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거듭난 삶 2021. 11. 1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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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을 수습하는 다윗

 

성 경: [삼하 19:9-11]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가로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고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삼하 19: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가로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 여기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유다 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변론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

`다투다', `정죄하다'는 뜻이다.

 

(15:14 또한 그들이 섬길 그 민족을 내가 심판하리니 그 뒤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

 

36:31 그것들로 그분께서 만백성을 심판하시며 먹을 것을 풍성히 주시느니라;

 

110:6 그분께서 이교도들 가운데서 심판하사 처소들을 시체들로 채우시고 많은 나라의 머리들을 상하게 하시며;

 

6:10 지금까지 존재한 것에는 이미 이름이 붙어 있고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도 알려졌나니 그는 자기보다 강하신 이와 다투지 못하느니라).

 

 

따라서 이 구절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사람들이 다윗 왕 복권의 지체(遲滯)에 대하여

서로를 책망하였다는 내용의 말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난 것은

지난날 압살롬을 지지했던 자기들의 행동이 크게 잘못된 것이었음을

스스로 자각했기 때문이었다(Keil).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된 후 백성들이,

과거 다윗 왕이 자기들을 위해 세운 큰 공적을 회상하는 말이다.

 

, 다윗 왕의 순간적인 실수에 대한 반발과

압살롬의 수려한 외모에 반하여 압살롬의 반란에 참여했던 백성들이,

이제 상황이 달라지자

다윗 왕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평가했던 것이다.

 

 

 

[삼하 19: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우리는

이 구절에서 압살롬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는 공식적인 행사,

곧 기름 부음 받는 의식(儀式)이 분명히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의식이 분명히 `이스라엘 온 무리'라 일컬었고,

다윗의 군사들을 `백성들'이라 일컬었던 것으로 추측된다(Pulpit Commentary).

 

또한 `다윗 왕이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다'고 한 9절의 표현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아무튼 압살롬의 공식적인 즉위식(卽位式)

다윗 왕의 복권(復權)에 다소 장애가 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다윗 왕이 복권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 선언이 그에게 또다시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윗 왕은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예루살렘으로 곧 돌아가지 아니하고, 마하나임 성에 그대로 남아

백성들의 대대적인 지지선언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왕의 복권 이유로 압살롬의 전사(戰死)를 들고 있다.

 

, 그들이 지지했던 압살롬이 이제는 죽고 없으니,

다윗 왕을 복권시키자는 논리였다.

 

우리는 여기서 만일 압살롬이 살았더라면

그들이 압살롬을 계속 지지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R. Payne Smith).

 

따라서 다윗 왕을 복권시키자는 그들의 소리는

다분히 이해 타산적이며 현실적인 것이었다(Herzberg).

 

우리는 이와 같은 움직임 속에서

당시 백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 한편에서는 지난날 압살롬을 지지했던 자기들의 과오를 인정함과 동시에

다윗 왕을 다시금 존경하면서 그의 복권을 주장하는

참신한 무리들이 있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껏 압살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지만

그가 죽었으므로 나라의 안정을 위해

다윗 왕의 복권을 주장한 현실주의자(現實主義者)들도 있었으며,

 

또는 이미 대세(大勢)가 다윗 왕에게로 기운 것을 파악하고

재빨리 친() 다윗계로 처신하는 기회주의자(機會主義者)들도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와같은 당시의 상황 속에서

다윗 왕에 대한 또 하나의 반란을 예상할 수 있다.

 

(20:1-26 마침 거기에 세바라는 이름의 벨리알의 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베냐민 족속 비그리의 아들이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에게는 다윗 안에서 얻을 몫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 안에서 얻을 상속 재산이 없도다. 오 이스라엘아,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 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각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랐으나 유다 사람들은 요르단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자기들의 왕에게 굳게 붙으니라.

3) 다윗이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르러 전에 그 집을 지키게 하려고 남겨 둔 여인들 곧 자기의 첩 열 명을 데려다가 가두는 곳에 두고 먹을 것만 주며 그들에게 들어가지 아니하매 그들이 이와 같이 죽는 날까지 갇혀 과부로 사니라.

4) 그때에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사흘 안으로 유다 사람들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에 있으라, 하니

5) 이에 아마사가 유다 사람들을 소집하러 갔으나 왕이 그에게 정해 준 약정 시간보다 더 오래 머무니라.

6)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해를 끼치리니 너는 네 주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그를 추격하라. 그가 성벽을 두른 도시에 들어가서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7) 요압의 사람들과 그렛 족속과 블렛 족속과 모든 용사들이 아비새를 따라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추격하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

8) 기브온에 있는 큰 돌에 이르렀을 때에 아마사가 그들 앞에 나오니라. 요압이 자기가 입은 의복을 졸라매고 그 위에 띠를 띠고 칼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찼는데 그가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나왔더라.

