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밧세바 4
성 경: [삼하 11:11-12] 우리아가 다윗에게 고하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영채 가운데 유하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신복들이 바깥 들에 유진하였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치 아니하기로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12)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유하니라 이튿날
[삼하 11:11] 우리아가 다윗에게 고하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영채 가운데 유하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신복들이 바깥 들에 유진하였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치 아니하기로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영채 가운데 유하고 내가 어찌 자리이까 -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전쟁이 곧,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종종 언약궤를 동반하여 전쟁터에 나아갔다.
(민 10:35-36 궤가 앞으로 나아갈 때에는 모세가 이르되, 주여, 일어나사 주의 원수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 궤가 안식할 때에는 그가 이르되, 오 주여, 이스라엘의 수많은 자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14:44 그들이 자기 뜻대로 산꼭대기로 올라가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언약 궤와 모세는 진영 밖으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수 3: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 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건너라, 하매 그들이 언약 궤를 취하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따라서 우리아의 이와 같은 진술은
'하나님께서도 현재 싸우고 계시거늘
어찌 나 같은 존재가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라는 뜻의 말이다.
아마도 우리아의 이러한 충성된 대답은 평소에는 다윗 왕을
충분히 감동시키고도 남을 만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범죄한 다윗에게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지금 다윗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은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내 주 요압과 신복들이 바깥 들에 유진하였거늘 - 이는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신앙심은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상관에 대한 우리아의 충성심과
동료에 대한 사랑, 따스한 인간애가 담겨있는 진솔(眞率)한 말이다.
따라서 다윗은 이러한 말을 듣는 중에도
양심에 가책을 받고 회개할 수 있어야 했다.
즉 자신이 우리아와 같은 충직한 신하의 아내를 탐한 것이
얼마나 괴악한 죄악인지를 깨닫고 이제라도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회개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죄에 사로잡혀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한 다윗은 그러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는 우리아와 밧세바를 동침시키려는 계략이 수포로 돌아가자
급기야 그토록 충성스런 우리아를 살해까지 하고 만다.
(12-25절 다윗이 우리야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에서 머무르라. 내일은 내가 너를 떠나가게 하리라, 하매 이에 우리야가 그 날과 그 다음 날에 예루살렘에서 머무니라.
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하여금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때에 그가 나가서 자기 주의 신하들과 함께 침상에 눕고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보내니라.
15) 그가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는 우리야를 맹렬한 싸움의 최전방에 두고 그로부터 물러가서 그가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16) 요압이 도시를 살피고는 자기가 알기에 용맹한 자들이 있던 장소에 우리야를 배치하니
17) 그 도시의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싸울 때에 다윗의 신하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이 쓰러지고 헷 족속 우리야도 죽으니라.
18) 이에 요압이 사람을 보내어 전쟁에 관한 모든 일을 다윗에게 고하며
19) 사자에게 명하여 이르되, 네가 전쟁에 관한 일들을 왕께 고하기를 마친 뒤에
20) 혹시 왕이 진노하여 네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싸울 때에 어찌하여 도시에 그처럼 가까이 갔느냐? 그들이 성벽에서 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21) 누가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쳤느냐? 한 여인이 성벽에서 맷돌 한 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베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너희가 성벽에 가까이 갔느냐? 하시거든 너는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족속 우리야도 죽었나이다, 하라, 하니라.
22) 이에 사자가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이 자기를 보내어 알게 한 모든 것을 알리니라.
23) 사자가 다윗에게 이르되, 확실히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우세하여 우리를 향해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그들을 덮쳐서 성문 입구에까지 이르렀더니
24) 활 쏘는 자들이 성벽에서 왕의 신하들을 향하여 쏘므로 왕의 신하들 중에서 몇 사람이 죽었고 왕의 종 헷 족속 우리야도 죽었나이다, 하니라.
25) 그때에 다윗이 사자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너는 이 일을 불쾌히 여기지 말라. 칼은 이 사람도 삼키고 저 사람도 삼키나니 그 도시를 향해 더욱 힘써 싸워 그것을 정복하라, 하고 너는 그의 용기를 북돋우라, 하니라).
