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거듭난 삶 2024. 7. 2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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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종

 

성 경: [6:15-19]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 이 질문은 1절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본절은 1절과 같은 질문이지만, 1절은 문제의 제기이며 본절은 제기된 문제를 풀기 위해 그 동안 진술했던 내용을 재 확증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러면서 또 다른 주제로의 전환을 위한 예비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강조점의 차이로 1절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해도 좋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며, 본절은 '죄에서 해방되어 은혜 아래 있으므로 계속 죄를 지어도 좋지 않겠느냐'고 주장하는 자에 대한 반론이다.

 

한편 '죄를 지으리요'라는 표현도 역시 1절의 '죄에 거하겠느뇨'라는 표현과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그럴 수 없느니라(메 게노이토) - 바울은 자신이 스스로 질문한 사항에 대해 강한 부정의 대답을 하고 있다.

 

KJV는 이 문구의 헬라어 '메 게노이토'가 지닌 강력한 부정의 뜻을 살려 '하나님이 금하신다'(Good forbid)라고 해석하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당연히 방종한 마음과 생활을 거부하고 은혜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다.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 ''에 해당하는 헬라어 '둘로스''청지기' 또는 '집사'를 가리키는 '디아코노스'와는 달리 철저히 주인에게 예속된 '노예'를 가리킨다(servants KJV).

 

어떤 사람이 자기 몸을 노예로 바치면 이미 그는 자기 몸에 대한 주권을 포기해야 한다.

오직 주인에 대한 철저한 복종만 있을 뿐이다.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 영적인 차원에서 사람은 '죄의 종'이든지 '순종의 종'이든지 어느 한 편에 속하게 되어 있다.

 

물론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한'(3:15) 미지근한 상태에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미지근한 상태에 있는 사람도 엄격한 의미에서 '죄의 종'에 속한다.

 

한편 본절에서는 '죄의 종''순종의 종'이 대조되어 언급되고 있다.

여기서 '죄의 종''불순종의 종'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는 곧 '불순종의 아들들'(5:6)로도 이해된다.

 

(5: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리고 이들은 벧리알의 자손들로,

 

(13:13 너희 중 어떤 잡류가 일어나서 그 성읍 거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19: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 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

 

'불법의 사람'이요, '멸망의 사람'이다.

 

(살후 2: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리고 또 다른 대조로서 '사망'''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들은 '죄의 종''순종의 종'에게 각각 주어지는 열매다.

 

23절 말씀과 연관지어 볼 때 본절의 '사망''영원한 멸망'을 의미한다.

 

(살후 1: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반면에 '''사망'과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 '영생'으로 대치해도 무난하다.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 혹자는 본절에 대해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일로 찬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오늘날의 상태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고 주석했다(Hendriksen).

 

이 말은 바울이 로마 교회가 성화(聖化)된 모습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본절 이하에 계속된 바울의 진술은 성화의 진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과 믿은 후의 변화된 신분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 사망이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했으므로,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의 생명에 동참한 모든 사람은 죄의 종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본 구절은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지니고 있던 사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 성화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지 않는다.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 - 혹자는 본 구절이 딤후 1:13'바른 말',

 

(딤후 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딤전 1:10'바른 교훈'(딤후 4:3;1:9;2:1)과 같이,

 

(딤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1: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2:1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

 

복음 중에서 윤리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에 속한다고 단언한다(Murray).

 

그러나 만일 이 주장을 따르면 곧이어 언급되는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18)는 선언이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본을 순종함으로써 주어진 결과임을 의미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기독교를 다시 율법주의로 되돌려 놓는 결과를 초래하며 반()복음적인 가르침이다.

 

따라서 '교훈의 본'은 복음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마음으로 순종하여 - 이 표현은 바울이 10:10에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라고 언급했던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또한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순종'을 동일선상에서 설명한다.

 

(3:18-19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4: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6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따라서 본 구절은 '마음으로 받아들여' 또는 '마음으로 믿어'라고 번역해도 무방하다.

 

본절에서 '순종'이라는 단어에 너무 치중하면 인간 행위가 강조되며, 바울이 그동안 강조했던 '믿음'과는 별개(別個)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죄에게서 해방되어 - 성도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죄의 몸이 멸하여졌으며,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동시에 죄에 대하여 죽은 그는 죄에서 벗어났다.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종이 되었느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둘로데테'는 단순 과거 시제를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단순과거 시제는 어떤 동작이 불확정직임을 나타낸다. 즉 동작의 결과가 완료되었음을 나타내지 않는다.

 

바울은 성도가 '의에게 종이 된'것을 단순과거 시제로 표현함으로써 7절의 '교훈의 본', 곧 복음을 믿은 결과 성도가 죄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종이 된 상태가 현재에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 '육신'(사르크스)은 새로운 피조물로 옮겨질 수 있는 ''(소마)과는 달리 이 세상의 존재 양식에 속하여 있고, 이 세상과 더불어 멸망 당할 자로서의 인간을 지칭한다.

 

그리고 이 '육신'''(성령)과 대립을 이루면서 연약함과 허무 가운데 있는 인간성을 의미한다(Ridderbos).

 

따라서 본절은 본 서신을 받아보게 될 로마 교회가 영적인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무르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 영적 진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일반적인 예를 들었음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 종에 대한 예를 가리킨다.

 

바울은 성도의 신분이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라는 진리를 설명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종과 주인과의 관계성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한편 바울은 본절과 같이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라는 표현을 갈 3:15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3:15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전에 너희가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본 구절은 1:18에서 3:18까지 바울이 언급한 인간의 타락한 상태에 대한 요약 설명으로 이해된다.

 

바울은 여기서 로마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상태를 지적하고 있다.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 '거룩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아스모스''성화'를 의미하는지 '성결'(holiness)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견해가 학자마다 다르다.

 

따라서 본절에서 '하기아스모스''거룩' 또는 '성별'로 해석하든지 '성화'로 해석하든지 상관없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들을 위해서 성취하신 것이다.

 

그러면 왜 바울은 거룩함에 '이르라'고 권면하고 있는가?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거룩'(성화)을 믿음으로 전가 받았으나 아직 연약한 육신에 매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몸의 구속'을 기대한다고도 했으며,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듯이,

 

(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당연히 '거룩함에 이르라'고 권면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본절에 언급된 바울의 권면은 '거룩'(성화)은 구원받은 백성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사명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