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거듭난 삶 2024. 1. 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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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 전도에 대해서

 

사도행전 1611-40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15) 저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17)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침례를 받은 후

34)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이 말대로 바울에게 고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바울이 수일을 머문 빌립보는, (로마) 제국의 대도(大道) 에그나시아가도에 있는 주요도시로서, 로마의 식민지였다.

식민지란 그 시대의 말로서, 당시 마케도니아는 빈개국이었기 때문에 마치 현금 우리나라에서 조선의 각지에 일본 거리를 만들 듯, 군인이나 공로 있는 자들을 곳곳에 식민케 하여 로마의 시민권을 주었으므로, 빌립보는 시민권 소유자가 건설한 도시었다.

소도시 이기는 했으나, 유럽전도의 제1보는 실로 이 땅에서 행해져, 후일에 있어서 보면 커다란 사건이었다.

 

안식일에 강가인 기도하는 곳에 가서 말했다고 있는데, 유대인은 어디로 가나, 이르는 곳마다 회당(시니고그)을 세웠고, 회당이 될 수 없으면 일정한 장소를 택하여, 안식일마다 그곳에, 모여, 함께 기도하고 또 성서를 읽었다. 아름다운 풍습이다.

 

바울의 전도방법은 언제나 회당에 가서 설교하는 것이었다.

빌립보에 있어서도 역시 그 기도하는 곳으로 가서, 거기서 루디아라 하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독신의 부인을 만났다. 루디아는 자색 옷장사하는 두아디라성의 상인이었다.

자색옷이란 단지 자색이라는 것만이 아니고, 염색물을 대표한 말로서, 당시 두아디라는 염색물로서 유명한 공업도시였다.

 

그리고 이곳은 이른 바 아시아의 7교회의 하나가 있었던 곳이다.

루디아 자신은 이방인이지만, 모세가 말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바울의 설교에 의해 주 예수를 믿고, 일가족이 침례를 받아, 일행을 그 집으로 초대하여 전도의 편의를 드렸다.

 

복음을 유럽에 처음으로 전한 것은 바울이고, ()은 빌립보이다. 그리고 신자의 제1인은 부인 루디아였다.

오늘날 구미각국 가령 명의만이라 해도 신자 아닌 자 없음에서 보면 중대한 일이다.

 

예수께서 일찍이 처음 전도단을 조직하여 전도의 길에 오른 때, 1로 그 비용을 드린 것은 여자였다.

주의 발에 값 귀한 향유를 부운 이도 역시 여자였다.

 

이는 일면 그리스도교를 설명하는 일로서, 구미에 있어서 그리스도교를 욕하는 말로서 신자의 7할은 여자이다라고 하며, ‘우리교회의 신자의 6할은 남자이다라는 말은 교회의 자랑이 될 정도로, 복음은 많은 부인에게 신봉되기 쉬운 것이다.

 

일본에 있어서는 남자의 수가 많지만, 후일 복음이 두루 퍼지게 되면 역시 부인편이 많아지리라.

복음은 특히 부인의 마음에 깊이 호소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부인 루디아가 유럽 신자의 제1인이고, 유럽 최초의 교회가 루디아의 집이었다는 것은, 이는 특필할 만한 일이다.

 

점치는 영 들린(귀신들린)여자란 기태로 느껴지는 말이나, 일본에 있어서도 그런 유는 많이 있는 일로서, 점치는 여자는 많이 있다. 서양에서는 파이손 뱀이 신의 사자로도 일컬어지고 있다.

점은 보통 이 뱀 부리는 사람이 하는 것으로, 점치는 여자는 뱀과 함께 어두컴컴한 실내에 거하면서, 사람의 청에 따라 뱀에 의해 점치는 것이다.

 

오늘 날의 사람은 흔히 이는 우스꽝스러운 미신이라고 하여 일을 지나쳐 버리나, 사실은 단지 미신만으로는 지나쳐버릴 수가 없는 데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문제를 제공해 준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사상의 유치함에서인가, 혹은 악마의 숭배인가, 사람 이상의 어떤 악한 영이 있다고 하면, 우상숭배는 단순한 사상의 유치에서가 아니라 악마의 숭배이다.

