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거듭난 삶 2024. 6. 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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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에 따른 심판 2

 

성 경: [2:9-13]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 '각 사람의 영'이라는 표현은 사람의 영혼과 육체 중 '영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울은 ''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케''사람'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또한 전후 문맥상 '사람'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고데(Godet)의 견해에 따르면 9절과 10절의 구성은 7절과 8절의 대조적 구성을 거꾸로 재배열 시킨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볼 때 '각 사람'이라는 말과 '각 사람의 영'이라는 말은 동일한 의미로서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이라는 표현 역시 악의 계획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임할 보응의 보편성(6)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은 선을 행하는 각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행한 대로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된다.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 8절에 언급된 '노와 분'이 심판자이신 하나님 편에 속한 것이라면 본절의 '환난과 곤고'는 하나님이 발하신 '노와 분'으로 인하여 약한 자에게 내려지는 결과이다.

 

그리고 이 두 단어는 선을 행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인 '영광과 존귀와 평강'과 반대되는 것이기도 하다. 혹자는 '환난'은 외적인 것으로 '곤고'는 내적인 것으로 설명한다(Hendriksen).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 본 구절은 다음 10절에서도 반복된다.

구원이나 은혜와 마찬가지로 심판과 형벌에 있어서도 유대인이 우선적이다.

 

언약과 약속에 따른 복이 유대인들에게 먼저 주어졌듯이, 그 복을 거절한 데에 대한 형벌도 유대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왜냐하면 우선적인 특권을 부여한 자에게 거기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50:3-6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4)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너의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6)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12:47-48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벧전 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한편 본절에 언급된 '헬라인'은 모든 이방인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영광과 존귀와 평강 - 7절에서도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이 나왔으나 본절에서는 '썩지 아니함' 대신 '평강'이 언급되었다.

혹자는 이것을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이해하기도 하며(Black, Murray),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 다른 학자는 보다 넓은 의미로 해석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모든 축복 속에서 새롭게 변화된 영혼과 육체로 영원히 즐거워하며 충만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구원'이라고 설명한다(Hendriksen).

 

어떤 의미이든 바울은 악한 자에게 형벌로 내리시는 '환난과 곤고'(9)에 대조를 이루는 용어로서 '평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 결과가 상반되는 것을 보여 준다

 

 

 

[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본절은 앞 부분(1-10)

그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12-29)을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데,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불공평도 없으시다', 또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편애도 없으시다'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편파적(偏頗的)인 것이 될 수 없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라는 (5) 구절이 이미 증명한 바 있다.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특권이나 지위가 아니라 사람이 행한 일들의 성격이 어떠한 것이냐의 문제이다.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프로소폴렘프시아)는 개념을 히브리적 사고에서 온 것으로서 재판관의 편견이나 편애를 지시하는 의미로 쓰여졌다.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대하 19:7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

 

34:19 왕족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니라).

 

하나님은 편견이나 편애가 없어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외형상 유대인에게 우선권을 부여한 사실과 모순을 이루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대인 역시 그의 행한 대로 판단 받으며, 오히려 그들에게 있어서는 우선권이 부여된 만큼 악행에 대하여 더 큰 환난과 곤고를 당해야 한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편견과 편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특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라도 그분의 선하신 뜻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오직 공의로우신 그분만이 판단 받는 자들의 다양한 입장을 고려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로 있다.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본절에서 바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지는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이든지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든지 누구나 자신들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복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 '율법 없이'(아노모스)라는 말은 부사로서 신약성경에서는 여기서만 사용되었다.

'율법 없이'의 명사형 '아노미아'나 형용사형 '아노모스'는 대개 '불법'이나 '범법'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절의 경우에는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고전 9: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아노모스'14절의 '타 메노몬 에콘타'('율법을 갖지 아니한')와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는 바, 계약을 맺어 율법의 기준에 따라 살기로 약속한 일이 없는 자들, 곧 씌어진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없이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

 

바울은 율법 없이 범죄한 자들은 '망한다' 아폴룬타이)라고 서술하고 율법 아래서 범죄한 자들은 '심판을 받으리라'(크리데손타이)고 서술한다.

 

이 두 단어는 모두 수동태로서 하나님의 능동적인 보응이 있을 것을 시사한다.

 

율법을 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은 우주 만물과 양심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파멸된 것이며,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율법의 기준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특별히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된다는 주장은 매우 중요한 사상이다.

바울은 율법을 자랑거리로 여기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정죄하거나 규제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정의하였다.

 

그러나 율법은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이고, 율법 자체가 멸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율법 아래서 범죄한 자들은 이 율법을 기준으로 심판받아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J. Murray)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을 - 12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율법'(노모스)은 관사가 없이 사용되었다.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Majority Text)에는 정관사 '''노무'('율법의')앞에 있는데,

대부분의 고대 사본( A. B)에는 이 관사가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 '노모스'('율법')에 관사가 붙고 안 붙고에 따라 약간의 의미상 차이가 있다.

 

(1) '노모스' 앞에 정관사 ''가 붙으면, 거의 대부분 모세 율법을 의미한다.

 

(2) '노모스' 앞에 관사가 붙어 있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모세의 율법이나 율법의 특정한 조문(條文)을 의미하기 보다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서 추상적인 법 개념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양심 속에 주어진 법이나, 자연적 계시 속에 나타난 법이나 어떤 순종을 요구하는 일반적인 개념의 법을 가리킨다.

 

(3) 특수한 경우로서 관사가 생략되어 있으나 모세 율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경우이다.

 

이는 헬라어 문법상 이미 알려진 어떤 확실한 개념을 보다 선명하게 나타내거나 그 단어의 본래적 개념을 강조하고나 할 때 관사를 생략하는 용법으로서 율법의 특수한 의미를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로 쓰인 경우가 있다.

 

만약 본절을 관사없는 사본을 따라 해석한다 하더라도 '율법'12절의 '율법'과 같은 것으로서 모세의 율법을 뜻하는 특수한 경우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J. Murray).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익히 배우고 들어서 잘 알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의 자랑거리다.

 

그렇지만 이 지식은 그들을 심판에서 제외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 없다.

율법을 들었으면 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율법이 의의 법칙일지라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만이 그것으로 인해 살리라고 가르친다.

 

(18:5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4: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그러나 본절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범죄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 논리를 전개하고 있을 뿐이다.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 본서에서 '의롭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카이오데손타이'가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단지 자신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롭게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문제가 달랐다(J. Murray).

 

글자 그대로 보면 '의롭게 된다'는 것이 율법을 행하는 자에게 해당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기준과 목적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바울은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보시는 판단에 의하여 칭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