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거듭난 삶 2024. 8. 6. 00:19
728x90

내촌감삼의 로마서 제8장 주석 3

 

로마서 812-17

 

(12 ‘이러므로, 형제여, 우리는 부채자이다. 육에 대하여서가 아니라, 육에 따라 행할 자가 아니다’)

 

이러므로’ - 육은 우리들에게 아무 선한 일도 하지 못하는데 반하여,

영은 우리들에게 영혼의 생명을 주고, 몸의 부활을 제공하는 까닭에(11).

 

부채자이다’ - 의무를 진 자이다. 책임을 요구받는 자이다.

육에 대해서가 아니라부채자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 같이 육에 대한 부채자가 아니다.

 

육의 속박을 받고, 그 명 따르며, 그 요구에 응해야 할 자가 아니다.

그들은 육에 대해서의 부채자로서 그 노예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부채자로서, 그 자녀이다.

 

육에 따라 살(행할) 자가 아니다’ - 육에 대해서의 부채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육의 요구에 응하여 생애를 보내야 할 자가 아니다.

영에 대한 부채자이다. 그러므로 영의 명 따라 날()을 보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적으로 스스로 주일 수 없다.

영에 따르지 않으면 육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 그리스도 신자도 또 달리 진 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에 진 자로서, 죄의 육에 진 자가 아니다.

 

 

(13 ‘만약 육에 따라 살면(행하면) 죽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영에 의해 몸의 행위를 죽이면 살 것이다’)

 

죽을 것이다’ - 마침내 죽음에 이를 것이다.

 

육에 따른대도, 지금 당장은 죽지 않는다. 하지만 마침내 죽음에 이르도록 되어 있다.

 

영에 의해’ - 영으로서, 혹은 영 안에서. 혼자 스스로 죄에 이길 수가 없다.

 

영으로서, 혹은 영에 자기의 몸을 맡겨 이기는 것이다.

영은 그리스도 신자의 무기로서 또 승리의 경우이다.

 

몸의 행위를 죽임’ - ‘은 이 경우에 있어서는 죄의 몸이다.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육이라는 것과 같다. 그 행위를 죽인다는 것은, 육의 행동을 제지하는 일이다.

아욕을 없음 같이 하는 일이다. 몸에서 그 육적 생명을 빼앗는 일이다.

 

(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살 것이다’ - 육에 있어서 죽고 영에 있어서 살 것이다.

 

영적 생명을 보존하고 그 발달을 이룰 편달을 가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에 의해 행할 수 있는 일이다. 성령으로 하여금 하게 할 일이다.

 

그리스도교는 세상에서 이른바 금욕주의가 아니다. 영화 주의이다.

생명의 영의 역사로서 육의 행위를 죽이는 자이다.

박사 챠-머스의 이른바 새로운 사랑의 배척력을 사용하는 자이다.

 

 

(14 ‘무릇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되는 자는 이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무릇’ - 살 것이다(13).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마태복음 22:32)이시므로,

 

하나님의 아들은 영구히 살자 아닐 수 없다,

살자는 하나님의 아들 아닐 수 없다고. 바울적 논번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된 자’ - 육에 따르는 자가 아니라, 영에 인도되는 자,

영에 의해 안에서 추진되는 자, 이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 된 실증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바로 되어 그 지도 받는 자, 이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15 ‘대저 너희는 다시 두려움을 가지게 하는 노예의 영을 받은 것 아니다. 아니, 아들의 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저’ - 하나님의 아들이다(14).

 

그것은 즉,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 모세 때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사람 같이,

 

(히브리서 12:18-21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 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두려움을 가지게 하는 노예의 영’ - 영에 굴욕적인 것 있고, 자유적인 것 있다.

노예의 영 있다. 자유의 영 있다. 노예의 영은 굴종의 영으로서 또 공포의 영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영은 그러한 영이 아닌 것이다.

 

즉 전전긍긍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없는 영이 아니다.

 

주저하는 일 없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영이다’(히브리서 10:19)

 

아들의 영’ - 우리들을 아들로 하기에 족함의 영이다.

 

성령이다. 우리들의 마음에 임하여 오고, 이것을 화하고, 드디어 죽을 우리들의 몸도 다시 살리시기에 족한 영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아들로 부르시는데 그치지 않고, 아들로 하신다.

우리들의 충심에 변질적 동작을 일으켜, 우리로 하여금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일 수 있게 하신다.

 

 

(16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름에 의해, 성령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15).

 

그 증명 여하.

 

아바 아버지여’ - 아바는 바울 재세(在世) 당시의 히브리어이다. 아버지를 의미한다.

 

바울이 유시부터 그 육체의 아버지를 부르는데 쓴 말일 것이다.

영어에 아버지를 father라 하지 않고서 papa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다.

아버지에 대한 친숙을 나타내는 말이다.

 

아바 아버지여. 아바되신 아버지여, 가깝고, 사모하는, 그리운 아버지여

 

'아버지여라고 부름에 의해, 성령이 친히 - 우리들은 지금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여로 부른다.

 

소아가 그 자애로운 아버지를 부르는 말로서 한다.

우리들은 지금은 그를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여 라고 불러 멀리서 그를 경배하는 것 아니다.

 

우리들은 아바 아버지여 라고 불러 그의 무릎에 매달리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들의 이 접근에 의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그 거하시는 바로 된 우리들 자신의 영과 함께,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아바 아버지여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들의 영이다.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부르게 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다. 우리가 이 소리를 발할 수 있음으로써, 성령은 우리들의 영과 함께,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 전절에 말한 바의 하나님의 아들과 다르다.

 

아들은 법률상의 아들이다. 자녀는 총애 되는 아들이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아들로서 법률적으로 하나님께 양육될 뿐 아니라, 자녀로서 그의 거룩한 가족에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저하는 일 없이 그를 아바 아버지여 하고 부르는 것이다.

 

 

(17 ‘만약 자녀라면 또 후사일 것이다. 하나님의 후사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이다’)

 

자녀라면 또 후사일 것이다’ -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 후사 아닐 수 없다. 사랑은 이름과 함께 실을 준다. 권리와 함께 권력을 부여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되어 그 후사(상속자) 못되는 일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후사’ - 어떠한 후사인가? 하나님의 후사이다. 또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이다.

 

대제국의 제왕의 후사보다 낫고, 그 황태자와 함께 후사됨 보다 낫다.

 

명예의 극, 영광의 극, 복지 무엇이, 이보다 나을 것 있으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천국을 이어 받는 일, 이는 비천한 우리에게 부여된 권리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받은 이 절대의 권능을 지각하는가?

그렇다면 어찌 세상의 왕공 귀족을 부러워 하랴!

 

우리들은 왕의 아들이다’.

옳다, 실로 왕의 아들이라고 칭해야 할 것은 우리 외에 없는 것이다.

 

 

(17 ‘우리가 만약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그와 함께 영광도 받을 것이다’)

 

만약’ - eiper 9절 주해 참조.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에 의해 우리들에게 이 권리가 부여 되었는지를 아는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음에 의해서이다. 그와 함께 세상에 박해됨에 의해서이다.

그리스도는 사람에게 고난받고 하나님께 영접되었다.

 

우리들도 또한 하나님께 영접되려고 하면 그리스도처럼, 사람에게 고난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박해는 천국 승계의 인증이다. 우리가 이 인증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천국의 문은 우리 앞에 열리지 않는다.

 

세상에 미움 받고 국인에게 타기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나눌 수가 없다.

 

 

* 내촌감삼의 로마서 8장 주석을 옮겨옴.

 

 

* (8:12-17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개정개역, 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