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 십자가의 길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거듭난 삶 2024. 5. 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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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교권(敎權)문제

 

마태복음 2123-27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침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참조 : 마가복음 1127-33, 누가복음 201-8.

 

예수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크게 교권을 떨치셨다.

 

첫째로, 성전을 깨끗이 하여, 이것을 내 아버지의 집또는 내 집이라고 하셨다.

 

또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 학자, 장로들에게서 아무런 허가도 받지 않고서, 공공연하게 공중을 가르치셨다.

이에, 교직 측에서 그에 대하여, ‘무슨 권위로써 이 일을 하는가?하는 질문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권위, 사람에게서 온 권능이다.

 

옛적도 지금이나 다름없이, 교직은 모두 교회가 준 것으로서 교회의 허가 없는 자는 전도의 권능 없는 자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예수에게 이 교회의 허가가 없었다.

그는 벽촌 나사렛의 목수의 아들로서, 규칙선 종교교육은 받지 못하고, 따라서 정당한 교회에서 전도 면허를 받지 못한 자였다.

 

그런데 그러한 자가 시골에 있어서 전도에 종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신앙의 본산에 와서 그 부패를 힐책하고, 성전에 앉아 백성을 가르치는데 이르러서는,

교직자는 서서 이것을 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예수의 교권의 출소를 물은 것은 실로 당연한 일이다.

 

무슨 권위로서 이 일을 하는가? 누가 이 권위를 당신께 주었는가하는 교직의 물음에 대하여,

 

예수는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로써 이 일을 한다. 하늘에 계시는 내 아버지는 내게 이 권위를 주셨다고 대답하면 일은 극히 간단하고, 문제는 곧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수는 그러한 길을 취하지 않으셨다. 그는 질문에 대답하시는데 질문으로 하셨다.

 

이것은 물론 확답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반대로 가장 철저한 대답을 하시기 위해서였다.

 

첫째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자신을 변명하기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자신은 타인을 칭찬도 하고 변호도 한다. 하지만 자기의 자격 또는 권능을 말할 수는 없다.

 

둘째로, 이 경우에 있어서 그러한 진술을 해도 전혀 무익하다.

 

제사장과 장로들은 이미 예수를 배척하려고 마음을 정하고 있었으므로, 어떠한 변명도 그들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이것을 잘 아시는 예수는, 그 자신이 어떠하심을 밝혀 그들을 설복하려 하지 않으셨다.

법은 사람에 따라 말한다고 한다.

 

예수는 단지 선인이 아니었다. 그는 지자(智者)이셨다.

그는 적에게 대답하는데 그 길로서 하셨다.

 

요한의 침례는 어떤가? 이것은 하늘에서인가, 사람에게서인가?고 그는 그들에게 질문하셨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큰 딜레마(delemma)적 질문이었다.

하늘에서라고 대답하면, ‘어찌하여 따르지 않는가고 하여 책잡힐 것이고,

사람에게서라고 대답하면, 세론의 반대하는 바로 된다.

 

하나님도 두려워하고 사람도 두려워하는 이들 종교가는, 예수의 이 질문에 대해 명답을 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예수는 그들에 대하여 나도 또 무슨 권위로써 이것을 하는지 모른다라고 하고는 대답하지 않으셨다. ‘너희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셨다.

 

즉 너희들이 요한의 권능의 유래를 구명하지 못하는 동안은 나의 일을 말해도 해득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의 입장을 변호하는데, 잘 알려진 타인의 경우로서 한다.

예수가 여기서 취하신 것은 이 논법이다.

 

이것은 반대자를 궁지에 몰아넣어 그들을 이기렴에서는 아니다.

그들에게 자기 입장을 밝혀 보여주시기 위해서이다.

 

교권의 일에 대해서는, 예수의 입장은 요한의 입장과 한 가지었다.

요한에게도 또한, 사람에게서 나온 또는 사람에 의해 온 교권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행위가 그가 하나님에게 파송된 예언자임을 증명하여 틀림없었다.

그가 순교의 죽음을 마친 이래, 유대 전국은 모두 그가 참된 예언자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요한은 예루살렘 본산에서 예언의 면허를 받은 자는 아니었다.

그는 보통 사람이었다. 종교가 아닌 신앙가였다.

 

그리고 만약 요한이 그의 교권을 쓸 수 있었다면 어찌하여 예수도 또한 자기 교권을 쓸 수 없는가?

 

특히 이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자기보다도 크신 이로서 세상에 소개했던 것 아닌가?

 

그러므로 만약 요한을 믿을 수 있다면, 예수도 믿어야 할 것이다.

교직들이 요한을 존숭한다면서 예수를 배척하려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 아닌가고, 그는 여기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는 여기서 또 교직들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약점을 폭로하셨다.

그들은 자기의 확신 따라 행하지 못하고 백성의 세론 따라 행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의 교권을 욕되게 하고 있다.

 

우리는, 백성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기 때문이다라고 그들은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러한 자는 타의 교권을 운위하는 권능 없는 자이다.

예수는 일찍이 그들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서로 사람의 높임을 받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는 자인데,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으랴’ (요한복음 5:44)라고.

 

설교 전도를 이 세상의 영직으로 생각하고,

교회는 이것을 교사에게 주고, 교사는 이것을 교회에서 받는다.

그러한 자가 어찌 신앙의 일을 알랴?

 

교권은 사람이 곧 하나님께로 부터 받는 것이다.

요한은 그렇게 하여 받고, 예수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에게서가 아니고, 또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고 하여 바울도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로 부터 곧 사도직을 받았다.

 

그리고 큰 신앙가는 모두 교회에 의하지 않고서, 곧 하나님께로 부터 파송된 자이다.

 

옛일은 두고서, 비교적으로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참된 신앙을 인류에게 불어 넣은 자는,

대개는 교회에 의하지 않고, 또 교회에 배척된 자이다.

 

신교는 구교를 떠나서 일어나고, 메도디스트 교회는 영국 성공회(665역주)에서 분리하여 이룩되었다.

 

기타, 조합교회, 뱁티스트 교회 등, 그 기원을 찾아보면 모두 오늘날 말하는 무소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신앙이 나타나는 때마다 구 교회는 이것에 대하여 물어 말하는 것이다.

 

너희는 무슨 권위로서 이 일을 하는가? 누가 이 권위를 너희에게 주었는가.

 

하지만, 그렇듯 타를 힐문하는 교회는 자기에게 물어볼 것이다.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하여 생겼던가.

 

모든 교회는 구 교권을 떠나서 생겨났던 것이다. 그리스도교 그것이 그렇게 하여 생겨났던 것이다. 특히 프로테스탄트 주의의 제교회는 그러한 것이다.

 

교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지,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하여 교권을 인식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 행동에 의해서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 보내신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고, 그로 하여금 그 성지를 행하게 하여,

그의 교권을 증명하신다.

 

*내촌감삼의 십자가의 길을 연재 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