이는 기어이 파괴적인 결말을 가져 오고야 마는 죄의 특성을
(약 1:15 그런즉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되면 사망을 낳느니라)
단적으로 보여주는 비극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 여기서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은
사실 다윗의 전인격과 존재를 가리키는 동일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아가 이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여 맹세한 것은
자신의 굳은 결심을 다윗 왕에게 확고하게 보이고자 함이었음이 분명하다.
(Lange, Baker Commentary).
한편, 여기서 우리아가 '여호와의 사심'이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고 '왕의 사심'으로 맹세한 것은
그 당시 히브리인들의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즉 히브리인들은 대개 자신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사심'이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 했으나,
(4:9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내 혼을 온갖 역경에서 구속하신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라;
12:5 다윗의 분노가 그 사람을 향해 크게 타오르매 그가 나단에게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반드시 죽을지니라;
삿 8:19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 곧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려 두었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룻 3:13 이 밤은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친족의 임무를 네게 행하려 하면 좋은 일이니 그가 친족의 의무를 행하려니와 만일 그가 네게 친족의 의무를 행하려 하지 아니하면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네게 친족의 임무를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지니라, 하니라;
삼상 14:39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 죄가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그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온 백성 가운데서 그에게 대답하는 자가 하나도 없더라;
왕하 2: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여기에 머무르라. 주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셨느니라, 하매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이에 그들이 벧엘로 내려가니,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여기에 머무르라. 주께서 나를 요르단으로 보내셨느니라, 하매 그가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고 그들 두 사람이 계속해서 가니라),
자신과 동등한 계층이나 자신보다 높은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던 것이다.
(삼상 2:26 아이 사무엘은 점점 자라면서 주와 사람들에게 호의를 입더라;
17:55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나아감을 사울이 보고 군대 대장 아브넬에게 이르되, 아브넬아, 이 소년이 누구 아들이냐? 하매 아브넬이 이르되, 오 왕이여, 왕의 혼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매;
20:3 다윗이 또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네 눈에 은혜를 입은 줄을 네 아버지가 확실히 알고 말하기를, 요나단이 근심할까 염려가 되므로 그가 이것을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하느니라. 그러나 진실로 주께서 살아 계심과 네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 사이에는 단 한 걸음만 있느니라;
왕하 2: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여기에 머무르라. 주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셨느니라, 하매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이에 그들이 벧엘로 내려가니,
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원하건대 여기에 머무르라. 주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셨느니라, 하매 엘리사가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이처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니,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여기에 머무르라. 주께서 나를 요르단으로 보내셨느니라, 하매 그가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고 그들 두 사람이 계속해서 가니라;
4:30 그 아이의 어머니가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하매 엘리사가 일어나서 그 여인을 따라가니라).
[삼하 11:12]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유하니라 이튿날
▶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유하니라 이튿날 –
본 구절로부터 14절을 읽어 보면,
다윗이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한 본 구절의 약속을 어기고
우리아를 하루 더 묵게 한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하반부에 언급된 '이튿날'에 다윗이
우리아를 궁정으로 불러들여 저녁까지 술에 취하게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13절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하여금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때에 그가 나가서 자기 주의 신하들과 함께 침상에 눕고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우리아를 되돌려 보낸것처럼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14절 아침이 되매 다윗이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보내니라).
그러나 실상 13절의 기록은 본 구절의 '그 날에 예루살렘에 유하니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그리고 14절은 본 구절의 '이튿날'에 있은 일에 대한 설명이다.
이처럼 히브리인들은 한 사건을 기술함에 있어서
중복적(重複的)인 표현을 곧잘 사용한다.
즉, 그들은 처음 구절에서는 한 사건에 대해 간결히 진술하고
다음 구절에서 그 사건을 보다 상세히 기술하는
점진적, 중복적 표현법을 즐겨 사용하였다.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13, 14절은
본절의 간결한 기술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 구절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실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려면
본 구절의 '이튿날'이란 말 다음에,
'우리아가 예루살렘을 떠나 전쟁터로 되돌아가니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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