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건강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에게 입을 맞추려 하였으나

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던 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므로 이에 요압이 칼로 그의 다섯 번째 갈빗대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흘러 나와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그가 죽으니라. 이처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추격하였더라.

11) 요압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그의 옆에 서서 이르되, 요압을 좋아하는 자와 다윗을 위하는 자는 요압을 따르라, 하였더라.

12) 아마사가 큰길 한가운데서 피 속에 뒹굴고 있으므로 그 사람이 온 백성이 멈추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마사를 큰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기고 또 그 옆으로 오는 자마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는 그 위에 옷을 덮으니라.

13) 아마사를 큰길에서 옮긴 뒤에 온 백성이 요압을 따라가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추격하니라.

14) 요압이 온 이스라엘 지파를 두루 지나며 아벨과 벧마아가와 온 베리 족속에게 이르니 그들도 함께 모여 그를 따르더라.

15) 그들이 가서 벧마아가의 아벨에서 그를 에워싸고 그 도시를 향하여 둑을 쌓으니 그 둑이 도랑 위에 있더라. 요압과 함께한 온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허물어뜨리려 하였더라.

16) 그때에 그 도시에서 한 지혜로운 여인이 외쳐 이르되,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청하건대 요압에게 말하기를, 여기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하라, 하니라.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매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 이에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하거늘 그가 응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매

18) 이에 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날에 그들이 흔히 말하기를, 그들이 반드시 아벨에서 조언을 구할 것이라, 하고 그렇게 그들이 일을 끝내었나이다.

19) 나는 이스라엘에서 평화롭고 신실하게 사는 자들 가운데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에서 한 도시와 한 어머니를 멸하려 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당신이 주의 상속 재산을 삼키려 하시나이까? 하매

20) 요압이 대답하여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삼키거나 멸하려 하지 아니하노니

21) 그 일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단지 에브라임 산에서 나온 자 곧 이름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 하는 자가 자기 손을 들어 왕 다윗을 치고자 하였나니 그만 넘겨주면 내가 이 도시에서 떠나가리라, 하매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보소서, 성벽에서 그의 머리를 당신에게 던지리이다, 하고

22) 이에 여인이 지혜롭게 온 백성에게 가니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지므로 요압이 나팔을 불매 그들이 그 도시에서 물러나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

23) 이제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를 다스리는 자가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족속과 블렛 족속을 다스리는 자가 되며

24) 아도람은 공세를 감독하는 자가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기록관이 되며

25) 세바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며

26) 또 야일 족속 이라는 다윗의 우두머리 치리자가 되니라).

 

 

 

[삼하 19: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 이는 다윗 왕이

유다 지파와의 교섭을 위해

당시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두 제사장,

곧 사독과 아비아달을 교섭의 실무자(實務者)로 임명하는 장면이다.

 

다윗 왕이 이처럼 유다 지파와의 교섭을 시도하게 된 동기는

다른 이스라엘 지파내에서 일어났던

다윗 왕의 복권 추진 움직임 때문이었다.

 

(9-10절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두루 온 백성이 논쟁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우리의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셨으나 이제 압살롬으로 인해 이 땅에서 도피하셨도다.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관해 한 마디도 하지 아니하느냐? 하니라).

 

즉 만일 이스라엘 지파들만이 다윗 왕을 지지하는 가운데 그가 꼭 복권된다면,

다윗 왕과 유다 지파 사이는

대단히 소원(疏遠)한 관계에 놓이게 될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다 지파가 다윗 왕을 지지하지 않을 경우,

다윗 왕을 복권시키겠다고 나선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은

그들의 왕을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

다시 말해서 자기들의 성읍으로 모실

위험성까지 있었던 것이다(Wycliffe Bible Commentary).

 

또한 다윗 왕은 자기가 이스라엘 지파들에 의해서만 복권될 경우,

자기의 통치력이 심히 약화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Hertzberg).

 

왜냐하면 다윗 왕은 유다 지파출신으로서,

만일 타 지파에서 반란을 일으킬 경우 그를 지지할 지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윗 왕은 자신이 복권하는데

유다 지파도 적극 참여시킴으로써,

과거 압살롬의 반역을 주도했던 유다 지파의 죄를 용서하고

온 나라의 총화 단결을 도모하고자 했던 것이다(Leon Wood).

 

 

유다 장로들 - 이들은 유다지파를 다윗 왕에게로 돌릴 수 있는

실제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침묵을 지킨 것은,

이들이 압살롬의 반란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다윗 왕이 복권된 후 자기들에게 미칠

후환(後患)을 우려하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R. Payne Sm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