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거듭난 삶 2021. 11. 1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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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이의 사죄 2

 

성 경: [삼하 19:20-23]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는고로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가로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22) 다윗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23)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

 

 

[삼하 19: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는고로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 와서 - 여기서 `요셉의 온 족속'

다윗이 속해 있는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를 가리킨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요셉 족속의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중 에브라임 지파를 의미한다.

 

(1:22 요셉의 집도 벧엘을 치러 올라갔는데 주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니라,

 

35 아모리 족속이 아이얄론에 있는 헤레스 산과 사알빔에 거하려 하였으나 요셉의 집의 손이 이겼으므로 그들이 공물을 바치는 자가 되었더라;

 

78:67 또 그분께서 요셉의 장막을 거절하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즉 에브라임 지파는 넓은 땅과 많은 인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 지파에 대한 지배권(支配權)을 갖고 있던

가장 강력한 지파였기 때문에,

 

흔히 `에브라임 지파'는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온 지파를 통칭하는 말이었다.

 

결국 여기서도 요셉의 온 족속이란 말은

유다 지파를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지파를 총칭하는 말이다.

 

(왕상 11:28 그때에 이 사람 여로보암은 강한 용사더라. 이 청년이 부지런한 것을 솔로몬이 보고 그를 치리자로 삼아 요셉의 집 책무를 맡게 하였더라;

 

대상 5:1-2 이제 이스라엘의 맏아들인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맏아들이었으나 자기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그의 장자권이 이스라엘의 아들인 요셉의 아들들에게 주어졌더라. 계보는 장자권에 따라 계수할 것이 아니니라.

2) 유다가 그의 형제들보다 우세하였고 우두머리 치리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권은 요셉의 것이더라);

 

5:6 주를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그리하지 아니하면 그가 요셉의 집에서 불같이 일어나 그 집을 삼키리니 벧엘에서 그 불을 끌 자가 없으리라).

 

이렇게 볼 때 베냐민 지파 소속인(4) 시므이의 이와 같은 말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 자기가 제일 먼저

요단강을 건너 왕을 영접한다는 아부의 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기서 이스라엘 온 지파의

`첫 사람'(The first Israelite)이라고 자처하면서 왕 앞에 절함으로써,

이제 온 이스라엘이 왕의 지배권 하에 있게 됐음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시므이는 이스라엘이 다시금 다윗 왕의 지배하에 들어오게 된

최초의 순간에 사죄함으로써 왕의 무서운 형벌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Hertzberg).

 

이와 같은 시므이의 처신은 비록 교활하고 가증스럽기는 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매우 대담하면서도 지혜로운 처신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므이의 이러한 처신 속에는 진실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왕상 2:46 이에 왕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니 그가 나가서 그를 덮쳐서 죽게 하매 왕국이 솔로몬의 손에서 굳게 서니라).

 

 

 

[삼하 19: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가로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아비새가 대답하여 가로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 일찍이 아비새는

시므이가 피난 중의 다윗 왕을 저주할 당시에도

의분을 터뜨리고 그를 죽이려 했었다.

 

(16:9 이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이르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원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매).

 

지금 아비새는 그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다시금 시므이를 죽일 것을 주장한다.

사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저주한 자는

마땅히 처형시켜야 한다는 아비새의 말은 옳다.

 

(22:28 너는 신들을 욕하지 말며 네 백성의 치리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그리고 다윗도 아비새의 말에 감정적으로는 동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피난의 긴 여정을 마감하고 환궁하는 시점에서,

사울 왕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 소속의 유력자 시므이를 처형하는 것은

시기적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했다.

 

따라서 다윗은 아비새의 진언을 거절하고

시므이의 사면(辭免)을 허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므이의 범죄를 용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 대한 징계를 보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다윗은 시므이의 행위를

 

(16:5-13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에, 보라, 거기서 사울의 집에 속한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 나왔는데 그는 게라의 아들이요, 그의 이름은 시므이더라. 그가 앞으로 나오면서 올 때에 계속해서 저주하고

6)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해 돌을 던지니 그때에 온 백성과 모든 용사들은 왕의 오른편과 왼편에 있었더라.

7) 시므이가 저주하며 이같이 말하니라. 너 피를 흘리는 자여, 너 벨리알의 사람이여, 가거라, 가거라.

8) 주께서 사울의 집의 모든 피를 네게로 되돌리셨도다. 그를 대신하여 네가 통치하였으나 주께서 왕국을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리는 자이므로 네 재난 속에 네가 빠졌느니라, 하니라.

9) 이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이르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원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매

10) 왕이 이르되, 너희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주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셨으니 그가 저주하게 하라. 그런즉 누가 이르기를,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겠느냐? 하고

11) 또 아비새와 자기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보라, 내 배 속에서 난 내 아들이 내 생명을 찾거늘 이제 이 베냐민 족속은 얼마나 더 그리하랴? 주께서 그에게 명하셨으니 그를 내버려두고 그가 저주하게 하라.

12) 혹시 주께서 내 고통을 보시리니 이 날 그의 저주로 인해 주께서 내게 선으로 갚아 주시리라, 하니라.

1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가 그의 맞은편에서 산비탈을 따라 가면서 그가 갈 때에 그를 저주하고 그를 향해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도전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기름 부음 받은 자는 하나님의 대권을 위임받은 자라는 인식에 근거)에 대한

 

(삼상 26:9-11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그를 멸하지 말라. 누가 자기 손을 내밀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무죄할 수 있겠느냐? 하고

10) 다윗이 또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주께서 그를 치시리니 그의 날이 이르러서 죽거나 혹은 그가 싸움터에 내려가서 멸망하리라.

