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거듭난 삶 2024. 6. 1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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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에 따른 심판

 

성 경: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그 행한 대로 - 심판의 기준이 되는 '행함'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각하는 바까지도 포함한다.

 

(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본절에서의 '행함'은 특히 인간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었으며 또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선을 베풀었을지라도 그의 선행이 아무 쓸모없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관련을 맺었으나 그 믿음에 따른 행위가 없으면 그는 구원을 얻을지라도 상급은 없다.

 

그러므로 본절은 인간이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서 부터 시작하여 모든 행위에 그 보응을 받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보응하시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도세이''아포디도미'의 미래 직설법으로 좋거나 나쁜 의미의 모든 보상을 뜻한다.

 

따라서 본 구절에 의하면 믿는 자에게는 선한 상급이 주어지겠지만, 불신자는 그 형편에 따라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리고 그러한 심판은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공정한 것이다.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참고 선을 행하여 - 본문을 보면 바울이 6절에서 언급했던 '행위'가 단순히 율법적인 차원의 것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선을 행한다'는 것은 성도가 영광의 면류관을 향해 끊임없이 달음박질 해나가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이는 이신칭의의 가르침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성경에서 말하는 ''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 이상이며, 오직 하나님을 믿는 성도만 그 믿음에 따라 하나님과 이웃에게 ''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10:25-37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포도나무 비유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15;1-14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성도의 선행이란 예수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으며 오직 그와 연합된 가운데서 비롯될 수 있다.

 

즉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이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며,

 

(5:16-18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그렇게 될 때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가운데 선이 나온다.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고 이 열매는 낙심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행할 때 거두게 된다.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영광존귀썩지 아니함 - 이것들의 본질은 영생이며, 그것들이 나타나는 장소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즉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며 사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이 세 가지로 표현했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영광'은 하나님의 속성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영광'과는 다른 것으로서,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게 될 때에 나타나게 될 변화를 가리킨다(J. Murray).

 

그리고 성도가 얻게 될 그 '영광''존귀한 것'이며 결코 '썩지 아니하는 것'이다.

 

 

영생으로 하시고 - 영생(조엔 아이오니온)은 항상 궁극적인 구원으로 표현되었다.

 

유대교도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준다는 것을 가르쳤으나 그들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율법을 행함으로 생명 얻기를 원했다.

그러나 율법을 행하면서 썩어질 육체의 증표(證標)를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허락되지 않았다.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영생은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으며,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또한 그를 믿는 자들에게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한편 본절에서 영생은 6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보응'의 목적격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8절의 '노와 분'이라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심판이라는 개념보다 생명이라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후, 그를 따르는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과 영생을 소망하며,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삶을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2: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당을 지어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이스 여스 에리데이아스'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에리데이아''보수(報酬)에 얽매인 고용인'이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에리도스'에서 파생되었다면,

 

본절은 '이기적인 욕망이나 야망을 가진 자들에게'라고 번역될 수 있고, '다툼'이나 '논쟁'의 의미를 가진 헬라어 '에리스'에서 나왔다면, '논쟁하는 자들에게'로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1:16에서의 '에리데이아'는 분명히 '에리스'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1: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러나 빌 2:3에서는 '다툼'이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이기적인 욕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그외 갈 5:20이나 약 3:14 등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5: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3: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그리고 본절은 단순히 '당을 지어'로 번역되면 바울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합쳐서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논쟁에 가담하는 자들'로 이해하는 편이 좋다.

즉 진리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어 어떤 분쟁이 일어나면 항상 쉽게 발뺌할 수 있거나 이익이 되는 편에서는 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 민중들 사이에서 나타나던 공통된 특징이었다.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 - 진리와 의는 상호 보충적인 관계로 쓰여진 반면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진리와 불의는 상반적인 관계로 쓰여졌다.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고전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살후 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진리로 자기들의 생활을 다스리지 않고,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강퍅하게 회개치 않는 마음으로 자기의 의를 좇는 자는 결국 불의에 순종하는 자로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진리와 불의의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불순종은 불의에 순종하는 것이며, 또한 불의에 순종하는 것은 궁극적인 영원한 의를 포기하는 행위이기에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는 하나님의 분노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분노는 불신앙에 따른 적극적인 불순종에 대하여 발생하는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하시려는 궁극적인 구원을 거부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보응은 더욱 가증될 것이다.

 

바울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라고 같은 말을 반복한 것도, 그들에게 임할 진노의 강도를 보다 명백하게 나타내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 ''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모스'는 보통 '분노'로 번역되지만 '진노'(오르게)와 특별한 구별 없이 사용될 수 있다.

 

바울이 유사한 의미를 가진 두 단어를 같이 사용한 것은 일종의 중복어법으로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하여 무서운 진노로 보응하시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