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긴장(하나님의 왕국이 현재적이면서도 미래적임)
하나님의 왕국이 현재적이면서도 미래적이다.
이 신학적 역설은 종말론에 있어서 핵심적인 내용이다.
만일 우리가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모든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을 예상한다면,
주로 이스라엘이 지리적으로 그곳에 회복되는 것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성취됨을 찾게 될 것이며,
또 그러한 신학적 강조점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5 장에서 교회의 비밀스런 휴거가 일어남을
또 나머지 장들은 이스라엘과 관련을 가짐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계 22:16 의 설명을 보라).
(계 22:16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교회들 안에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요 빛나는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한편, 만일 촛점이 약속된 구약의 메시아에 의해 왕국이 시작됨에 있다면,
그 경우에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초림과 더불어 임하고
따라서 초점이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삶과 가르치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놓이게 된다.
또 신학적 강조점을 현재의 구원에 두게 된다.
왕국이 임하였고,
그리스도께서 ‘천년 동안 어떤 이들을 다스리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구원을 제공하심’에서 구약이 성취된다!
성경이 그리스도께서 두 번 오심을 말씀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어디에 그 강조점이 놓여 있는가?
나는 구약의 대부분의 예언은
초림 즉 메시아의 왕국이 세워짐에 집중하고 있다고 본다.
*참조 : (단 2 장)
여러 면에서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와 같은 내용이다.
*참조 : (단 7 장).
구약에서는 촛점을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에 두지만,
그 통치가 이루어지는 방법은 메시아의 사역을 통하여서다.
(고전 15:26-27 멸망 받을 마지막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그분께서 모든 것을 그분의 발아래 두셨으나 그분께서 모든 것을 그분 아래 두셨다고 말씀하실 때에 모든 것을 그분 아래 두신 분은 예외인 것이 분명하도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진리인가는 옳은 질문이 아니다.
둘 다 진리이기 때문이다.
바른 질문은 강조점이 어디에 있는가 이다.
다음 사실을 분명히 해 두어야만 하겠다:
어떤 해석가들은 메시아께서 천년 동안 다스리시는 것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참조 : (계 20 장)
성부께서 영원토록 다스리심을 말하는 성경의 강조점을 놓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심은 선행적인 사건이다.
구약에서 ‘그리스도께서 두 번 오심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듯이,
메시아의 통치가 일시적인 것인가 아닌가의 여부도 명확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의 설교와 가르치심에서 그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었다.
이것은 현재적(구원과 섬김에 있어서)이며
동시에 미래적(견고함과 능력의 면에서)이다.
만일 계시록이 메시아의 천년왕국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면
*참조 : (계 20 장),
그 왕국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선행적인 것이다.
*참조 : (계 21-22 장).
구약에서 일시적인 통치를 필요로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사실상 다니엘서 7 장에 나오는 메시아의 통치는 영원한 것이지
천년의 통치에 대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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