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거듭난 삶 2023. 12. 1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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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4

 

성 경: [13:32-41]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35)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13: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 - 이 약속은 23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한다. 바울은 롬 4:13과 갈 3:16에서도 같은 형태의 진술을 하여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오셔서 사역했음을 밝혔다.

 

(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이단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믿는 그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 약속이 성취된 소식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해와 무지를 벗겨주고자 노력했다.

 

 

 

[13: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우리 자녀들에게 - 본 절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세대에 대한 것이므로 '우리 자녀들에게'란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바울은 지금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당대의 세대를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대부분의 영역처럼 '그들의 자녀된 우리에게'로 해석되는 것이 무난하다.

 

너는 내 아들이라 - 2:7을 인용한 본문은 본래 이스라엘 사회에서 왕의 대관식(戴冠式)때 사용되던 시로서 이스라엘 왕이 기름 부음을 받을 때 그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 하나님과 부자(父子)의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다.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바울이 이 시편의 말씀을 예수에게 적용시킨 것은 바울의 독특한 인용이 아니다.

사실 복음서에서도(1:11; 3:22) 예수가 메시야로서 성령의 능력을 받을 때 본문과 갈은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Bruce).

 

(1: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3: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도 시 2:7을 예수에 대해 적용시켜 인용하였다.

 

(1: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이는 시 2:7이 비록 왕의 대관식에서 많이 사용된 구절일지라도 유대인의 전통에서 그 구절을 메시야와 연관시켰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예수께서 다윗의 가문에서 나온 왕권적인 권리를 가진 메시야로서 하나님께 세움을 받았다고 믿었던 것이다.

 

 

 

[13: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 - 바울은 예수가 죽어서 썩지 않고 부활할 것이라는 구약적 근거를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다윗의 가문에서 부활할 메시야가 나올 것이라는 구약적 증거로 칠십인(LXX)역의 이사야 55:3을 들고 있다.

 

(이사야 55: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이러한 신학적 의도는 베드로의 설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2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여기서 바울은 기독교를 유대교 전통과 분리된 이단이 아니라 유대교가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임을 강변하고 있다. 즉 본 절은 당시 전통적인 유대교 앞에 소수 종교로서 기독교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바울의 끈질긴 설득이다.

 

 

 

[13:35]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또 다른 편에 - 이 말은 33절에서 언급한 둘째 편(2:7)과 구분되는 시편을 뜻한다.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여기서 바울은 시 16:10 근거로 구약적인 부활 사상을 다시 언급하여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더욱 심도있게 진술하고 있다.

 

(16: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 바울은 22절에서 언급했던 다윗을 다시 언급하여 예수의 부활과 다윗의 죽음을 대조시켜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강조했다. 먼저 바울은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다윗에 대한 인상을 재확인하고 있다.

 

22절에서는 다윗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세움을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에게 용납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낼 사람으로 언급하였는데 여기서도 역시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인물임을 말하여 다윗을 높이고 있다.

 

그렇지만 바울은 곧이어 다윗의 죽음과 썩어짐을 예수의 부활과 대조시켜 썩지 않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계속 유효했음을 강조한다.

 

한편 '섬기다'란 동사의 목적어로 사용된 본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라고 번역될 수 있다(Robertson, Alford, Haenchen).

이 해석을 취할 경우 본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다윗이 그 시대에 자기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수행했던 사람'임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울은 다윗의 업적과 죽음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음을 22절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비록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썩음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으며 하나님에 의해 맡겨진 사명을 잘 수행했을지라도 죽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진 약속은 성취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예수와 연관지어 35절에 이어 다시 한번 더 언급함으로써 예수가 구약에 약속된 대로 부활하셨음을 강조했다.

 

 

 

[13: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의 살리신 이 - 부활하신 예수를 가리키는 본 구절은 죽음으로부터 예수를 부활시킨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다윗의 유한한 생명과 예수의 영원한 생명을 대조시켜 하나님의 궁극적 뜻이 예수를 통해서 성취됨을 주장한다.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으나 - 이 말은 36절의 '썩음을 당하였으되'라는 말과 반대되는 표현으로 다윗과 예수를 극명하게 구분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유대교 전통에 붙잡혀 있는 유대인들에게 다윗보다 예수가 위대함을 논증해 보임으로써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선입관이나 잘못된 의식을 바꾸고자 했던 것 같다.

 

 

 

[13: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이 사람을 힘 입어 - 이 말은 문자적으로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를 의미하여 어떤 결과의 유래(由來)를 나타낸다. 그것은 '죄 사함의 선언'을 한 이가 예수님을 의미한다.

 

죄 사함 - 바울이 예수의 부활을 '죄 사함'과 곧바로 연결시킨 것은 약간 논리의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의 부활이 어떻게 해서 죄 사함의 근거가 되는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것 같다. 한편 바울이 '죄 사함'을 복음의 핵심으로 선포한 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정죄'의 문제가 신앙의 억압적 요소로 크게 작용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유전(遺傳)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했으며 그중 하나라도 범하게 되면 죄인으로 판명되므로 죄 문제로 인해 항상 억압당하는 신앙생활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예수에 의한 죄 사함의 선포는 바리새인이었던 자신이 예수를 만남으로써 체험했던 사실에 대한 것임과 동시에 초대교회의 교리의 핵심이었다.

 

 

 

[13: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 본 구절은 바울 서신과 일치된 사상을 전달하고 있으므로 본장에 언급된 바울의 설교를 본서의 저자인 누가의 작품으로 평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본 설교가 누가의 필치에 의해 다듬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부활''의의 선포'같은 내용은 바울의 독특한 신학을 형성하는 골격이 되므로 전체적인 내용은 분명히 설교자 바울의 것임에 틀림없다.

 

바울은 의롭게 되는 일에 온갖 정성을 다 바쳤던 유대인들의 삶을 지적하면서 의롭게 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설교에는

 

(1) 사람이 율법으로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과

(2) 예수를 통해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13: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 바울은 자신의 설교를 마무리 지으면서 마지막 경고를 주기위해 41절에서 합 1:5를 인용하였다.

 

(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13: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일렀으되 - 이 말은 앞 절에서 언급했듯이 '선지자들'이 한 말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으로 예언서에서 발췌된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여기서 인용되는 구절은 합 1:5로서 70인역을 약간 변형시켜 사용되었다.

 

히브리 본문에서 이 구절은 갈대아 사람의 등장에 대한 예언과 관련되어 있다. (Haenchen).

 

그러나 바울은 이 문구를 인용하여 유대인들이 배타적으로 우월감에 빠진 선민의식(選民意識)으로 인해 버림받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구원의 길로 인도될 것임을 예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