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거듭난 삶 2024. 7. 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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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종 2

 

성 경: [6:20-23]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6: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 이 표현은 19절의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는 그 사람이 인간적인 선행을 행할 때도 있으나 그 사람의 신분은 '죄의 종'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聯合)하여 자기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힌 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에 사람은 '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그 의를 행해야 할 의무도 책임도 없었다.

 

비록 자연인은 본성이 율법의 행위를 할 수 있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2:14-15 율법을 소유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본성을 통해 율법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행할 때에 이런 사람들은 율법을 소유하지 않아도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이 증언하며 자기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이느니라).

 

그래서 칼빈(Calvin)"육체의 자유는 단지 하나님을 순종하는 데서 우리를 자유케 하여

마귀에게 얽매이게 할 뿐이다"라고 진술했던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진술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6:24)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교훈과도 일맥상통한다.

 

 

[6: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 때에 - 바로 앞절에서 언급한 '죄의 종이 되었던 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죄의 종이 되었던 때를 가리킨다.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 성경은 '열매'에 대해 말할 때

'선한 열매''악한 열매'를 구분한다.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악한 열매'를 구분한다.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 이 표현은 17절에서 20절까지의 진술이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면서

 

(17-20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은혜를 더하게 하려면 죄에 거하자'(1)고 주장하는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 상태의 로마 교회 성도들에 대한 것임을 보여준다.

 

성도가 하나님을 모르던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힘써 대적했었으나 하나님을 알면서부터 의에게 종이 되었으므로 그는 지난날의 일들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 죄의 종이 된 결과는 오직 '사망'만 있을 뿐이다.

혹자는 이 '사망''영원한 사망'을 가리키는지 확실치 않다고 주장하지만(Barmby),

 

(1) '사망''영생'과 대조되어 언급되고 있는 점,

 

(22-23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리고

(2)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종말론적 사건인 대심판에 대한 암시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본절의 '사망''영원한 죽음' 곧 지옥의 형벌을 의미한다.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그러나 이제는 - 이 표현은 극적인 전환을 보여주기 위해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것이다.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지금까지 바울은 죄에게 종된 상태에 있는 인간의 실존과 그 결말에 대해 설명했으나, 본절에서는 그와 정반대의 내용으로 전환(轉換)시키고자 이 같은 접속사를 사용하게 되었다.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 18절의 내용을 반복한다.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그리고 성도가 죄에서 해방된 근거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옛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있다.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하나님께 종이 되어 - 하나님께 종이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를 행해야 한다.

 

'()'

(1)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도에게 이루어졌지만,

(2)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성도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천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비록 바울이 18절에서는 '의에게'라고 언급했고, 본절에서는 '하나님께'라고 언급했을 뿐이지 그 두 단어는 본질상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 '거룩'은 인간의 순수한 노력만으로 성취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셨던 '성화'(sanctfication)를 의미한다.

 

그리고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는 해석상 애매한 표현이지만 구체화 시키자면 '거룩함의 열매' 또는 '성화의 열매'로 해석될 수 있다.

바울은 이 '성화의 열매'를 성도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바울은 '성화의 열매'를 미래에 이루어질 것으로 말하지 않고 성도가 현재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진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표현은 19절의 '거룩함(성화)에 이르라'는 권면과 함께 종합적으로 해석되어야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

 

본절과 19절을 종합해 볼 때, 성도는 '성화의 열매'를 그리스도로부터 받았으면서도,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동시에 '성화'를 수행해야 할 의무를 지닌 신분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화' 자체도 ''와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성도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성취된 것을 바라보면서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그것이 드러나도록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 예수의 가르침대로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그렇지만 완전한 의미의 영생은 마지막 부활 때에 거룩함의 열매를 소유한 자에게 주어진다.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은 죄에 계속 거하는 자에게 지불되는 대가가 사망이라는 의미이다.

 

''에 해당하는 헬라어 '와소니아'는 흔히 '병사들의 급료'의 의미로 사용된다(Hendriksen, Murray, Calvin, Barmby, Black).

 

비록 '와소니아'가 딤전 5:18에서는 단순히 노동자가 일한 것에 대한 대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을지라도 나머지 구절들에서는 군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3:14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고전 9:7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일꾼과는 달리 군인들이 철저하게 군사적인 의무에 매여있음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처럼, 사람이 '죄의 종'으로서 죄에게 충성함으로 '사망'이라는 대가를 받게 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와소니아'는 그 다음에 언급되는 은사(카리스마)와 대조되고 있다.

'은사''일한 것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4:6) 것에 대하여 적용될 수 있는 적절한 용어다.

 

(4: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리고 이 '은사'는 성도가 죄에서 해방되어,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22a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거룩의 열매를 얻게 된(22b) 사실을 지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22b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이처럼 성도는 구원의 전 과정에 있어서 자신이 노력한 대가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사로 값 없이 '', '성화', 그리고 '구원'을 받게 되므로 결코 자랑할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