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거듭난 삶 2024. 7. 2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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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성 경: [7:1-6]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 이 표현은 바울이 법을 아는 자들과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분하기 위해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Murray).

 

바울은 오히려 모든 사람이 법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 표현을 사용했다.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 혹자는 '율법'을 예수께서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15:6)라고 말씀하셨던 변질된 유대인의 율법으로 이해했다(Hendriksen).

 

그러나 이 해석은 본절과 내용상 별로 상관이 없으며 '율법'이라는 용어에 너무 집착한 해석이다.

 

또 어떤 사람은 '율법'이 구약에 기록된 '율법' 중 특히 '모세 율법'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있다(Murray).

 

사실 바울은 '율법''모세 율법'의 의미로 사용했다.

 

(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고전 9:8-9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4: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이 결혼 규례는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와 같은 법의 강제성(强制性) 하에 있게 된다는 사실이 본 구절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이다.

 

한편 '살 동안만'이라는 표현은 '사람의 전생애 동안'을 의미하는 것이지, '율법에 종 노릇하는 동안의 삶'으로 (origen, Ambrose, Erasmus) 한정될 근거가 거의 없다.

 

(4:8-9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7: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되나 - 고전 7:39에서 바울은 본절과 동일한 내용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고전 7: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다만 고전 7:39에서는 '법으로'란 말이 생략되어 있다.

 

본절에서 이 말이 첨가되어 있는 것은 1절에서 3절까지의 비유가 율법 아래 있던 사람이

율법에서 어떻게 해방되느냐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법으로'라는 말이 강조적으로 첨가되어 있다.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 여인이 남편에게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1) 본절의 진술과 같이 남편이 죽으면 그 여인은 남편에게서 해방된다.

(2) 여인 자신이 죽게 되면 역시 남편에게서 해방된다.

 

4절 이하의 설명에 따르면 '율법''남편'에 비유되고 있다.

그런데 '율법'은 죽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1-3절의 비유를 문자적으로 적용시킬 필요는 없다.

 

다만 굳이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여인 자신이 죽음으로써 남편에게서 해방되는 것으로 본문을 고쳐야만 한다. 이렇게 되면 여인에 비유될 수 있는 신자는 그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써 율법에서 해방되었다는 6:3, 4, 6의 진술과 합치(合致)될 수 있다.

 

(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본절에서 바울은,

 

(1) 결혼 관계에 있는 여인이 그 관계를 지속시키지 못했을 때 '음부'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율법에 의한 정죄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율법은 그 아래 있는 자들에게 조금도 자유를 주지 않으면서 그것을 범하는 자에게는 어김없이 정죄하게 된다.

 

(2) 남편의 법에서 해방된 여인의 자유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다.

본래 성도는 죄의 종이요 율법 아래 있던 자였으나, 그것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그것에 대하여 죽는 것뿐이다.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바울은 율법이 죽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이 죽어야 그 사람이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기 위해 죽는 것은 바로 옛 사람인 바, 이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

 

바울은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 율법에 대하여 죽음으로써 사람은 율법에서 벗어났다.

 

위의 비유에서는 율법(남편)이 죽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나 율법은 죽을 수 없기에 여인이 죽어야 한다(2절 주석 참조).

 

이 여인도 직접 죽을 수 없고 결국 대신 죽은 자에게 붙어 있게 됨으로써 그 죽음이 인정받게 된다. 그 후에 여인된 성도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으므로 다시 사신자와 연합하게 된다.

 

여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란 표현은 무엇보다도 결혼 관계의 성립을 보여주고 있다.

결혼 관계에 들어가는 것은 또한 두 몸이 한 몸으로 연합됨을 가리킨다.

 

이처럼 바울은 6장에서는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연합(聯合)에 대해 추상적으로 설명했으나,

 

(6:3-6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본장에서는 결혼 관계를 비유하여 보다 구체화 시키고 있다.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 이 열매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6:22)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맺는 열매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과 의()라고 할 수 있다(Calvin).

