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거듭난 삶 2024. 7. 20. 00:11
728x90

의의 병기

 

성 경: [6:12-14]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그러므로 - 바울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 없다는

 

(1-2a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수 없느니라.)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교리적으로 피력했던 진술들을,

 

(2b-11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본 접속사를 사용했다.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 바울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가 성도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 바울이 논리적인 모순을 범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바울은 다시 14절에서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라고 언급함으로써 죄에 대한 성도의 죽음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한다.

 

이것은 죄에 대한 성도의 죽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실재적으로 발생했던 사건에 대한 진술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죄가 성도들에게 왕 노릇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은 보장되어 있다. 다만 죄가 연약한 인간의 몸을 통해서 역사하고 있다는 이것 역시 현실이다. 그러나 죄가 이전과 같이 성도들에게 왕 노릇 할 수는 없다. 성도들에게는 오직 그리스도만 주인이다.

 

그런데도 죄는 성도들의 연약한 몸을 통하여 역사하면서 자신이 주인인 체 할 수 있다.

 

이러한 거짓된 가장(假裝)조차 허용하지 않기 위해 바울은 본절과 같은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다.

 

성도는 의인이요 거룩한 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으나, '죽을 몸'을 지닌 현재는 아직 죄와 투쟁하는 신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죽을 몸''죽을'은 헬라어로 '드네토'이며 이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인간의 원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벌로써 내려진 필연적인 죽음을 가리킨다(mortal, KJV).

 

아담은 하나님께 범죄 하기 전에 죽지 아니하는 '생령'(生靈)을 가졌었다.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러나 그가 범죄 한 후부터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고 이 사망의 진노는 모든 인간에게 그대로 내려졌다.

 

그러나 사망의 진노는 구속함을 받은 성도에게는 더 이상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렇지만 동시에 성도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면서 타락한 세상과 부딪히게 된다.

 

그렇기에 바울은 더 이상 죄의 유혹에 빠지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에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지속적으로 애쓸 것을 당부하고 있다.

 

몸의 사욕(私慾)을 순종치 말고 - 죄는 우리 죽을 몸을 통해서 역사한다. 그 몸에서 죄를 짓게 하는 욕구가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몸의 욕구대로 행하게 되면 죄에 대하여 죽은 성도는 도전(挑戰)을 받게 된다.

 

성도라면 당연히 죄와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또한 투쟁해야 한다.

비록 죄에게 패배할 때가 많을지라도, 성도는 이미 죄에 대한 승리를 보장받은 신분이므로 염려할 필요는 없다.

 

한편 '순종치 말고'라는 말은 난폭하고 불같은 정욕대로 행할 것을 사단이 강요한다는 암시를 함축한다.

 

사단의 세력은 성도가 단순히 죄와 연합하는 것을 지나 죄에게 순종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죄의 심각성과 타격적인 지배성을 상기할 수 있다.

 

일찍이 사단은 그리스도께도 '내게 엎드려 경배하라'는 조건을 내걸은 바 있다.

 

(4: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유혹을 이기시고 꾸짖은 것처럼, 성도는 죄악의 곁에 가지 말며 죄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 '지체'라는 말은 12절의 '죽을 몸'이라는 말과 내용상으로 같은 의미이다.

 

그리고 '불의의 병기'(호플라 아디키아스)란 표현은 각각의 지체가 죄의 종이 되어 불의를 행하는 도구가 됨을 나타낸다.

 

특히 바울은 '병기'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단순히 각 지체가 불의를 행함에 있어서 도구적인 의미보다 더 적극적인 수단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상 성도라 할지라도 자기 몸의 지체를 제어(制御)하지 않으면 이미 그의 몸은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 '너희 자신''너희 죽을 몸''너희 지체'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12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란 표현은 11절 내용의 반복으로,

 

(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성도가 의와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자의 신분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서, 새 생명을 소유한 신분으로 자기의 지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

 

그 이유는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고전 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며,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 바울은 성도의 삶을 군사적 삶에 비유하는 표현법을 즐겨 사용했다.

 

(고전 9:7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고후 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6:10-2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전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딤후 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거듭난 성도는 자신의 몸을 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죄와 투쟁하기 위한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성도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싫어할 때, 이미 그는 자기의 몸이 불의의 병기로 사용되고 있으며 어떠한 의의 열매도 맺지 못하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 성도가 자기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죄와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살 수 없다.

 

그렇지만 자기 몸을 하나님께 바치는 삶을 살고자 애쓰는 그 사람에게 죄가 왕 노릇 할 수는 없다.

 

한편 '주관치 못하리니'는 단순히 장래에 되어질 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죄가 주관치 못한다는 내용을 강력하게 확증(確證)한다.

 

즉 죄가 성도를 주관치 못하는 것은 장래뿐만 아니라 현재에 있어서도 확실히 그렇다는 것이다. 이 강력하고 확실성 있는 보증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으로 말미암는다.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 본절에서 '''은혜'와 대비되어 있으므로 이 '''법칙'이나 '세상적인 법'이 아니라 '율법'을 의미한다.

 

바울이 '율법''은혜'를 대비시킨 것은 죄가 성도를 주관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즉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율법의 종이 되어 그리스도와는 관계없이 죄의 문제만으로 고민하여 항상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게 되니, 그 사람은 죄의 종이다.

 

그러나 은혜의 원리에 따르는 자는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확신과 함께 죄의 문제가 해결된 상태에 거하게 되므로 결코 죄가 그에게 왕 노릇 할 수 없다.

 

이 사실은 8:1, 2에서 바울이 선포했듯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을 뿐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