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거듭난 삶 2023. 11. 1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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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에서의 사울

 

 

성 경: [9:1-3]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주의 제자들을 - 사울이 핍박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명칭으로 언급된 '주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누가의 다양한 표현 중의 하나이다.

 

누가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표현을

 

'그 도를 좇는 사람들'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제자' (10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성도들' (13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14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형제' (17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또는 '형제들' (30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등으로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 기독교인에 대한 사울의 잔혹한 행위를 심리적으로 묘사이다.

 

'위협''경고'라는 말로도 해석되는데 여기서는 당장이라도 '살해'를 할 것 같은 위협적인 모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같은 바울의 심리 상태를 '등등하여'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동적(動的)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말은 본래 '숨을 쉰다'(breathe)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사울의 호흡이 살기와 위협의 숨소리로 들릴 만큼 박해가 잔인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울의 행위가 얼마나 능동적인 행위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사울 자신은 박해 행위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과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 같다.

 

대제사장에게 가서 - 사울이 대제사장에게 간 것은 기독교인에 대한 체포권을 부여받기 위함이다.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유대인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에 속한 사울이

 

(26: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저희가 증거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예수를 죽이기로 음모하고 이를 실행했던 대제사장, 바리새인들,

(19:47; 20:19; 22:52; 23:10)과 같은 노선에 있었음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19: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20: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22:52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23: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소하더라)

 

당시 대제사장은 칠십 인으로 구성된 의회 '산헤드린'의 의장으로서 로마로부터 인정받은 권한 곧 사법권과 행정권을 팔레스틴 내.외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행사할 수 있었다.

 

당시 대제사장이 '가야바'(A.D. 18-37)였는지 그 후임자 '데오빌로'(A.D. 37-38)였는지 알 수 없으나 사울의 회심(回心)A.D 35년경으로 본다면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Lenski).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학자는 '데오빌로'로 추정한다.

(alford, Levin).

 

그러나 사울의 회심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두 가지 견해 모두 가설에 불과하다.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다메섹 여러 회당 - 사울의 행선지로 언급된 다메섹은 예루살렘 동북쪽 약 230km정도 거리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서 삼 면이 산악으로 둘러싸인 해발 671m의 고원 지대이다.

 

이곳은 아브라함 때부터

 

(14:15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15: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다윗 시대와

 

(삼하 8:6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솔로몬 시대에 걸쳐

 

(왕상 11:24 다윗이 소바 사람을 죽일 때에 르손이 사람들을 모으고 그 떼의 괴수가 되며 다메섹으로 가서 웅거하고 거기서 왕이 되었더라)

 

계속 언급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B.C.73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B.C. 64년부터 로마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다.

 

초대 교회 당시 다메섹에 거주했던 유대인의 수는 상당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A.D. 66년 네로 박해 때 약 10,500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는 요세푸스(Josephus)의 보고가 이를 뒷받침 한다.

 

따라서 당시 유대인들의 공동체에 있어서 중심 기구라고 할 수 있는 회당도 상당수에 이르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곳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아마도 예루살렘 박해 때(8:1-3) 예루살렘으로부터 피신해 간 유대 기독교인들과 그들에 의해 개종된 유대인들로 추정된다.

 

(8:1-3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도를 좇는 사람 - 여기서 언급된 '그 도'란 기독교를 묘사하는 다양한 표현중의 하나다.

 

누가는 단순하게 ''()로만 언급하기도 하며

 

(19: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2:4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24: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고로 연기하여 가로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주의 도'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18: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침례만 알 따름이라)

 

기독교를 대표하는 용어로 ''란 말을 언제부터 사용하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아마 예수를 '생명의 길'로 교회가 인식하고 있었던 데서 비롯된 것 같다.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 사울이 이방 지역에서 행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묘사하고 있는 본 구절은 당시 대제사장이 이방의 유대인들에 대해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 본 구절은 예루살렘이 교회 탄압의 중심이며 유대인들에 대한 행정의 중심지도 됨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대제사장이 이방 지역의 유대인에게까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마카비115:15-21에 따르면 루기오(Lucius)총독은 유대에서 도망한 자들을 대제사장이 유대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도록 프톨레미에게 요청한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마 글라우디오 황제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분봉왕(分封王)으로 유대를 다스렸으므로 대제사장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했을 것이다.

 

 

 

[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 본 구절은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초자연적 개입이 일어난 것에 대한 묘사이지만 그 지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한편 ''22:6에서는 '큰 빛'이라고 언급되고

 

(22: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웠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26:13에서는 '해보다 더 밝았다'고 묘사되어 있다.

 

(26: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이에 대해 혹자는 하늘로부터 온 빛에 대해 강조하기 위한 의도와 함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함으로써 나타나는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없애기 위한 저자의 배려로 이해한다. (Haenchen).

 

그러나 오히려 바울이, 둘러 비친 그 빛에 대해 묘사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으므로 간증할 때 조금씩 달리 표현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에게 둘러 비친 ''의 성격은 그 빛에 대해 언급된 세 곳의 묘사를 종합해 봄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 26:13에서는 같은 상황을 묘사함에 있어서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고 하였다.

 

이 차이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즉 본절에서는 오직 사울이 예수를 만난 사건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26:13에서는 사울 자신의 회심 사건에 있어 현장 목격자들도 있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일행들에게도 동일한 빛이 비추었다는 진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26: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그리고 22:9의 기록은 본절과 26:13의 중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22: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아무튼 사울과 함께 다메섹으로 가던 일행들도 사울이 경험한 그 빛을 목격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