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아기스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다윗이 가로되

거듭난 삶 2021. 6. 24.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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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스의 신용을 얻는 다윗 2

 

성 경: [삼상 27:10-12] 아기스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다윗이 가로되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이니이다

11)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행사가 이러하여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12)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하였으니 그는 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하니라.

 

 

[삼상 27:10] 아기스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다윗이 가로되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이니이다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 아기스는 자신에게 바쳐진

전리품(戰利品)을 보고 이같은 질문을 하였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오늘'

그 당일에 이스라엘이 남방에 거주하는 민족들에 대한

침공이 행해졌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이번에는'란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한 `침노하였느냐'(파솨트)

`벗기다', `강탈하다'란 의미로서,

주로 전리품의 탈취를 목적으로 한 노략과 공격 행위를 가리킨다.

 

(8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거민이라;

 

30:1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셋째 날에 시글락에 이르렀는데 그때는 이미 아말렉 족속이 남쪽과 시글락을 침략한 뒤더라.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로 태우고;

 

31:8 그 다음 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 쓰러진 것을 보고는;

 

16:39 또 너를 그들의 손에 내주리니 그들이 네 우뚝 솟은 처소를 헐고 네 높은 처소들을 부수며 또 네 옷을 벗기고 네 아름다운 보석들을 취하며 너를 벌거벗겨 알몸으로 버려두고).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 - 이같은 다윗의 대답은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기서 지극히 애매한 답변을 함으로써,

자신이 아말렉 등을 약탈한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한편 여기서 `유다 남방'은 브엘세바의 인근 지역을 가리킨다.

 

(8:2 이제 그의 맏아들의 이름은 요엘이요, 둘째 아들의 이름은 아비야더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재판관이 되니라;

 

삼하 24:7 두로의 요새에 이르고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의 모든 도시에 이르고 유다의 남쪽으로 가서 브엘세바에까지 이르니라).

 

그리고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은 유다의 남쪽 변방 지역을 가리킨다.

 

(30:29 라갈에 있던 자들과 여라므엘 족속의 도시들에 있던 자들과 겐 족속의 도시들에 있던 자들과).

 

여기서 `여라므엘'(Jerahmeel)

`하나님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란 의미인데,

이 사람은 유다의 손자이자 베레스의 아들인 헤스론의 장자이다.

 

(대상 2:3 유다의 아들들은 엘과 오난과 셀라인데 이 세 사람은 수아의 딸 곧 가나안 족속 여인이 유다에게 낳은 자들이더라. 유다의 맏아들 엘은 주의 눈앞에서 악하므로 그분께서 그를 죽이셨고,

 

5 베레스의 아들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9 또 헤스론의 아들들 곧 그에게 태어난 자들은 여라므엘과 람과 글루배더라).

 

따라서 `여라므엘 사람'(Jerahmeel)

`여라므엘'의 후손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또한 `겐 사람의 남방'

`아말렉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지역과 인접한 곳을 가리킨다.

 

이전에 사울은 아말렉 족속을 치려고 하면서

겐 사람들도 피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겐 사람'(Kenites)들을 대피시켰던 일이 있었다.

 

(15:6 사울이 겐 족속에게 이르되, 가라. 떠나라. 너희는 아말렉 족속 가운데서 떠나 내려가라. 내가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할까 염려하노라. 온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나와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느니라, 하니 이에 겐 족속이 아말렉 족속 가운데서 떠나니라).

 

아무튼 여기서 다윗이 아기스의 질문에

실제로 그가 침노한 그술, 기르스, 아말렉 족속(8) 대신

유다, 여라무엘, 겐 족속이라고 답변한 이유는

다윗이 유다와 그 동맹. 종속. 우호 성읍들을 공격한 것처럼

아기스에게 믿도록 함으로써 아기스의 신임을 더욱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한편 당시 다윗이 유다를 약탈하던

이방 종족들을 공격한 것은 잘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 쉽사리 은폐. 거짓말을 한 것은

당시 이방 땅에 머물러 있었던 다윗의 신앙이 연약한 상태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즉 다윗의 답변은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려는

인간적 기지(機智)에서 나온 말로,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선()이 되지 못한다.

