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바울의 그리스도 관 - 로마서 1장 3-4절

거듭난 삶 2024. 6. 1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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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그리스도 관

 

로마서 13-4

 

(그리스도)는 육체에 의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나시고, 성선의 영성에 의하면, 다시 살아나심으로서, 밝히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셨도다’(로마서 1:3-4)

 

이는 바울의 말로서 가장 현저한 것이다.

이 수어(手語)에 나타난 그의 그리스도관은 거의 오인의 예상외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리스도는 육체에 의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고 있다.

 

후손이란 남계(男系)의 뜻이다.

그리스도는 다윗에게서 남계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태, 누가 양 복음에 따르면, 그는 성령에 의해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된 분으로서,

그에게는 사람인 아버지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는 육체에 의하면

다윗의 남계를 이끈 자손이라 하고 있다(그리스어의 sperma).

 

그러면 바울은 마리아의 처녀 회태(懷胎)를 믿고 않았던 것 아닌가?

그는 그의 서간에 있어서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명시하고 있지 않다.

오인은 실로 그리스도의 기적적 탄생의 증인으로서 사도 바울은 들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나셨다고 있음은 나타남의 뜻으로서, 보통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와 같이 출생은 아니라는 설도 있는데, 그러나 다윗의 후손(남계)이라고 있는 이상은, 사람인 아버지 없이 태어났다는 설은, 로마서의 이 두 절로서는 서지 않는다.

 

육체에 의하면 다윗의 남계를 이끌고, ‘성선의 영선에 의하면 다시 살아나심에 의해,

밝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 나타나셨다고 있다.

 

이는 난해의 말이다. 깊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성선의 영성이지 성령은 아니다.

육에 의해서는 다윗의 후손,

영에 의해서는……이라는 것이다.

 

육과 영과의 대조이다.

사람으로서는 영육 양성을 가리킨 말이다.

 

그리스도에게 육체가 있었음과 동시에 영성이 있었다.

즉 그는 그 점에 있어서 보통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단 그 영성은 성선의 그것이었다.

 

즉 현저하고 거룩하시고 또 선하신 영성이었다.

그리스도의 영생이 보통 사람의 영성과 달랐던 점은, 그 성선의 도에 있었고,

그 성질의 차에 있어서가 아니었다.

 

성선의 영성’, - 닥터 마이어-(970역주)는 이 말을 성선으로서 충만된 영성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로 적확한 주석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다시 살아나신 일이다.

 

일본어역에 중요한 자가 빠져 있다. 죽은 자라는 한자이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신 일로 인하여로 역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란 복수이지 단수는 아니다.

 

다시 살아나심다시 살아남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신 일이란, 많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로서, 그리스도 일인의 부활에 대해 말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죽은 자에 대신하여 살아나신 일로 해석하려 하는 데, 그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해도 조금도 차질 없다.

 

하나님의 아들하나님의 외아들(독생자)은 아니다.

영어로서 말하면 a son of God이고, the son of God은 아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심이 나타났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아들의 한 분이심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존심하여 마지않는 바울의 말로서, 이는 또 현저한 말이다.

 

나타나셨다’ ‘정해졌다(예정 되었다)는 것은 원어의 정역이다.

 

(누가복음 22: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사도행전 11: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히브리서 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또는 발표된 자’, - ‘서임 된다의 뜻이다.

 

밝히 하나님의 한 아들로서 발표 되었다고 의역하면, 능히 원의(原意)를 통하게 되리라.

 

4절 후반의 뜻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는 그 성선 충만 된 영성에 의하면, 많은 죽은 자가 그들 의지하여

다시 살아나는 것에 의해, 밝히 하나님의 아들로서 발표되었도다’.

 

그리고 이 말을 한 바울의 진의는 이것을 찾기에 어렵지 않다.

그는 여기서 그리스도를 선천적인 하나님의 아들로서 보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가 여기서 로마에 있는 신도에게 소개하려는 그리스도는, 그 죽은 자를 일으키는 공적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밝히 세계에 발표된 자이다.

