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을 수습하는 다윗
성 경: [삼하 19:12-15]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 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저희가 왕께 보내어 가로되 왕은 모든 신복으로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네려 하여 길갈로 오니라.
[삼하 19: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 여기서 다윗 왕은
자기가 유다 지파 출신이므로 유다 지파 그들이
자기의 복권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다윗 왕의 말은 자기를 반역한 유다 지파에 대해
유화정책적(宥和政策的) 발언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다윗 왕의 제안은
유다와 이스라엘을 분열시키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 다윗 왕의 제안을 받아들인 유다 지파는
다윗 왕의 복권에 적극 앞장서게 되었으며,
이에 대해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이 불평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40-43절 그때에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또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 왕을 안내하니라.
41) 보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왕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왕을 도둑질하고 왕과 왕의 집안과 왕과 함께한 다윗의 모든 사람들을 데려다가 요르단을 건너게 하였나이까? 하매
42) 유다의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대답하되, 왕이 우리의 가까운 친족이기 때문이라. 그런즉 너희가 어찌 이 일로 인해 분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경비에서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그분께서 우리에게 무슨 선물을 주셨느냐? 하니
43)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다 사람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해 열 몫을 가졌으므로 다윗에 대해 너희보다 더 큰 권리를 가지고 있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멸시하고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서 우리의 권고를 먼저 받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 유다 사람들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이스라엘은 세바(Sheba)의 난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골육'(骨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쳄 우바사르'를 직역하면,
`뼈와 살'(bone and flesh)이란 뜻이다.
이는 곧, 피를 나눈 친척이나, 또는 자기 신체의 일부라 할 정도로
가까운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자에게 사용되는 히브리 문학의 한 표현이다.
[삼하 19: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 압살롬의 군장(軍長)이었던
아마사(Amasa)는 실제로 다윗 왕의 조카였으며,
요압과는 사촌지간이었다.
(17:25 압살롬이 요압 대신 아마사를 군대 대장으로 삼으니라. 아마사는 이드라라는 이름의 이스라엘 사람의 아들이더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가일에게로 들어갔는데 아비가일은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동생이더라;
대상 22:16-17 금과 은과 놋과 쇠가 수도 없이 많으니 그러므로 일어나 일을 하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7) 다윗이 또한 이스라엘의 모든 통치자들에게 명령하여 자기 아들 솔로몬을 돕게 하며 이르되).
▶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 여기서 다윗 왕은
요압(Joab)을 축출하고 새로이 아마사를 자기의 군장으로 삼으려 한다.
이처럼 다윗 왕이 요압을 축출하려 한 이유는
요압에 대한 그의 좋지 못한 인상 때문이었다.
즉 요압은 다윗 왕이 죽이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 압살롬을 죽인 장본인이었으며,
(18:14 그때에 요압이 이르되, 내가 이처럼 너와 함께 늑장을 부릴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세 개를 가지고 가서 압살롬이 아직 상수리나무 한가운데서 살아 있을 때에 그것들로 그의 심장을 찌르니),
또한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하여 다윗 왕이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사납고 거친 비난을 서슴치 않았던 자였고(Hertzberg),
(5-7절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나아가 아뢰되, 왕께서 이 날 왕의 생명과 왕의 아들딸들의 생명과 왕의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왕의 모든 신하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셨사오니
6) 왕께서 왕의 원수들은 사랑하시나 왕의 친구들은 미워하시며 통치자들과 신하들을 존중히 여기지 아니하시는 것을 이 날 밝히 드러내셨나이다. 이 날 내가 깨달은즉 만일 압살롬이 살고 이 날 우리가 다 죽었더라면 왕이 기뻐하셨으리이다.
7) 그러므로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하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옵소서. 내가 주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이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하리이다. 그리하면 그것이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한 모든 화보다 왕에게 더 나쁘리이다, 하니)
그리고 요압은 다윗 왕의 집권 초기에 사울의 군장 아브넬을
부당하게 죽인 난폭자였다.
(3: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그와 함께 조용히 말하려고 그를 성문에서 곁으로 데리고 들어가 자기 동생 아사헬의 피로 인해 거기서 그의 다섯 번째 갈빗대 밑을 찔러 죽이니라,
39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일지라도 이 날 약하며 이 사람들 곧 스루야의 아들들이 내게 너무 강하니 주께서 악을 행한 자에게 그의 사악함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
그러나 이러한 요압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 외에
또 다른 측면에서 다윗 왕은 아마사와의 접촉을 시도하였다.
즉 다윗 왕은 당시 반란군의 군장이었던 아마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반대 세력들을 모두 규합(糾合)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The Interpreter's Bible,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이유로서,
다윗 왕은 아마사를 자기의 군장으로 삼음으로써
자기를 반역했던 모든 압살롬의 추종자들에게
자기는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Payne).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아마사 등용 정책은 불공평하고 현명치 못한 처사였다(Smith).
즉 다윗은 화합이라는 대전제 아래
무모한 관용과 앞뒤를 가늠하지 않은 결단을 함으로써
재난의 불씨를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20: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던 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므로 이에 요압이 칼로 그의 다섯 번째 갈빗대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흘러 나와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그가 죽으니라. 이처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추격하였더라).