 

이처럼 시글락 정착 시절에는 다윗의 신앙 상태가 연약해졌는데,

이는 블레셋의 시글락 정착 14개월 동안

 

(7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거한 기간이 만 일 년 사 개월이었더라)

 

다윗이 지은 시편이 하나도 없다는 데에서도 입증된다.

즉 당시는 다윗에게 기도와 찬양이 메마른 때였다(F. B. Meyer).

 

 

 

[삼상 27:11]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행사가 이러하여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본 구절은 다윗이

그술, 기르스, 아말렉 족속 등을 공격하면서

그곳 거민들을 남녀 불문하고 몰살시킨 분명한 이유를 제시해 준다.

 

 

그 남녀를 살려 가드로 데려가지 - 이것은 패전국의 주민을

노예로 붙잡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같은 일은 고대 전쟁에 있어서는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이같은 관습을 따르지 아니하고 모두 죽여버린 것이다.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 당시 다윗은

그술, 기르스, 아말렉 등의 남방 족속들에게

자신이 행한 침노 행위가

가드 왕 아기스에게 보고될 것을 두려워 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족속들은 주로 이스라엘을 괴롭힌 민족들로서

블레셋으로서는 하등 공격할 이유가 없는 족속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의 행위는

블레셋의 입장에서는 이적(利敵)행위가 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다윗을 시기하던 아기스의 신하들은

다윗에 의하여 끌려왔을 노예들로부터 전해들은 다윗의 행적을

과장하고 악평하여 보고할 가능성이 많았으며,

 

또한 끌려왔을 노예들도 다윗에 대하여 앙심을 품은 나머지

다윗의 행적을 과장해서 떠들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다윗의 행적이 사실 그대로 아기스에게 알려지면

그 사실이 과장됐든지 안됐든지 간에,

아기스는 다윗의 그같은 이적적(利敵的)인 공격 행위로 인하여

다윗을 의심하고 또한 경계하기 시작할 것이 뻔하였기 때문에,

다윗은 바로 이 점을 사전에 방지코자 한 것이다.

 

 

 

[삼상 27:12]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하였으니 그는 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하니라.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 이것은 유다 남방 족속들을 공격했다는

다윗의 답변에 `아기스'가 완전히 속아 넘어갔음을 뜻한다.

 

(10 아기스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다윗이 가로되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이니이다).

 

따라서 아기스는 이제 다윗에 대해 가졌던

일말의 의구심과 경계심까지 풀기 시작한 것이다.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하였으니 다윗이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 및 그 동맹. 우호. 종속 성읍들을 침공 몰살시킴으로써,

스스로 그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같은 아기스의 착각은 그가 다윗의 답변을

 

(10 아기스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다윗이 가로되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이니이다)

 

사실 그대로 받아들였음을 반영해 준다.

 

 

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 아기스는 동족을 무자비하게 친 다윗의 행위는

반드시 동족 유대의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고,

따라서 다윗은 더 이상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

이제 평생토록 자신의 심복 노릇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편 여기서 `사역자'(에베드)

`', `신하'란 의미인데,

전에 `아기스'가 다윗을

이스라엘의 한 `'으로 본 것과는 많이 대조된다.

 

(21:11-12 아기스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그들이 춤추며 그에 관해 서로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 다윗은 수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므로

(삼상 21:12) 다윗이 이 말들을 마음속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즉 이같은 다윗에 대한 아기스의 인식의 전환은,

아기스가 다윗에 대해 품었던 경계심을

이제 더 이상 갖고 있지 않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아무튼 이때 `아기스'

다윗이 그 자신의 동족을 침노하여 몰살시킨 일로,

다시는 조국 유대 땅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오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