 

즉 기적적으로 배태된 선천적인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보통의 순서를 거쳐 태어나,

보통 방법에 의해 그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이는 실로 앞으로도 말한 대로, 바울의 말로서는 아주 놀라운 것이다.

 

이렇게 바울이 말했다고 해서, 물론 곧 그리스도의 기적적 배태를 부인할 것 못된다.

 

또 그 선천적 신성은 이 말에 부정되지 않는다.

독자가 잘 아는 대로, 나도 일개인으로서는, 처녀의 회태(동정녀 수태), 그리스도의 선척적 신성을 믿기에 주저치 않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의 도의심 돈독함,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물리적으로 증명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 까닭에 기적적으로 나시고 기적적으로 부활하셨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는 그 반대로 나와, 그리스도는 인자이지만도, 많은 사자를 일으키심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 나타났다고 했다. 실로 고상한 논법이 아닌가?

그리고 이렇게 그리스도를 보는 때 그의 신성은 영구히 손상되지 않는 것이다.

 

오늘 세계 제1류의 성서학자로서, 그리스도의 기적적 출생과 부활, 승천을 의심하는 자는 결코 적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의 신성이, 복음서에 기록된 그의 출생과 부활에 관한 기사 위에 서는 것이라면, 그 기사의 비평적 비인은 드디어 그의 신성의 비인에 미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어떠한 비평가라해도 사자의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의 공적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지금, 목하(目下)에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다.

 

사자란 물론 육체에 죽은 자는 아니다. 죽음에 관한 바울의 관념은 그런 천박한 산문적인 것은 아니었다.

 

사자란 그 영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자이다.

 

그리고 다시 살아남이란, 그러한 죽음의 영적 부흥이다.

즉 에베소 514절에 있는 대로이다.

 

잠자는 자여, 눈을 뜨고, 죽음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 너희를 비추리라

 

영적으로 잠자는 자는 속속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눈 뜨게 되고 있다.

육체의 부활보다도 더 유력한 부활은, 그로 말미암아 사람의 영혼에 있어서 행해지고 있다.

그리스도 강세 이후의 세계 역사는 이 일의 가장 명백한 증명자이다.

 

그리고 이 일에 의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아주 분명하게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한 사람이지, 그 유일한 아들이 아니라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할 자 있으리라.

옳다, 사람이다, 한 사람의 사람이다.

 

하지만 어떠한 사람인가? 성선으로서 충만한 사람이다.

 

이는 보통 사람은 아니다. 실로 많은 사자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시다.

이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의 한 분이라고 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귀존을 손상하는 말 아니라, 그의 구주이신 자격을 표명하기 위한 말이다.

 

그의 재세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그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하는데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었으나, 만인과 오를 같이 하기 위해, 자기를 낮추어 하나님의 아들의 1인으로 된 것이다. 즉 성서에 있는 대로이다.

 

자녀들은 모두 피와 살을 가졌으므로, 그도 한 가지로 이것을 갖추셨다……

실로 천사들을 돕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을 돕는다.

 

이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속하는 일에 자비하고 충의 있는 제사장으로 되어,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그가 모든 일에 있어서 형제같이 됨은 옳도다.

 

그는 친히 유혹되어 시련을 받으셨으매, 유혹 받은 자를 도울 수 있도다. ’(히브리서 2:14이하)

 

(히브리서 2:14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바울은 이렇게 그리스도를 보았다.

오인도 역시 그처럼 보려한다. 이는 가장 건전한 그리스도관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그의 육체에 관한 기사에 있어서 찾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한 신앙은 언제 부서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영적 세력에 의한 사실의 관찰과 실험상에 선 신앙은 영구히 안전하다.

그러한 신앙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평가라 해도 이것을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변함없는 이시다.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개역

그는 육체로서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고, 성선의 영서에 의하면,

많은 사자를 일으키심으로서,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나타나셨도다.’

 

 

*내촌감삼의 로마서 주해에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