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오지병의 비유를 통한 유다의 파멸
성 경: [렘 19: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2)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3) 이르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무릇 그것을 듣는 자의 귀가 진동하리니
4)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곳을 불결케 하며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열조와 유다 왕들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며
5)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6)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다시는 이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는 날이 이를 것이라.
[렘 19: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 가서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 '오지병'이란 목이 좁고
오짓물을 발라서 구어 만든 것으로서 윤이 나는 병이다.
이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박부크'는
목이 좁은 오지병에서 물이 쏟아져 나올 때 들리는 소리에 착안한 말인 듯하다.
한편, 일단 구어진 오지병은 부분적으로 고칠 수 없기 때문에
토기장이가 마음에 들지 않게 구어진 것은 깨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유의 병이 고고학 발굴에서 나타났는데,
그것은 종류에 따라 높이가 약 10-25cm 정도 되었다.
▶ 백성의 어른들 - 백성들을 대표할 수 있는 지도자급 장로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증인으로 동반되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탄압받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런 막강한 위치에 있던 자들을 설득시켜
자기와 동행하게 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아마 그들은 예레미야에게서
어떤 책잡을 만한 것을 찾고자 하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렘 19:2]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 예레미야의 행동화된 예언이
진행되는 무대에 관한 언급이다.
고대 예루살렘의 하시드 문이란 곳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 위치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어쩌면 이 이름은 그 일대의 토기장이들의
작업장이 있는 데서 연유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 문 근처에다 깨어진 토기들을 내버렸을 것이다.
힌놈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쪽 아래에 가파른 지역에 있었으며,
쓰레기를 소각하는 장소로 쓰였다.
그렇다면 하시드 문 역시 예루살렘 남쪽에 있었을 것이다.
이곳은 10, 11절에 묘사되어 있는
상징적 행위를 연출하는 데는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탈굼역(Targum)은 이 하시드 문을
본문(느2:13;3:13, 14)과 동일시하였다.
(느 2:13 밤에 내가 골짜기 문으로 곧 용 우물 앞에서 나아가 거름 배출구에 이르는 동안에 예루살렘 성벽을 보니 그것들이 무너졌고 성벽의 문들은 불타서 소멸되었더라;
3:13-14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거주민들이 보수하되 그들이 그 문을 건축하며 그것의 문짝과 자물쇠와 빗장을 달고 또 거름 문까지 성벽 천 큐빗을 보수하니라.
14) 그러나 거름 문은 벧학게렘의 일부를 치리하는 자,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보수하되 그가 그 문을 건축하고 그것의 문짝과 자물쇠와 빗장을 달았더라)
만약 이하시드 문이 이미 잘 알려져 있던 곳이라고 한다면,
이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란 말은 부가적으로 쓰여진 것임에 분명하다.
어떤 주석가들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란 말을
편집 과정상 추가된 설명 어구라고 보기도 하나
히브리 저자들은 이처럼 부가적으로 덧붙이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였다.
[렘 19:3] 이르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무릇 그것을 듣는 자의 귀가 진동하리니
▶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 여기서부터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시작되고 있다.
그 대상은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다.
이 설교는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고하는 공개적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청중은 예레미가 데리고 간 어른들과 제사장들 뿐이었다(1절).
예레미야나 다른 선지자들에게 있어서
직접적이고 그 실제적인 청중은 작은 그룹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민족 전체를 두고 설교하였던 것이 보통이었다.
복수로 언급된 '유다 왕들'이란 표현 역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레미야는 유다 통치자들을 전체적으로 보고 연설하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예레미야는 살아생전에 모두 네 명의 왕들이 다스리는 시대에 살았다.
현 문맥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칭의 보다
완전한 형태들 중의 하나인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이름을 사용하며
다가올 재앙으로 인해서 귀가 진동할 것임을 지적하였다.
구약의 다른 곳에서 이 표현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엄청난 재난을 당했을 때 백성들의 반응을 묘사했던 표현이다.
(삼상 3:11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서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두 귀가 그것으로 인해 울리리라;
왕하 21:12 그러므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에 이 같은 재앙을 가져올 터인즉 그것을 듣는 자가 누구든지 그의 두 귀가 울리리라).
[렘 19:4]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곳을 불결케 하며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열조와 유다 왕들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며
▶ 이곳을 불결케 하며 - 이 문구는 '이곳을 이방인의 땅으로 만들었다'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그들은 이방 신들을 예배함으로써 그곳을
이방인 문화와 종교가 놓인 그런 곳으로 변질시켜 놓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땅이 이제 이스라엘 땅인지 이방 땅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것이다(J.Bright).
