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거듭난 삶 2024. 1. 1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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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전도 2

 

성 경: [18:6-8]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18:6]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 '훼방하거늘'이란 뜻은 '신성 모독'이라는 뜻으로 바울의 선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비난과 대적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명백한 신성 모독이었다.

 

특히 '대적하여'는 유대인들이 바울의 반대 입장에서 전열을 가다듬어 계획적으로 대적하며 방해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대적과 훼방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와 같은 것이었다.

 

(13:4652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바울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사악하고 완악한 행동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 전파에서 방향을 바꿔 이방인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 성경에서 '옷을 떤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곧 '엄숙한 맹세'나 또는 '저주의 행동' 등으로 받아들여졌다.

 

(5:13 내가 옷자락을 떨치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떨치실지니 저는 곧 이렇게 떨쳐져 빌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바울이 옷에서 먼지를 떠는 모습은 이미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그의 발에서 먼지를 떠는 모습을 통하여서도 비춰졌다(13:51).

바울이 이렇게 옷에서 먼지를 떠는 행동은 예수께서 12제자와 70인의 전도대를 파송하면서 그들을 영접지 않는 자들을 향해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명령하신 것과 유사하다.

 

(9: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0: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이렇게 발이나 옷에서 먼지를 떠는 것은 초대 교회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마을에 들어갔다 나오면 으례히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는 모습과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발의 먼지를 떠는 것은 부정한 모든것을 거룩한 곳인 자신들의 땅에 묻혀 들어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취해진 행동이다.

 

즉 종교적으로 종죄되었던 이방인들의 영향력을 제하여 버림과 동시에 자신들은 그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행동이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것을 역이용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구원의 복음과 무관(無關)하다는 사실을 그들의 방법대로 보여준 것이다.

 

한편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라는 바울의 말은 겔 3:18; 33:4, 8 ;삼하 1:16에 나타난 말씀이다.

 

(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33:4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삼하 1:16 다윗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아울러 이 말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기 위해 예수의 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장담하면서 사용했던 말이기도 하다,

 

(27: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는 결코 단순한 저주나 악담이 아니다. 이것은 살인자는 죽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또 그 책임에 따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여기서 이 말씀은 바울이 최선을 다해 생명의 말씀을 전파했으나 유대인들이 이것을 끝내 거부했으므로 그들의 영적 생명에 대한 책임은 그들 스스로에게 있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은 자멸을 초래한 것이다.

 

 

 

[18: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디도 유스도 -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찾은 곳은 '디도 유스도'(Titus justus)의 집이다. 디도는 로마식 이름으로 이 사람이 로마 시민임을 나타내 준다.

추측건대 그는 B.C. 44년 로마 황제 가이사(Julius caesar)가 고린도를 재건할 때 이곳에 정착했던 로마인 가정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한편 람세이(Ramsay), 디도는 그의 둘째 이름이고 유스도는 셋째 이름이며 그의 첫째 이름은 다름 아닌 '가이오'(Gaois)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이 디도가 롬 16:23의 가이오와 동일인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고전 1:14에서 바울은 그의 고린도 전도 초기에 개인적으로 침례를 준 '가이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회당 옆에 있던 유스도의 집은 고린도 전도 사역의 주사령부가 되었으며 고린도 교회의 최초 집회장소가 되었다.

 

[18: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회당장 그리스보 - 회당장 그리스보(Crispus)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고린도의 유대인 사회에 파문(波紋)을 일으켰음직하다. 여기서 그리스보가 고린도 선교 사역의 최초의 열매처럼 보이지만 고전 16:15에 의하면 고린도 최초의 신자는 스데바나와 그의 가족이었다.

 

(고전 16: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그렇지만 고린도에서 바울이 침례를 베푼 사람이 몇 안되는데 그 중 한 명이 그리스보였다.

 

(고전 1: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침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바울이 직접 그리스보에게 침례를 베푼 것은 그가 회당장으로서 유대 사회에서 매우 비중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일반 개심자들에게 바울이 직접 침례를 베풀지 않은 이유는 그 사역을 이미 실라와 디도가 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고전 1:1417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침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침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침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침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아무튼 그리스보의 개심은 고린도 선교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수다한 고린도 사람 - 이들은 유대인들과 유대교를 받아들인 이방인 개종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헬라인들과 로마인들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바울의 선교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을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 누가는 유대인들이 이방지역에 거주한다고 해서 그들을 '고린도 사람들'이라는 형태로 부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방인 개종자들도 숫자상으로 많지 않으므로 '수다한'이란 의미 속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당시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많은 로마인들이 고린도에 거주했고 많은 헬라인들도 경제적인 것을 비롯하여 기타 이유들로 인해 고린도에 많이 드나들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을 것이고 또 그들로부터 많은 결실을 거두었을 것이다.

 

이때의 개심자들로는 유스도와 그리스보를 제외하고도 에배네도와 스데바나

 

(16: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고전 16: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그리고 브드나도아가이고

 

(고전 16: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다수의 이방인들이 있었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고린도 서신에 따르면 고린도 교회는 대개가 이방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소수의 유대인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렌스키(Lenski)는 고린도 교회에 있던 게바의 추종 세력들(고전 1:12)은 이 소수의 유대인들로 구성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고전 1:12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 바울의 헌신적인 선교활동으로 믿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겨났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고린도에서의 지속적인 부흥 운동은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에게 온 이후에 일어난 결과이다. 이것은 공동사역(Team Work)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아덴에서 바울이 홀로 선교하던 것과 고린도에서의 공동사역을 비교해 본다면 공동사역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