특히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살해한 요압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 있었다 하더라도
요압은 반란군 진압의 공헌자였다.
그런데 그러한 요압을 제쳐놓고 반역의 최일선에 섰던 자를
군대의 통솔자로 삼은 것은 다윗의 실수로 밖에 볼 수 없다.
즉 그때 다윗은 공의로운 통치 원리보다
인간의 이해를 우선순위에 두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망각하거나 실수를 범하게 마련이다.
(마 26:69-75 이제 베드로가 관저의 바깥쪽에 앉았더니 한 소녀가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당신도 갈릴리의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그들 모두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며
71) 나와서 현관으로 들어가니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 있던 자들에게 이르되, 이 자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그가 또 맹세하고 부인하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뒤에 곁에 서 있던 자들이 그에게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확실히 그들과 한 패라. 네 말투가 너를 드러내느니라, 하거늘
74) 그때에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매 즉시 수탉이 울더라.
75) 베드로가, 수탉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 곧 그분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밖에 나가 몹시 슬프게 우니라).
결국 이러한 다윗의 처사에 앙심을 품은 요압이
아마사를 살해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20:8-13 기브온에 있는 큰 돌에 이르렀을 때에 아마사가 그들 앞에 나오니라. 요압이 자기가 입은 의복을 졸라매고 그 위에 띠를 띠고 칼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찼는데 그가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나왔더라.
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건강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에게 입을 맞추려 하였으나
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던 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므로 이에 요압이 칼로 그의 다섯 번째 갈빗대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흘러 나와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그가 죽으니라. 이처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추격하였더라.
11) 요압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그의 옆에 서서 이르되, 요압을 좋아하는 자와 다윗을 위하는 자는 요압을 따르라, 하였더라.
12) 아마사가 큰길 한가운데서 피 속에 뒹굴고 있으므로 그 사람이 온 백성이 멈추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마사를 큰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기고 또 그 옆으로 오는 자마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는 그 위에 옷을 덮으니라.
13) 아마사를 큰길에서 옮긴 뒤에 온 백성이 요압을 따라가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추격하니라)
이번의 다윗의 처사는 시기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다고 판단된다(Keil, Wycliffe Bible Commentary).
[삼하 19:14] 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저희가 왕께 보내어 가로되 왕은 모든 신복으로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 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 여기서
`돌리게 하매'의 주체는 아마사나 대제사장들 (사독과 아비아달)이 아니라
바로 다윗 왕이다.
즉, 본 구절에서 저자는 유다 지파에 대한
다윗 왕의 지혜로운 정책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음을 묘사하고 있다(Keil, Lange).
(11-12절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온 이스라엘의 말이 왕에게 이르고 왕의 집에까지 이른 것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왕의 집으로 도로 모셔 오는 일에서 나중이 되려 하느냐?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서 나중이 되려 하느냐? 하고)
[삼하 19: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네려 하여 길갈로 오니라.
▶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 압살롬의 추격을 피해
급히 요단강을 건널 때와는
(17:22 이에 다윗이 일어나서 자기와 함께 있던 온 백성과 함께 요르단을 건넜더니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요르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하나도 없었더라)
정반대의 상황 속에서,
다윗은 자신의 권속과 승전한 군대를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요단강에 이르렀다(F.R fay).
▶ 요단을 건네려 하여 - 이는 `다윗 왕을 호위하여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도록 하기 위하여'란 뜻이다(Keil).
길갈에는
엘리사의 길갈,
(왕하 2:1-4 주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들어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함께 길갈에서 나가더라.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여기에 머무르라. 주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셨느니라, 하매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이에 그들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던 대언자들의 아들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주께서 오늘 당신의 주인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매 그가 이르되, 참으로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원하건대 여기에 머무르라. 주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셨느니라, 하매 엘리사가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이처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니),
갈릴리에 있는 길갈,
(수 12:23 하나는 도르의 지경에 있는 도르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민족들의 왕이요),
유다의 경계 지역에 있는 길갈,
(수 15:7 또 아골 골짜기에서부터 드빌 쪽으로 올라가되 이같이 북쪽으로 올라가서 그 강의 남쪽 편에 위치한 아둠밈 비탈 맞은편의 길갈을 향하였더라. 또 그 경계가 엔세메스 물들 쪽으로 가서 더 나아가 엔로겔에 이르며),
에발 산 근처에 있는 길갈, 등이 있으나,
(신 11:30 이 두 산은 요르단 저편 곧 해 지는 곳에 있는 길 즉 길갈 맞은편 모레의 평야 옆 평원에 거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
여기의 길갈은 여리고 근처, 곧 요단강가의 길갈을 의미한다.
이곳은 여호수아가 요단을 건넌 후,
진을 치고 12지파의 기념비를 세운 곳이다.
(수 4:19-20절 백성이 첫째 달 십일에 요르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에 있는 길갈에 진을 치매
20) 여호수아가 그들이 요르단에서 취한 그 열두 개의 돌을 길갈에 세우고).
한편 이곳은 바로 요단 강가에 위치했으므로,
유다의 장로들이 다윗 왕을 맞이하는데 편리한 곳이었다(R.Payne.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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