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압살롬이 그 누이 다말을 암논이 욕되게 하였으므로 저를 미워하여

거듭난 삶 2021. 10. 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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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의 증오

 

성 경: [삼하 13:20-22] 그 오라비 압살롬이 저에게 이르되 네 오라비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저는 네 오라비니 누이야 시방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인하여 근심하지 말라 이에 다말이 그 오라비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21)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22) 압살롬이 그 누이 다말을 암논이 욕되게 하였으므로 저를 미워하여 시비간에 말하지 아니하니라.

 

 

 

[삼하 13:20] 그 오라비 압살롬이 저에게 이르되 네 오라비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저는 네 오라비니 누이야 시방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인하여 근심하지 말라 이에 다말이 그 오라비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 매우 슬피 울며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고 있는 다말의 모습을 본 압살롬이 암논의 추행을 짐작하고선

사실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완곡하게 따져 묻는 말(euphemism)이다.

 

여기서 즉,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하는 물음은

남녀의 동침 여부를 우회적으로 묻는 말인 것이다.

 

(39:10 그녀가 날마다 요셉에게 말하였으나 그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옆에 눕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한편, 본절의 원문에는 '암논''아미논'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필사자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Pulpit Commentary),

 

또 다른 사람은 '아미논'

'암논'에 대한 경멸어(輕蔑語)라고도 주장한다(Lange, Thenius).

그런데 사건의 흐름상 이 두 견해 중,

후자의 주장이 비교적 설득력 있게 보인다.

 

 

시방은 잠잠히 있고 - 이 같은 압살롬의 말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 아버지 다윗이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두고 보겠다는 의미이다.

 

(21절 그러나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2) 암논에게 복수할 좋은 묘책이 떠오를 때까지는

경거 망동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사실 암논에게 일언 반구(一言半句)도 하지 않은 채 2년 동안

기회를 노린 점을 볼 때 압살롬의 복수심은 대단했었음을 알 수 있다.

 

(22-29 자기 형 암논이 자기 누이 다말을 강제로 욕보였으므로 압살롬이 그를 미워하여 좋다 나쁘다 그에게 말하지 아니하니라.

23) 만 이 년 뒤에 에브라임 옆 바알하솔에서 압살롬이 양털 깎는 자들을 모으니라.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청하고

24) 왕께 나아와 이르되, 이제 보소서, 주의 종이 양털 깎는 자들을 모았사오니 청하건대 왕은 신하들을 거느리시고 주의 종과 함께 가사이다, 하매

25) 왕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아니라. 내 아들아, 이제 우리가 다 갈 필요가 없나니 네게 누를 끼칠까 염려하노라, 하거늘 압살롬이 간청하되 그가 가려 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에게 복을 빌므로

26) 이에 압살롬이 이르되, 그리하지 아니하시려거든 원하건대 내 형 암논이 우리와 함께 가게 하옵소서, 하매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가 너와 함께 갈 이유가 무엇이냐? 하되

27) 압살롬이 간청하므로 그가 암논과 왕의 모든 아들을 그와 함께 보내니라.

28) 이제 압살롬이 이미 자기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이제 너희는 암논의 마음이 포도주로 인해 즐거워할 때를 잘 보았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용기를 내고 용맹스럽게 행하라, 하였으므로

29) 압살롬의 종들이 그가 명령한 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이 일어나서 각각 자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

 

 

이것으로 인하여 근심하지 말라 - 당시 일부다처제가 성행하던 세태 속에서

오라비는 자기 누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34:31 그들이 이르되, 그가 창녀를 대하듯 우리의 누이를 대하여야 하리이까? 하더라).

 

따라서 압살롬은 암논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자기 누이를 진정시킨 것이다(Pulpit Commentary).

 

 

처량하게 지내니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멤'

'황폐한', '다 망가진'이란 뜻을 가진다.

따라서 이 말은 마치 폐인(廢人)처럼 되어 이제 괴로운 나날만을 보내고 있는

다말의 비참한 삶을 잘 드러내 준다.

 

 

 

[삼하 13:21]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

 

이 처럼 다윗 왕은 암논의 범죄 소식을 듣고선

일시적으로 크게 노하기만 했을 뿐 율법에 따라

암논을 사형에 처하지는 않았다.

 

(20:17 남자가 자기 누이 곧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을 취하여 그녀의 벌거벗음을 보고 그 여자가 그 남자의 벌거벗음을 보면 그것은 사악한 일이라. 그들이 자기 백성의 눈앞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자기 누이의 벌거벗음을 드러내었은즉 자기 불법을 담당하리라).

 

그 이유에 대하여 70인역(LXX)

"암논이 장자인 고로 다윗이 그를 사랑하여 암논의 마음을 괴롭게 하지 않았다"라고

보충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외에도 또 다른 이유를 댈 수 있다.

그것은 곧 다윗 왕 자신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이미 지은 자로서

 

(11:4 다윗이 사자들을 보내어 그녀를 데려오게 하니 그녀가 그에게로 오니라. 그녀가 그녀의 부정함에서 정결하게 되었으므로 그가 그녀와 함께 누웠고 그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자기 아들의 죄를 심판할 자격을

이미 상실했기 때문이란 점이다(Wycliffe, Pulpit Commentary).

그리고 또 자식에 대한 다윗 왕의 약한 마음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Lange, Keil).

 

아무튼 이상의 점에 비추어 볼 때 다윗은

인간적인 면에서 좋은 아버지였을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부모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23:13-14 아이를 바로잡는 것을 금하지 말라. 네가 그를 회초리로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 너는 그를 회초리로 때려서 그의 혼을 지옥에서 건질지니라;

 

6:4 또 너희 아버지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하라).

 

때문에 이러한 다윗의 잘못은 결국 엄청난 가정의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즉 다윗의 우유부단한 처신에 불만을 품은 압살롬은

결국 암논을 살해하고(23-29)

 

더 나아가 다윗에게 반기(叛起)하고 만 것이다.

 

* 참조 ; (15).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 가정교육의 주안점은

자녀의 영혼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녀가 잘못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준엄하게 징계하여

그로 하여금 바른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곧 부모의 참된 역할인 것이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삼하 13:22] 압살롬이 그 누이 다말을 암논이 욕되게 하였으므로 저를 미워하여 시비간에 말하지 아니하니라.

 

시비간에 말하지 아니하니라 - 누이 동생 다말의 일로 인해

암논을 미워하게 된 압살롬이 그 일에 대하여

암논에게 한 마디도 따지거나 변론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압살롬이 속으로 암논과 절교(絶交)를 선언하고

또한 잔인한 복수극을 계획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