그리고 그 영은 결코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하면 떠나가는 것이다.

 

점치는 영과 예언의 영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으로서, 예언의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고 점치는 영을 배척하고 이에 대신하는데 예언의 영으로서 하는 것은 전도의 하나이다.

 

어느 곳도 마찬가지로 점은 아주 성행하는 일로서, 학문지식으로서 도저히 이것을 물리칠 수는 없다.

도쿄시내에 사는 모 점장이 영감 같은 이에게는, 대신(장관)이 가고, 박사 가고, 정치가도 실업가도 가서, 그 괴이한 점에 의해 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른 바 국가의 대사는 왕왕 뒷거리 판자집의 점치는 영감에 의해 결정되는 것, 오늘도 역시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결심이 뱀 부리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 옛날과 마찬가지이다.

 

바울이 유럽 전도의 최초 제1로 봉착한 것은 이 점치는 자였다.

우리들 역시 오늘 어디로 가나 반드시 이것과 충돌하는 것이다.

혹은 오오야마사마 있고, 고오까교우샤(고행자)있고, 기타 여러 가지의 사람 있어서, 많은 사람이 그것에 의해 의식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이와 충돌하는 일은 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만 점치는 자와 충돌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전체와 충돌하는 일도 된다. 옛날 바울이 밟고 간 길은 오늘도 역시 우리가 밟아야 하는 길이다.

 

좀 상세히 성서를 연구하는 자는 누구나가 알아차리게 되는 일인데, 20절에 있는 장관이라는 말은 사도행전에 특별한 말이다.

마치 우리나라 이 관제에 있어서, 지금이 지사의 칭호가 처음 부()에만 사용되고, 현에 있어서는 현령이라고 하던 시대가 있었듯, 어떤 기록에 있어서나 그중에 현령이라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메이지(명치 1868-1912)의 초대에서 중엽까지의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장관은 속칭으로서, 본래는 <두움비리 duumviri>라하고, 로마의 2인으로 된 지사를 말하는 것으로서, 식민지에 두 사람의 지사를 둘 필요가 있었던 특별한 시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이로써 이 기사가 신뢰할 만한 당시의 기사임을 알기에 족한 것이다.

 

점치는 자가, 로마 사람이 받아들일 수 없고, 행해서 안 될 습속을 전하는 자라 하여 바울을 고소한 때, 이 장관들이 아무 조사도 없이 곧 옷을 벗기고 매질하게 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의 실정을 잘 보여준 것으로서, 오늘 우리나라에 있어서 불경을 범한자가 있는 경우를 상상하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조사의 여유도 없이, 자기의 충의의 뜻을 나타내고 자기가 그것에 무관계임을 보이기 위해 곧 이를 추궁하는 것이다.

이때, 법의 적용을 그르친대도, 일이 적어도 불경에 관한 이상, 결코 이것은 책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로마의 법관은 극히 주의 깊었던 자로서, 조사 없이 매질하는 것은 결단코 있을 수 없다고 하는데, 그러한 소식은 서재내의 연구자에게는 이해되지 못하는 것이고, 사실의 경험을 가진 자에게는 잘 이해되는 일이다.

 

바울과 실라는 그러한 경지에 빠져 매질 당한 후 뇌옥에 던저져, 전혀 피할 길 없었지만도 다만 한 가지 기도의 길이 있었다.

옥 속에서 차꼬가 채워져 있으면서, 야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다.

 

'기이한 수인이로다'고 동수자는 귀를 기울였다.

이상하게도 이때 지진이 있어서, 옥의 기초는 흔들리고 문은 모두 열려지고 그들의 박승은 모두 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진은 그 곳() 전체의 일이 아니라, 이 옥사에 한정된 특별한 사건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학자의 여러 가지 조사한 바에 의해도, 당시의 연대에 있어서 빌립보 지방에 진제의 형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무슨 일에나 학리적 설명을 얻지 못하면 만족할 수 없는 자는, 당시의 옥사는 극히 오랜 것이어서, 이때 마침 절로 붕괴했으리라고 하지만, 그러한 예는 베드로의 경우에도 있었으므로 그대로 믿어 좋은 것이다.

