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중보 기도
성 경: [롬 8:26-30]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이와 같이 - 이 접속사는 성도가 탄식하면서 양자될 것, 곧 몸의 구속을 참음으로 기다림을 지칭한다(Black).
▶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 성령은 성도를 양자로 보증해 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최종적으로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도와주신다.
성도는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기에 성령께서 성도 가운데 계시면서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양자로서의 보증이 성도 안에서 확실히 성취되도록 도와주신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런 의미에서 성령은 보혜사(保惠師)이시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한편 본절의 '도우시나니'는 '다른 사람의 손을 붙잡아 준다'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가운데 본절과, 마르다가 마리아의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인 눅 10:40에만 나온다.
(눅 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성령께서는 성도가 연약해 있을 때에 성도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고 곁에서 일으켜 세워주며 붙들어 주신다.
▶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 본 구절은 기도하는 성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성도는 연약하기에 영적 힘을 공급해 주는 통로인 기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성도는 기도함에 있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철저하게 자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령의 도움을 간구해야 한다.
성령의 도움이 아니면 기도의 능력도, 기도할 내용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본 구절은 성령께서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일하고 계심을 강조하고 있다.
즉 성령께서 성도들 편에 서서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실들을 미리 아시고 성도들을 위해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신다.
이런 면에서 기도는 성도 안에 계신 성령의 사역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C.H. Dodd).
성도가 갈등으로 인해 탄식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성령께서도 성도보다 더 심한 탄식으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성도에게는 가장 큰 위로이며 구원에 대한 보증이다.
[롬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 본 구절에서 바울은 성부나 성자 하나님과는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성령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동시에 바울은 성부 하나님과 성령의 활동을 구별한다(Black).
'성령의 생각'은 하나님의 구원계시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그 구원계시를 바탕으로 해서 성도를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6:7-14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하나님의 뜻대로'에 해당되는 헬라어 '카타 데온'은 직역하면 '하나님을 따라'란 의미이다.
여기에는 개역성경 처럼 '뜻'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성부 하나님이 구속 사역을 위해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데 그 강조점이 있다.
성령은 성부 하나님과 별개로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거대한 구원 계획에 따라 활동하신다. 성령께서 성도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도 성부의 구원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 성도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것'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주어졌다는 인상이 본절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를 선택하시고 부르시는 것은 인간의 어떤 행위에 대한 보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성도로 선택함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서 비롯된다.
또한 본 구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부르심을 입은 자'를 동격(同格)으로 취급하고 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이며,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이에 대한 헬라어 본문은 '판타 쉬네르게이 에이스 아가돈'으로 직역하면 '모든 것이 선을 위해 함께 역사한다'이다.
즉 만물 또는 모든 일이 선을 목표로 하여 협조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본 구절이 나타내는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만물로 하여금 선을 위해 역사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이 주어가 되지 않고 '만물'이 주어가 된 것은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본에는 '하나님'(호 데오스)을 주어로 삽입시키고 있다.
만물은 하나님의 섭리안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 모든 것은 선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성도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는 원동력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사실에 있다.
(27절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대한 적용은 31-39절에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31-39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 본 구절은 '예정'(豫定)의 목적으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사건이
(1)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변화되는 것인지 아니면,
(2) 그리스도를 믿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때부터 계속 변화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견해가 달라
두 견해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두 입장에 대한 학자들의 분류는 헨드릭슨(Hendriksen)에 의해 잘 설명되었다.
즉, (1)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으로는 그레이다너스(Greijdanus), 렌스키(Lenski),
머레이(Murray), 그리고 리델보스(Ridderbos)와 같은 학자가 포함되어 있으며,
(2)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으로는 칼빈(Calvin), 크랜필드(Cranfield),
로버트슨(Robertson), 그리고 잔(Zahn)과 같은 학자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헨드릭슨(Hendriksen)은 두 번째 견해를 지지한다.
두 번째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성화(聖化)의 교리를 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미 그의 형상을 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상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성도는 믿음의 눈으로 소망 가운데서 기다리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미 3:21에서 지금까지 진술한 바울의 논리를 가장 잘 대변해 준다.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본절은 29절과 함께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구원에 관한 매우 중요한 교리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는 '믿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예정과 부르심이 믿음에 의해서 확정되며, 칭의와 영화도 믿음에 의해서 성도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원의 전과정에 있어서 '믿음'이 전제되어 있으므로 바울은 굳이 그 단어를 삽입시킬 필요가 없었다.
바울이 본절에서 구원의 과정을 자세히 나열한 것은 성도로 하여금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39절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또한 바울이 나열한 단어 하나하나에는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가 암시되어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고 언급했던 것처럼, 구원의 모든 단계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한편 본절에 나오는 동사 '의롭다 하시고'와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는 각각 헬라어로 '에디카이오센'과 '에돝사센'인데 이들은 모두 과거 시제를 취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그리스도의 재림시 궁극적으로 완성될 것이지만, 이미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확고하게 세워져 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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