 

즉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를 얻고 '거룩'하게 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6장과 본장에서 말하는 '열매'의 본질이다.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 바울은 항상 '육신'(사릍스)'' (프뉴마)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사용하여 죄와 대항하기에 무기력한 인성과, 그에 근거하는 삶의 방식을 나타낸다.

 

(8:3-9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육신'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육신'을 통해서 죄가 왕 노릇하기 때문에 '육신''죽을 몸'(6:12)이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인간'에 대해서 '육신'이라고 했으며, 또한 그리스도를 알지만 율법에 종 노릇하며 죄에 거하는 자들에게도 이 말을 적용했다.

 

(고전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신분상으로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에 속한 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에 속한 자 같이 행동하는 것은 그 일을 행하는 사람 자신 뿐 아니라 그를 불러 의인되게 하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2: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어쨋든 본절에서 육신은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상태 즉, 그리스도와 무관(無關)한 삶을 살던 때의 신분을 가리킨다.

 

죄의 정욕이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 파데마타 톤 하마르티온'은 죄악의 성격을 갖는 정욕을 의미하는데, 혹자는 '색욕, 분노, 증오, 악한 뜻, 투기, 시기, 터무니없는 두려움' 등으로 해석한다(Hendriksen).

 

그러나 본절에서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서, '죄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Meyer, Gifford, Murray)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바울은 7절과 8절에서 '죄의 정욕' '탐심'을 대표적인 것으로 언급한다.

 

한편 바울은 '죄의 정욕'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 자체에서 일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율법'으로 말미암는다고 진술하고 있다.

 

(7-8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 여기서 '지체''육신'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죄가 지체를 통해서 실제화되기 때문에 '역사 하다'란 말과 어울리는 '지체'란 용어를 사용했다.

 

즉 사람의 '지체'는 죄에 붙잡혀 사용되면 '불의의 병기'이며, 하나님께 붙잡혀 사용되면 '의의 병기'로 역사하게 된다.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 이 말은 6:13에서와 같이 사람의 지체가 '불의의 병기'로 사용된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 맺는 것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반대로 죄와 연합하여 죄의 종노릇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상태에 빠진 사람은 사망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로 있다.

이러한 상태가 그의 열매이며, 최종적으로는 영원한 사망의 열매로 이어진다.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 여기서 두 문장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다'는 진술은, 율법에서 벗어난 방법에 대한 설명이다.(Murray).

 

그러므로 '얽매였던 것''율법'을 설명해 주는 말이다.

 

율법은 사람을 얽매는 것이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죽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사람의 정욕과 율법이 조화를 이루면 이처럼 과격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율법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대표(代表)로 죽으신 것이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 바울은 ''이란 용어를 매우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성령'으로 해석하지만(Hendriksen, Murray, Stott, Harrison) 그 한 단어로 ''이란 용어가 지닌 의미를 완전히 드러낼 수 없다.

 

바울이 ''(프뉴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용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8장에서 '''육신'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이 죄에 대해서 전혀 배타적임을 가리킴과 동시에 율법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2) ''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갖게 된 '새생명'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때에는 '''성령'과 동일시될 수 있다.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3) 본절에서와 같이 '''의문'(儀文)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의문'이 옛 시대의 지배 원리였던 것과는 반대로 ''은 새 시대의 지배 원리이다.

 

물론 새 시대의 지배 원리는 '성령'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지만 새 시대의 지배 원리 자체와 성령은 동일시될 수 없다. 새 시대의 지배 원리에 속한 것으로는 '''복음'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성령과 사람의 영이 8장에서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으며, 고전 6:17에서는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 볼 때, 바울이 ''이란 용어를 사용할 때에, 어떤 곳에서는 새 생명을 주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새 시대의 지배 원리에 대해 적용하기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본절은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것'(Murray)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새 시대의 지배 원리를 따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