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거듭난 삶 2024. 7. 2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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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 속한 자 2

 

성 경: [8:5-11]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

 

본절에는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 육신의 일과 영의 일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성령'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바울의 저서에 있어서 ''(프뉴마)'성령'을 의미할 때도 있으나 단지 죄의 원리 또는 그 세력과 대조되는 의미로 사용될 때도 종종 있으며, 본장 전체에서도 ''이 반드시 '성령'으로 해석될 수 없는 곳이 많다.

 

따라서 여기서의 ''은 성령이 아니라 다만 육신과 대조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을 의미한다.

 

'육신을 좇는 자'가 육신을 위해 모든 목표를 세우며 그것을 추구하는 자라고 하면

'영을 좇는 자'는 하나님을 위해 모든 목표를 세우며 그것을 추구하는 자다.

 

그리고 '영을 좇는 자'가 목표를 세우고 추구해 가는 모든 과정에는 성령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영을 좇는 자'라고 해서 연약한 육신을 이기고 마음으로 원하던 바를 모두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을 좇는 자'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것과 그것과 투쟁하는 죄의 법이 공존한다.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이는 사람의 가장 깊은 사고(思考)의 원천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육신'으로부터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생각, 곧 자기중심적인 생각만이 나온다.

 

그러나 ''에게서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생각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교훈하고자 하는 내용은 '영의 생각'을 가진 자는 오직 영의 일만을 좇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즉 인간에게는 뚜렷하게 구분되어 나타나는 두 종류의 생각이 있는데,

 

(7:21-23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생각에 의해 발생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점이다.

 

이 해결에 대한 답을 이미 1절에서 언급한 후,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바울은 미리 주어졌던 답에 대해 설명하기 위하여 다시 두 생각을 대립시키고 있다.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 죄의 법 아래 사로잡혀 있는 육신은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도 맺을 수 없다.

왜냐하면 육신이 도모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에 속한 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을 거부한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 혹자는 본 구절을 해석하기를 "하나님의 의로운 법에 순종치 아니하고 의지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된 증거요, 이는 모든 비참함의 근거다"라고 했다(shedd).

 

이처럼 육신의 생각에 따라 사는 자는 자신의 의도가 있든 없든,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도전하기까지 한다.

 

할 수도 없음이라 - 자연인의 전적 불능(不能)과 전적 부패성을 보여준다.

 

오직 성령에 의해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기꺼이 순종하는 마음과 의지를 가질 수 있다.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

 

본절은 7절의 논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결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생각을 하며, 이에 따라 육신의 일을 하게 된다.

 

즉 육신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으므로 그에게서 나오는 모든 행동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것이 죄의 법 아래에만 있는 자의 실상(實狀)이다.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 성도는 누구나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聖殿)이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그동안 육신의 영을 대립시킨 목적을 밝히고 있다.

 

(4-8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자는 육신에 속하지 않는 자라고 바울은 선언하고 있다.

 

즉 성도가 비록 선을 행하기를 원할지라도, 그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성도로서의 신분을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육신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심으로써 '영에 속한 자'의 신분을 얻게 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본절에는 성령에 대한 바울의 견해가 매우 잘 나타나 있다.

 

'성령'='하나님의 영'='그리스도의 영'과 같은 등식이 보여주듯이 성령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이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Teh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성령은 영원히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신다'.

(the Holy Ghost eternally proceeding from the Father and the Son)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성령은 성도 가운데 거하시면서 성도의 영과 더불어 활동하신다.

 

(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한편 성도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에 의해서 뿐이다.

 

성령께서 오심으로써 성도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믿게 하시며 또한 그는 성도 안에 계시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 주신다.

 

따라서 성령이 거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이기에 그리스도께서 거하는 자이고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10a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고 말씀하시고,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17:3)

 

가르치심으로써 사람이 믿음으로 '영생'을 이 땅에서부터 소유하게 됨을 가르치셨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바울도 이신칭의(以信稱義)를 근거로 성도의 영이 살아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성도는 새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다.

 

몸은 죄의 도구가 된 육신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으나, 영은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인해 살았다.

 

여기서 '살아 있다'는 의미는 1절의 '정죄함이 없나니'란 말씀과, 2절의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는 말씀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즉 성도가 여전히 정죄받는 신분이라면 아직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지 않았으므로 살았다는 신분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정좌함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 사람인 ''은 죄의 포로가 된 육신과 심각한 갈등 관계에 있을지라도,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값없이 주신 의로 인해 살아 있는 존재이다.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

 

본절은 10절의 선포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이다.

 

그 설명을 요약하면, 성령이 내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성령에 의해 예수를 사망 권세로부터 살리심같이 다시 일으킴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바울은 단순히 영이 살아나는 것만을 진술하지 않고 성도의 '죽을 몸'이 다시 산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10절에서 바울은 '몸은 죄를 인하여 죽은 것이나'라고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는 죽을 몸이 산다고 진술하고 있다.

 

형식상으로 볼 때 그 두 진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나, 내용면에서 그 두 진술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즉 몸은 죄로 인해 죽는다. 그렇지만 영은 의로 인해 살았다.

이와 같이 죽을 몸도 영이 성령에 의해 살게 된 것처럼 다시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