 그 도시 사람들을 치시므로 그들의 은밀한 부위에 종기가 나니라;
26:19 그러므로 이제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주의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주께서 왕을 움직이사 나를 치셨으면 그분께서 헌물을 받으시리이다. 하오나 만일 그들이 사람들의 자녀들이면 주 앞에서 그들이 저주를 받으리니 그들이 말하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이 날 나를 쫓아내어 주의 상속 재산 안에 머물지 못하게 하였나이다),
(2) 다윗이 아기스의 궁전에 자주 출입할 경우,
아기스의 신하들에게시기의 대상이 될 우려가 또한 있었으며,
(21:11 아기스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그들이 춤추며 그에 관해 서로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 다윗은 수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므로;
29:4-5 블레셋 사람들의 통치자들이 그에게 노하니라. 블레셋 사람들의 통치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자를 돌려보내어 그가 왕이 그를 위해 정해 준 그의 처소로 다시 가게 하소서. 그가 우리와 함께 싸움터에 내려가게 하지 말지니 그가 싸움터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염려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자기 주인과 화해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가 아니니이까?
5) 그들이 춤추며 서로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 다윗은 수만이로다, 하던 자가 이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라),
(3) 그리고 다윗이 가드를 떠날 경우 아기스의 정치적 영향권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이점 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상 27:6]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 아기스 왕에 대한
다윗의 간청이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곧 아기스가 다윗과 자신을 호혜적(互惠的) 관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가드 왕 아기스가 망명객 다윗을 영접하고 그에게
식읍(食邑)으로서 `시글락'을 수여하는 등 다윗을 환대한 것은,
사울과 분명한 적대 관계에 있는 다윗과 그의 무리들을
자신의 신복(臣僕) 내지는 용병(傭兵)으로 포섭하여
자신의 군사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2절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이르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기를 철저히 싫어하게 하였은즉 그가 영원토록 내 종이 되리라, 하니라).
한편 여기 `시글락'(Ziklaq)은
가나안 정복 후 원래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가
(수 15:31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그 후, 다시 시므온 지파에게로 넘어간 성읍이었다.
(수 19:5 시글락과 벧말가봇과 하살수사와;
대상 4:30 브두엘과 호르마와 시글락과).
그러나 시므온 지파는 사사시대에 그 땅을 블레셋에게 다시 빼앗겼던 것 같고,
그 이후 그 성읍에는 사람이 거주치 않은 것 같다(Keil, Fay).
그 위치는 가사(Gaza) 동남쪽 약 24km 지점으로,
그때 다윗이 머물고 있었던 가드(Gath) 남서쪽 약 40km 지점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같은 가드로부터의 먼 거리는
가드를 떠나려고 했던 다윗의 진정한 목적을
넉넉히 충족시켜 줄만 했을 것이다.
(5절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께 은혜를 받았거든 지방 성읍 중 한 곳을 주어 나로 거하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거하리이까)
더욱이 이같은 다윗의 목적과는 달리
아기스는 아기스대로 다윗을 그곳에 주둔시킴으로써,
자신의 영토의 남쪽 변경을 다른 민족들이 공격해 들어오지 못하게
방어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Klein).
▶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 여기의 `왕'(말키)은 복수(plural)이다.
따라서 `유다 왕'은, 정확히 하자면 `유다 왕들'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이 `유다 왕들'이란 표현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본서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할된 후(B.C. 930년)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
아울러 본서 전체를 면밀히 고찰할 때,
본서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B.C. 722년)에 대한
암시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러 보수주의 학자들은 본서(사무엘서)의 저작 시기를
분열 왕국 직후(B.C. 930년)로 부터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B.C. 722년)사이의
어간으로 본다(Steinmueller, Moeller, Young, Fay)
▶ 오늘까지 - 즉 본서가 기록된 때까지를 가리킨다.
[삼상 27:7]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한 날 수는 일년 넉달이었더라.
▶ 블레셋 사람의 지방 - 여기서 `지방'(사데)은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빈들'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6:1 주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일곱 달 동안 머무니라;
창 2;5 들의 모든 초목이 땅에 있기 전에 초목을 만들며 들의 모든 채소가 자라기 전에 채소를 만드신 날에 하늘들과 땅의 생성 세대들이 이러하니라. 그때에는 주 하나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또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며;
왕상 11:29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가던 그때에 실로 사람 대언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났는데 아히야는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
따라서 이것은 다윗의 독립된 거주지
시글락이 변방에 위치했음을 시사해 준다.
▶ 거한 날 수는 일 년 넉달 - 여기서 `일 년'(야밈)은
문자적으로는 `날들'(days)이란 의미이다.
이같은 사실로 인하여 요세푸스와 칠십인역은 다만 `넉 달'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여기의 `야밈'은,
(1) 성경에서 `매년'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며,
(1:3 이 사람이 매년 자기 도시에서 나와 실로에 계신 만군의 주께 올라가 경배하며 희생물을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거기서 주의 제사장으로 있더라;
2:19 또한 그의 어머니가 해마다 드리는 희생물을 드리러 자기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그를 위해 작은 겉옷을 만들어 매년 그에게 가져다주었더라),
(2) 또한 `일 년'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라는 점에서(Klein),
(삿 17: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거하며 나에게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십 세겔과 의복 한 벌과 양식을 주리라, 하므로 이에 그 레위 사람이 거기로 들어갔더라;
삼하 14:26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그가 머리털을 깎되 해마다 연말에 깎았더라.) 그가 머리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 보니 왕의 무게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일 년'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한편 다윗은 바로 이 기간이 지난 후,
헤브론으로 돌아가 유다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삼하 2:1-4 이 일 후에 다윗이 주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유다의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올라가리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올라가라, 하시니 다윗이 이르되, 내가 어디로 가리이까? 하매 그분께서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하시니라.
2) 이에 다윗이 자기의 두 아내 예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데리고 거기로 올라갈 때에
3)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 곧 각 사람과 그의 집안을 데리고 올라가서 그들을 헤브론의 도시들에 거하게 하니라.
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의 집을 다스릴 왕으로 삼았으며 또 그들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되, 야베스길르앗 사람들이 사울을 묻었나이다,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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