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하여 서로 변론하자

거듭난 삶 2022. 5. 26.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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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성 경: [41:1-12]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하여 서로 변론하자

2)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3)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5)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6)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담대하라 하고

7) 목공은 금장색을 장려하며 마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꾼을 장려하며 가로되 땜이 잘 된다 하며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도다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성 경: [41: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하여 서로 변론하자

 

섬들 ... 민족들 - 전자는 '이임'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를 가리키는데,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블레셋, 페니키아 등이 그런 나라들이겠다.

 

그러나 '이임'이 후자 곧 '민족들'로 번역된 '레우밈'과 나란히 사용할 경우,

이것은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들을 포함한 세계 모든 민족들을 가리킬 수 있다.

 

서로 변론하자 - 문자적인 뜻은 '함께 재판하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논쟁하다', '조목조목 따져 보다'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논쟁을 통하여 가려볼 사실은 각 열방들이 각각의 신들을 신뢰하고 있는

이유 및 참신은 과연 누구냐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혹자는 이렇게 본 구절을 번역하고 있다 :

'자 함께 엄숙한 토론의 장으로 들어가 보자'(Lowth).

 

 

 

[41:2]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

 

본절 상반절의 맛소라 원문 직역은 이와 같다 :

 

'누가 동방에서 일으켰느냐. 그 의가 그 발 뒤를 따르리라.‘

 

본절에는 두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전자는 완료형인 '일으켰느냐'로 번역된 '헤이르'이고

후자는 '이르게 하였느뇨'로 번역된 '이크라에후'로서 미래형이다.

 

자유주의 학자들은 40-66장을 제2 이사야서로 보고

그 저작 시기는 포로기 말엽 혹은 포로 귀한 후로 추측하는데,

더욱이 '혜이르' , 완료형이 사용된 것은

그 당시 이미 활약 중이던 고레스를 지칭하는 것이라 단정한다.

 

그러나 또 다른 동사가 분명한 미래형이며 그 내용도 미래적임을 고려할 때,

이 완료형 동사는 예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된다.

 

아울러 하나님이 사용하기 위하여 세운 동방의 사람은,

고레스가 그 그림자인 미래에 임하실 메시야를 예언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41:3]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

 

안전히 지났나니 - 여기 '안전히'의 원문 직역은 '평화롭게'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으킨 인물이 정복 사역을 감당하되

그 사역은 피를 흘리게 하는

폭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하게 암시한다.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命定)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 문자 그대로는

'시초부터 시대들을 불러서 존재케 하신 분이 누구냐?'는 뜻인데

여기 역사적 의미의 시간을 의미하는 '도르'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본 구절이 강조하는 바는 역사의 주제 곧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인 것이 분명하다.

 

앞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 유일 독특성과 이스라엘의 소망이

하나님께만 있음이 언급된 후에 비록 열국과의 변론 형식을 취하긴 하지만

동방에서 사람을 불러내어 세계를 정복케 하리라는

언급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본문에서 특히 역사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일이란

그 인물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41:5]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

 

섬들, 땅 끝, 곧 세계 만민을 놀라 떨게 할 대상이 생략되어 있지만

문맥상 동방에서 일으킬 한 인물이 바로 그 대상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41:6]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담대하라 하고

 

담대하라 - 원문 직역은 '강하라'이다.

이것은 한 인물의 출현으로 온 세계가 떨면서도 내놓는 자구책의 일종인데,

그것은 서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다.

 

 

 

[41:7] 목공은 금장색을 장려하며 마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꾼을 장려하며 가로되 땜이 잘 된다 하며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도다

 

본절은 두려워하는 역국이 서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도모하는 자구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우상 손질이며 그 묘사는 회화적이다.

 

, 본절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초월한 상황이 닥칠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서도 인간의 지혜, 능력을 대변하는

우상을 손질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분주함을

그림을 보여주듯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나의 종 야곱 아브라함의 자손 - 먼저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해

그의 도구로 택함받은 존재를,

 

두 번째는 족장사에서 최종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선택된 존재를,

 

세 번째는 아브라함의 약속의 상속자 곧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임을

각각 함축하는 호칭들이다.

 

본 예언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역하다가 심판당하여

노예로 잡혀감으로 온 나라가 없어진 상황인데,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그의 뜻을 이루는 당신의 도구로 부르신다.

 

그렇다면 족장사를 통해서 택한 이스라엘의 선택은 아직도 유효하며,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속에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아브라함의 씨로서 하나님이 세우기로 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이자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41:9]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 이는 하나님이 땅 끝과 같이

먼 곳에까지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과

여전히 관계를 맺고 계심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선택의 유효성은 불변한다는 사실이 재차 강조되고 있다.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놀라지 말라(알 티쉬타) - 여기 '티쉬타''보다', '주시하다'의 뜻인

'솨아'에서 온 말로서 다급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눈을 크게 뜨고 그 대상을 주시하는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이스라엘이 이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한 사실의 유효성은 아직 불변함

곧 하나님이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41: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 수치와 욕을 당한다는 것은

정복당하고 멸망한 개인이나 단체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한편 40장이

주는 바벨론으로부터의 유다를 구한다는 수동적 측면을 다룬다면,

본장은 여기 보듯이 역으로 적국들을 완전히 정복한다는

구원의 적극적 측면을 다룬다.

 

물론 이 예언은

메시아의 초림에 따른 복음의 영적 승리와

재림에 따른 메시아의 종말론적 승리를

복합적으로 예언한 내용이라고 보아도 무난하겠다.

 

 

 

[41: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 이 표현은 그 흔적을 찾을 수조차 없게 될

정도로 말끔히 치워버린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대적의 멸망으로 입증될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같은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