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 2
성 경: [롬 2:4-5]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롬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
'인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게이'는 현재 직설법 3인칭 동사로서, 하나님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이방의 우상숭배와 부도덕, 그리고 남을 판단하는 어떤 자들의 교만을 지켜보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방향을 전환하여 마음과 태도를 바꾸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속성, 곧 '인자하심' 때문이다.
본절에서 '인자하심'은 거듭 사용되어 중요한 사상임을 보여준다.
본 구절의 '인자하심' (크레스토테토스)은 하반절의 '인자하심'(크레스톤)과 의미상 별 차이는 없지만 특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미하며, 보다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뜻을 갖는다.
(11: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이는 또한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것과 같은 성품을 시사한다.
(마 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나 유대인들을 포함한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이용하여 오히려 자기의 의를 자랑할뿐더러 그의 오래 참으심을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더 나아가 인생들은 악한 일을 행함에도 속히 징벌을 행하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너그러움을 이용하여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였다.
(전 8:11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본절에서 이와 같은 죄인의 태도는 '하나님을 멸시하는'(카타프로네이스) 것이라고 지적된다.
유대인의 교만과 이방인의 부도덕은 같은 죄악으로서 하나님을 깔보거나 업신여기는 방자한 행동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풍성함을 멸시하는 죄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죄인들 가운데 나타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동시에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복음이 바로 죄인들에게 주어졌다.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에 죄를 범할지라도 그 죄에 따라 공의의 심판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든지, 아니면 자기들이 죄를 범해도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심판을 내리시지 않기에 자기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에 별로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무시해 버렸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도 소홀히 여겼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완악한 심령에 대하여 바울은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5절)이라고 표현했다.
한편 본절의 '용납하심'(아노케)은 잠시 쉬는 것을 의미하며 '자제'(self-restrain)의 개념을 지닌다. 본절에서는 '너그러움'을 뜻하며 구체적으로 '징벌의 지연'을 뜻한다.
또한 '길이 참으심'(마크로뒤미아)은 '어떤 충격에도 곧바로 반응하지 않음'을 뜻한다.
이 두 단어는 '인자하심'(크레스톤)과 합해져서 심판을 연기하여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시사한다(Harrison).
(벧후 3: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롬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 - 인간이 갖고 있는 완고함이나 회개치 않는 마음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상반된 대조를 보인다.
'회개치 아니한'의 헬라어 '아메타노에톤'은 하나님의 권고적인 회개를 뜻하는 '메타노이안'과 부정접두사 '아'의 합성어이다.
이는 하나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개조되거나 변화되지 않는 마음을 뜻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거부하는 반항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이러한 반항은 빛에 대한 거부로서 온순하고 순종적인 마음을 잊어버린 완고한 행동이다.
또한 '고집'에 해당되는 헬라어 '스클레로테타'는 '완악', '완고' 또는 '잔인'을 뜻하는 '스클레로테스'의 목적격으로서 영적으로 경화(硬化)되거나 딱딱하게 굳어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이들 두 단어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와 함께 자주 사용되었으며,
(신 9:27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강퍅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본절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서로의 의미를 보다 선명하게 밝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죄인은 자기의 고집과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는 것이다.
▶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 '진노의 날'을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의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해 포위되어 함락되던 것과 반드시 연관 지을 필요는 없다.
1절에서 본절까지의 내용이 하나님을 거역한 유대 민족 전체에 대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으나, 6절부터는 개인의 행위에 따른 심판이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본절은 민족적인 심판에 대한 언급이라기보다는 개인의 행위에 대하여 보응하는
마지막 심판으로 이해해야 한다(Luther, Calvin, Hendriksen, Harrison).
한편 '그 날'(헤 헤메라)은 종말론적인 용어로서 '주의 날'(헤 헤메라 퀴리우). 곧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고전 3: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살전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16절에 언급된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은 구체적으로 마지막 심판 날을 가리키므로 본절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로마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1) | 2024.06.19 |
---|---|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0) | 2024.06.18 |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1) | 2024.06.16 |
로마서 1장 16절 (2) | 2024.06.15 |
바울의 그리스도 관 - 로마서 1장 3-4절 (1) | 2024.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