한편 클라크(Clarke)는 '이곳'을 성전으로 보고
여호와의 성전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였다고 설명한다.
[렘 19:5]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 바알을 위하여 불살라 드렸나니 - 이 백성은 다른 신들을 섬기고
그것들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과의 절대적 언약 관계를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렸다.
겔 8장에는 에스겔이 본 환상이 묘사되고 있는데,
B.C. 597년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갈 당시 유행했던 것으로 보이는
여러 형태의 이방 종교의 종교의식이 언급되어 있다.
이 구절의 중요한 내용인 인간을 제물로 잡아 바치는 제사는
중동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특히 베니게(폐니키아)와 가나안 지역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이런 악한 풍습은 이스라엘에서는 처음부터 금지되었지만,
(창 22:1-19 이 일들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2)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제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일러 주는 산들 가운데 하나에서 그를 번제 헌물로 드리라, 하시니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자기와 함께한 자기 청년들 가운데 두 명과 자기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 헌물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일어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해 주신 곳으로 갔더라.
4) 그때에 셋째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서 바라보니라.
5) 아브라함이 자기 청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무르라. 나와 아이는 저기에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는
6) 아브라함이 번제 헌물에 쓸 나무를 취하여 자기 아들 이삭에게 지게 하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그들 두 사람이 함께 가더라.
7) 이삭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하매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를 보시거니와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니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하고 이처럼 그 두 사람이 함께 가서
9)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르니라. 아브라함이 거기에 제단을 쌓고 가지런히 나무를 놓고는 자기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에 나무 위에 놓고
10) 자기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더니
11)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므로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그가 이르되, 네 손을 그 아이에게 대지 말라. 너는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이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므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내가 이제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보라, 뿔이 덤불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자기 뒤에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 헌물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이 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주의 산에서 그것을 보리라, 하느니라.
15)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되,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였노라. 곧 네가 이 일을 행하여 네 아들 즉 네 유일한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므로
(창 22:17)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또 네 씨를 하늘의 별들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니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
18) 또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내 음성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니라, 하니라.
19) 이에 아브라함이 자기 청년들에게로 돌아오매 그들이 일어나 함께 가서 브엘세바에 이르렀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거하였더라),
아하스(왕하 16:3)나 므낫세(왕하 21:6) 당시에
이스라엘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왕하 23:10에는 요시야 당시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행해졌던
인신 제사가 철폐되는 기사가 언급되어 있다.
(왕하 23:10 또 왕이 힌놈의 자손들의 골짜기에 있는 도벳을 더럽게 하여 아무도 몰렉을 위하여 자기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지 못하게 하니라)
아마도 이런 악습이 여호야김 시대에 되살아났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자기 백성에 대한 여호와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주권에 대한 거부였으며,
여호와를 정면에서 모욕하는 행위였다.
자기들의 언약의 주를 거부한 방자한 행위에 대한 결과는
언약의 저주 조항의 발동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Thompson).
[렘 19:6]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다시는 이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는 날이 이를 것이라
▶ 이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는 날이 -
3-9절의 내용이
오지병을 깨뜨리는 사건과는 별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으나,
이는 극적인 문맥 전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리라 본다.
예레미야를 따라갔던 몇몇 청중들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오지병이 분명히 어떤 상징적인
행위 예언의 일부일 것으로 예측하면서
과연 그 오지병이 어떤 용도로 쓰일지 궁금했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예레미야가 이 백성과 이 성의 멸망을 언급하면서
이 오지병을 깨뜨린 것은 대단히 극적인 효과를 주었을 것이다.
(10-11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오지병을 깨뜨리고
11)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을 파하리니 그들을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하리라).
한편, 이곳의 '도벳'이란 말은
'불의 장소', '불이 타오르는 곳'이란 뜻을 가진
아람어인 '테파트'나 '타파'란 말에서 유래되었던 것 같다.
또한 이 '도벳'의 자음을 변경시키면,
'치욕', '수치'란 뜻의 '보셋'(보쉐트)이란 말이 된다.
아무튼 그 어원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답을 제사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는 힌놈 골짜기에 있었던 이교 사당을 지칭하는 듯하며,
이곳이 살육의 처소로 바뀌게 된다는 사실에서
임박한 심판의 처절함이 시사되기에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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