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거듭난 삶 2024. 1. 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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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전도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성 경: [18:1-5]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18: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 고린도는 북쪽으로 중부 그리스와 남쪽으로 펠로폰네수스(Peloponnesus)를 연결시키는 고원 위에 위치했다. 이 도시의 동서쪽에는 각각 항구가 있어 전략상 요충지였다.

 

한편 이 도시는 B.C. 8세기에 크게 번성하여 B.C. 6, 7세기경에는 영화와 세력이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B.C. 146년 고린도는 로마의 장군 무미우스(Mummius)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B.C. 46년 로마 황제 시이저(Caesar)는 이 도시를 재건하여 B.C. 44년 로마의 식민지로 삼았고 B.C. 27년에는 로마의 아가야 행정 구역의 수도가 되게 하였다.

 

주민들은 대개 헬라인, 이탈리아 출신의 자유민, 로마군의 퇴역 장군, 상인, 정부 관리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도시는 특히 육상 및 해상 무역로가 집중되어 상업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해 경제적으로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으며 이러한 윤택(潤澤)한 생활은 결국 주민들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

 

B.C. 5세기 초 고린도 사람들의 문란한 생활 때문에 '고린도 사람이 되다'는 뜻의 헬라어 '고린디아제스다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아울러 이곳은 많은 이방 신전들이 있는 우상 숭배의 도시였다.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른 바울은 이 같은 사실들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 아덴에서의 경험을(17:16-34) 잘 분석하여 타락의 중심지 고린도에서 새로운 선교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17:16-34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19)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아굴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 - 아굴라의 출생지인 '본도'(Pontus)는 소아시아 북부 지역에 있었다.

 

아굴라는 로마식 이름인데 로마의 기사나 호민관들 중에는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굴라는 유대인 노예였다가 후에 로마에서 자유민이 되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브리스가 가문(gens Prisca)과 관계있는 유대인 여자와 결혼했을 것이라고 한다. 브리스길라는 브리스가의 애칭이다.

 

롱게네커(Longenecker)에 따르면, 아굴라에게는 기술이 있었고 브리스길라에게는 돈과 연줄이 있었으며, 이들은 공동으로 천막 제조와 가죽 수공 상사(商社)를 소유했고 또 이 상사의 지점이 로마와 고린도, 에베소에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가장 헌신적인 바울의 동역자들이었다.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18-19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6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16: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고전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딤후 4: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이들이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온 것은 글라우디오의 유대인 추방령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글라우디오 칙령(49)의 원인인 유대인 폭동의 주동자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만일 브리스길라가 로마 시민권이 있는 가문의 출신이라면 그녀는 글라우디오의 추방령에서 제외될 수 있었을 것이지만 남편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고자 했을 것이다.

 

본서나 기타 바울 서신서에서도 이들이 바울에 의해 개종된 자들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이로 보아 이들은 이미 고린도에 오기 전에 그리스도를 믿고 있었던 것 같다(Zahn).

 

누가는 바울을 중심으로 본서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바울과 관계있을 경우에만 다른 인물들을 기록한다. 따라서 누가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을 생략하고 있다.

 

글라우디오 - 로마 제국의 4대 황제로서 그의 재위 9(49년 경)에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追放令)을 내렸다.

 

수에토니우스(Suetonius)에 따르면 이 추방령이 내려지게 된 동기는 로마의 유대인 사회 내에서 '크레스투스'(Chrestus)라는 사람의 선동으로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폭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18: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이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 크고 번창한 도시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이 새로이 전도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생계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했다.

 

바울은 전도여행중에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했다.

 

(20:34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고전 9:1-8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

7)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살전 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살후 3:7-10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당시 천막은 바울의 출신지인 길리기아의 다소 근방에서 산출되었던 염소의 피륙이나 기타 가죽으로 제조되었다고 한다.

 

한편 유대인들은 그들의 후손에게 전통이나 유산을 물려줄 뿐 아니라 기술을 한 가지씩 가르쳐 주어 차후에 생계유지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이 그런 기술을 어떻게 익히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는 낯선 곳에 당도(當到)하자 그의 기술을 사용하여 여비를 충당하기 위해 천막 만드는 사람이나 가죽 기술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을 물었을 것이고 그런 계기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났을 것이다. 이들은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생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안식일마다 - 바울은 평일에는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장막 만드는 일을 하였고 안식일이 되면 으례히 그의 습관대로 회당에서 말씀을 전파했다.

쟈안(Zahn)의 견해에 따르면 당시 고린도에는 회당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 바울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대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아시아 지역에는 '흩어진 유대인들'(diaspora)에 의하여 곳곳에 유대교 회당이 설립되었고 또 그들에 의하여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구약성경에 대해 알게 되었다.

 

흩어진 유대인들에게서 구약성경을 배우게 된 이방인들은 구약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알게 되었고, 이로인해 율법의 조항을 부분적으로 준수하고자 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회당 예배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많은 이방인들이 율법을 준수하며 회당 예배도 참석하였지만 유대교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거나 완전한 개종자들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유대교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에 의해 이방 민족을 무시한 데서 연유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율법을 배우고 회당 예배에 참석한 이방인들은 유대교에서 명하는 '할례'를 받지 않아서 대부분의 유대인들로부터 부정한 자들로 여겨져 배척당하곤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모여 있는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한편 이때까지의 바울의 고린도 사역은 그다지 적극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다.

즉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가 속히 와서 자신의 사역에 참여할 때까지는 이곳에서의 사역을 어느 정도 크게 확대하는 것을 자제했던 것으로 보여 진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사역에 대해서는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의 언급이 없다.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 마침내 바울이 고대하던 두 명의 사역자가 당도했다. 이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도착했거나 아니면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서 먼저 도착하고 그 후에 실라가 빌립보에서 도착했을 것이다(Lenski).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자들이 환난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신앙생활에 열중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지만

 

(살전 3: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약간의 혼란이 생겼다는 섭섭한 소식도 전하였다.

 

(살전 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고 나서 이에 대한 답장을 썼는데 이 서신이 바로 데살로니가전서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하여 혼란에 빠진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두 번째 서신인 데살로니가후서를 기록하였다.

 

한편 실라는 빌립보 교회의 소식과 그들이 보낸 연보를 가지고 왔다.

 

(고후 11:9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4:14-15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빌립보교회에서 보내준 헌금은 이때의 바울에게 있어서 아주 시기적절하고 유용한 것이었다. 빌립보교회의 헌금으로 바울은 더 이상 생계유지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오로지 말씀 전파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말씀에 붙잡혀 - 실라와 디모데가 온 후 바울의 회당에서의 말씀 증거는 안식일에만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있었다. 즉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헌금덕분으로 장막 만드는 일에서 벗어나 말씀 준비에만 몰두했고 또 준비한 말씀을 전하는데 만 전력투구(全力投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