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거듭난 삶 2023. 11. 1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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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만남

 

성 경: [8:25-31]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아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8: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 이 표현은 선교의 중심이 예루살렘 교회라는 점을 암시하는 말이다. 즉 모든 지방교회는 교회의 중심인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확인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교회의 정통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으나 이러한 사상은 바울에 의해 이방 지역 선교가 본격화되면서 퇴색해졌다.

 

 

 

[8: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주의 사자 - 사마리아 선교 이야기는 일단락되고 새로운 선교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초자연적 능력이 가시적으로 개입되었다.

 

여기서 언급된 '주의 사자'란 표현은 '하나님의 사자' 또는 간략히 '천사'와 동일한 의미이며 하나님의 임재와 직접적인 개입을 강조할 때 사용되는 용어로서 누가가 즐겨 사용했다.

 

(7: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5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10: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22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11:13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2: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27: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1:11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시사하는 이 표현을 통해 누가는 이방지역에 대한 선교 활동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암시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남으로 향하여 - 이 말은 빌립이 당시 사마리아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를 볼 때 빌립은 사마리아 선교를 시작했던 장본인임을 알 수 있다.

 

가사로 -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고 명령했지만 정확한 지점을 지칭하지 않고 다만 가사를 향해 가라고 방향만 지시했다.

 

가사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7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창 10:19

따르면 가나안의 도시였던 것으로 보이며,

 

(10:19 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유다 지파가 그곳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여 그 이후 계속 블레셋의 성읍으로 남아 있었다.

또 이곳은 삼손이 성 문짝을 메었던 곳이었다.

 

(16:1-5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2) 혹이 가사 사람에게 고하여 가로되 삼손이 여기 왔다 하매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종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3) 삼손이 밤중까지 누웠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문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4)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5)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이기어서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일천일백을 네게 주리라).

 

이 도시는 B.C. 96년경 마카비 가() 출신인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

의해 멸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Josephus).

그 후 B.C. 57년경 폼페이의 칙령으로 '가비니우스'(Gabinius)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A.D. 66년경에 멸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Josephus).

 

그런데 가사로 가는 길은 아스칼론(Ascalon)을 통해 가는 길과 서쪽 헤브론을 통해

갈 수 있는 두 길이 있는데 여기서는 어느 쪽인지 분명하지 않다.

 

 

 

[8: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 - 빌립의 선교대상으로 언급된 이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출신지와 직책이다.

 

'검은 피부'라는 의미를 지닌 '에디오피아'는 애굽의 남쪽 지역으로서, 나일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구스 족속(11:11)의 후예로 구성되어 있다.

 

(11:11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에디오피아에서는 당시 모계(母系) 왕통을 갖고 있었으며 '간다게'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왕조를 나타내는 명칭으로서 로마의 '가이사' 또는 애굽의 '바로'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국고'(가자)라는 말은 본래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왕실의 보물 또는 국가의 재산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내시는 왕실 또는 국가의 재무 관리를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 성회에 참가할 자격이 없는 고자(鼓子, 23:1)이면서 이방인인 그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될 수 없다.

 

(23:1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을 베인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아마 그는 유대인의 총회에 들 수는 없었으나 유대교를 독실하게 믿었으므로 유대인의 3대 절기 중 한 절기 기간을 택하여 예루살렘에 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예루살렘 방문이 총회는 상관없이 단지 성지 순례만이 주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고자 됨을 감추고 절기 중 거행되는 성회에 참석하려는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한편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먼 길을 찾아왔다는 사실은 그가 유대교를 신실하게 믿고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

 

 

 

[8:28]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아사야의 글을 읽더라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 32, 33절에 인용된 구절이 70인역(LXX)의 사 53:7, 8과 같다.

 

(53:7-8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래서 혹자는 그 사람이 70인역을 읽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F.F. Bruce).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누가가 그 구절을 인용할 때 70인역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 빌립에게 지시하는 자가 '주의 사자'에서(26) '성령'으로 바뀌어 언급되었다.

 

(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이에 대해서는 다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26절은 빌립에게 가시적으로 천사가 나타났으나 본절은 음성이나 영감을 통해 명령이 주어졌기에 누가가 '성령'이란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2)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현현(顯現)'주의 사자'가 나타난 것으로 표현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는다는 유대인들의 사상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빌립에게 '내려가라' 지시한 사자나 본문의 성령은 동일한 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 빌립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가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언급되어 하나님의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묘사는 이방인 선교에 대한 당위성 및 필연성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8: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 빌립은 내시의 읽는 소리를 통해 성경의 내용이 자신이 전하려 하는 복음의 내용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큰 소리를 내어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이 내시도 유대인들의 습관을 따라 마차 속에서 큰 소리로 성경을 읽었을 것이며 이를 빌립은 들었을 것이다.

 

 

 

[8: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 '지도하는' 이란 표현이 미래형으로 사용되었다. 직역하면 '지도해 주게 될' 이란 의미를 나타내므로 내시의 소망을 담고 있다.

 

즉 지금까지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자신을 지도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나타내기 위해 미래형 동사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그 내시가 성경을 깨닫는 것에 매우 관심이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빌립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었다.

 

빌립을 청하여 - 갑자기 나타난 빌립으로부터 도전적인 질문을 받은 내시는 의외로 빌립에게 자신의 마차에 오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처럼 내시가 배타적인 태도가 아니라 호의적으로 빌립을 맞아들였다는 사실은 두 가지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1) 내시가 자신의 체면에 관계없이 성경을 깨닫지 못한다고 대답함으로써 자신의 겸손과 주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자 하는 열망이 높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2) 선교자를 맞아들이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시사하고 있는데 영접하는 자의 구원을 암시하고 있다.

 

참조 : (6: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