11) 내가 내 손을 내밀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주께서 금하시나니 원하건대 다만 이제 너는 그의 베개 옆에 있는 창과 물병만 취하라. 그 뒤에 우리가 가리라, 하고)

 

도전으로 간주하고,

비록 현실적인 문제(민심 수습)로 그를 당장에 처단하지는 않았지만

끝내는 처형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왕상 2:8-9 또 보라, 바후림 출신의 베냐민 족속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가던 날에 지독한 저주의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르단에 내려와 나를 맞이하기에 내가 주를 두고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9) 그러므로 이제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로운 사람인즉 그에게 마땅히 행할 바를 아느니라. 오직 너는 그의 흰머리가 피를 흘리고 무덤에 내려가게 하라, 하니라).

 

인간이 범하는 실수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과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 주권적 사역을 방해하는 자에게는

멸망만이 있을 뿐이다.

 

 

 

[삼하 19:22] 다윗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 여기서 `대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탄'은 본래 '사단', 또는 '대적'을 의미한다.

 

(대상 21:1 사탄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려고 일어나 다윗을 선동하여 이스라엘의 수를 세게 하니라;

 

1:6-9 이제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를 주 앞에 보이려고 왔는데 사탄도 그들 가운데 오니라.

7)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서 오느냐? 하시니 사탄이 주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에서 여기저기 다니고 또 그 안에서 위아래로 거닐다가 오나이다, 하매

8)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깊이 살펴보았느냐? 그와 같이 완전하고 곧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가 땅에 없느니라, 하시니라.

9) 이에 사탄이 주께 응답하여 이르되,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나이까?;

 

2:1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를 주 앞에 보이려고 왔는데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와서 주 앞에 자기를 보이니라;

 

109:6 주께서 사악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옵소서).

 

그러나 여기서는 `중간에서 길을 막는 방해자(妨害者)‘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22:22 그가 간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타올라 주의 천사가 대적이 되어 그를 치려고 길에 서니라. 이제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었는데).

 

즉 다윗 왕은 지금 왕위(王位)를 회복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으며,

온 나라는 새로운 태평시대를 앞두고 있었다.

 

이러한 마당에 선왕(先王) 사울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실권자

시므이를 죽이는 처사는 아직껏 사울 왕가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베냐민 사람들의 원성을 사는 일로서,

곧 나라의 평화를 깨뜨리고 마는 치명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다윗 왕은 시므이를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비새를

나라의 평화를 방해하는 방해자로 규정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개인적인 감정의 차원을 초월하여

나라의 안정을 내다보는 다윗 왕의 폭넓은 지도력을 볼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다윗왕이 아비새를 가리켜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복수(plural)로 칭한 것에 대해

반드시 아비새의 형 요압이 아비새의 주장에 협조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고(Smith),

 

다만 아비새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리 경고를 주기 위하여 스루야의 아들들로 통칭 표현하며 책망한 듯하다.

 

한편, 본절에서 시므이의 사면을 허락하는 다윗의 말 속에

`오늘'이라는 말이 세번씩이나 반복 언급되는 것은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사면에 `모든 지파의 화합'이라는

당시의 정치적 목적이 강하게 깃들어 있음을 은연 중 시사한다(F.R. Fay).

 

 

 

[삼하 19:23]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 - 다윗 왕이

시므이를 사면(赦免)해준 것은 주로 정치적인 의도에서였다.

 

즉 다윗은 반대파인 시므이를 사면해 줌으로써.

이스라엘 지파 특히 베냐민 지파의 감정을 건드리지 아니하고

온 지파의 화합을 도모하려 했던 것이다.

 

즉 이러한 차원에서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한 다윗의 맹세는

온 나라의 화합을 추진하는 왕의 의도를 백성들에게

자연히 보여주는 일종의 제스쳐였다.

 

그러나 후일 다윗 왕은 그의 임종시에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처벌하도록 명하였다.

 

(왕상 2:8-9 또 보라, 바후림 출신의 베냐민 족속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가던 날에 지독한 저주의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르단에 내려와 나를 맞이하기에 내가 주를 두고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9) 그러므로 이제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로운 사람인즉 그에게 마땅히 행할 바를 아느니라. 오직 너는 그의 흰머리가 피를 흘리고 무덤에 내려가게 하라, 하니라).

 

그리고 솔로몬은

부친의 명을 좇아 결국 시므이를 처형시켰다.

 

(왕상 2:46 이에 왕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니 그가 나가서 그를 덮쳐서 죽게 하매 왕국이 솔로몬의 손에서 굳게 서니라).

 

그런데 여기에 대하여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다윗은 결국 자신의 맹세를 지키지 않은 셈이다(Keil).

즉 다윗은 자신의 인간적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마침내 복수를 하고 만 것이다.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해야 한다'(15:4)

읊은 사람은 바로 누구였던가?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시므이롤 처벌하라고 부탁한 것은

자신의 맹세와 모순되지 아니한다(Lange).

 

즉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사면 맹세는

자신의 집권 당대에만 유효한 것일 뿐,

이후의 왕에 대해서까지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다윗은 솔로몬 치세 때의 번영과 안정을 위하여

암적 존재요 상습적 모반자인 시므이를 징계 처벌토록 부탁했던 것으로,

오히려 현명한 조처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