 

옥리는 이 일을 보고, 수인탈주의 죄를 두려워하여, 자살하려 하다가, 위태롭게나마 바울에게 제지되어, 이 일이 또한 다시금 지진이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 특별한 것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옥리는 인간 이상의 능력의 현현을 목격하여 놀라고, 자신의 죄를 생각하여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구원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고 가르침을 청했다.

 

신자의 할 일은 다만 하나, 예수를 믿는 일이다.

그리하여 옥리(간수)는 곧 믿고 일가(一家) 침례를 받았던 것이다.

 

이에 의해 보더라도, 바울의 신앙이 얼마나 간단했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의 교회에 있어서는 침례를 받는데 오랜 준비로서 하는 것을 상례로 하는데, 바울의 침례는 그렇듯 빨랐던 것이다.

과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고 하는 이가 있는데, 그러한 사실은 지금도 역시 있는 것이다.

 

한번 복음을 귀에 듣고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침례를 받고서 득의양양 하는 일은 본래 잘못된 일이나, 필연적으로 오랜 준비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함은 또한 잘못이다.

이 경우, 바울이 급히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복음이 간단하므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옥사에 이상한 일이 있었고, 옥리(간수)와 가족이 신자로 되었다는 것을 듣고서, 장관 공포를 가지고서 바울을 출옥케 하려 했다.

지금까지 잠잠하여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바울 선생, 이때 일언 없을 수 없다는 것으로, 로마의 시민권 있는 자를 죄로 정하지도 않고서 매질 한 불법을 힐난하고, 장관 스스로가 올 것이라고, 출옥의 명을 거부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이매, 시민권을 범한 것은 중대한 문제로서, 이것을 상고하면 자기의 운명에도 관계되는 일이매, 장관 크게 두려워하여 스스로 옥사에 이르러, 출옥을 간청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 로마의 시민권 있음은, 그 부조(父祖)가 고로(苦勞)에 의해 얻은 것이었으리라.

 

당시 시민권은 실로 귀한 것으로서, 다대한 권리가 따르고, 사회상의 갖가지 특권이 있었으므로, 앞서 매 맞을 경우, 우리였으면 벌써 그 증거를 제시하여 고통을 면했을 것이나, 바울은 이때까지 이것을 보이지 않았다.

 

사회상, 정치상의 일에는 시민인 특권을 쓰지 않고서, 복음위해 매 맞음을 좋게 여기고, 이 경우에 이것을 쓴 것은, 다만 좀 유사를 난처케 했을 뿐으로서, 신앙상, 도덕상 아무런 문제는 아니다.

 

위인(偉人) 바울의 여유작작의 일장의 농()의 소치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도 그의 품격의 일단을 엿볼 수가 있다.

 

장관의 청에 유유히 옥사를 나온 그는 문전에서 실라를 돌아보며 가가대소 했으리라.

그는, 사각사면 엄숙하기만 하여 가까이 할 수 없다는 유의 인물이 아니라, 그 생애에는 위인 특유의 어린이 같은 순진한 익살이 종종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지 않고서는 이 일의 산 설명으로는 되지 않는다.

 

바울이 로마시민의 특권을 쉬이 쓰지 않았던 것은, 관존민비의 사상이 아직 없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같은데 있어서는 크게 배워야 할 바이다.

 

어떤 사람은 온 갓 특권을 이용하는 것으로서 복음전파의 최량법으로 하고, 우리 교회에는 칙임관 누가 있고, 모 실업가 있다고 불어대면서 자랑스럽게 여김을 보는데. 이는 아주 비 복음적이다.

 

바울의 특권은 오늘의 사람에서 본다면 전도상의 편의 이상 없는 것이지만, 그는 이것을 쓰지 않았다. 지금의 교회자 유파(流派)는 바울의 전도를 어떻게 해석하랴?

 

옥사(獄舍)를 나와서 그들은 다시 루디아의 집으로 들어가, 형제들에게 권면하고 떠났다.

 

* 내촌감삼의 글을 참조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