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거듭난 삶 2024. 8. 7. 00:05
728x90

 

내촌감삼의 로마서 제8장 주석 4

 

 

로마서 818-24

 

(18 ‘내가 생각하기는, 지금의 때의 고난은, 후에 우리에게 나타나려는 영광에 비교할 것이 못 된다.’)

 

생각하기는’ - 산정하건대. 고요히 계산하건대.

바울은 열심 때문에 그렇게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냉정으로서 그렇게 판정하는 것이다.

 

지금의 때의 고난은’ - 현재의 고난은 많다. 하지만 이는 후에 나타나려는 영광에 비할 것 아니다. 영광의 지대함은, 고난을 망각케 하기에 족하다.

지금은 탄식하며 슬퍼한다. 하지만도 후에 웃으면서 즐길 것이다.

 

지금은 벗(친구)없고, 홀로 지상에서 해맨다.

하지만 후에 영구한 주거를 얻어 성도와 함께(사귀어) 어울릴 것이다.

 

지금의 고통은 겨울의 눈 같다. 봄이 오는 것과 함께 우리는 꽃의 유단 위에 앉을 것이다.

지금의 박해는 후의 환영의 전조이다.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여, 내 마음, 내 속에 가슴 설렌다.

유명한 죤 칼빈은 이 성구를 입속말 하면서 죽었다.

 

 

(19 ‘대저 수조물의 간절한 희망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대저’ - 영광은 후에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다(18).

 

우리는 이것을 영의 묵시에 의해 안다. 또 천연의 나타나 보임에 의해 안다.

 

수조물’ - 무성격의 천연물이다. 산천, 목석, 곤충, 금수 등을 말한다.

영성을 가진 인류를 제외한 다른 천연물 총체를 말함이다.

 

간절한 희망은’ - 무감각한 듯이 보이는 천연물도 인류의 오늘의 비경에 대해 깊은 동정을 표하는 것이다. 그들도 역시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으로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학수고대함이다(간절한 희망으로 역된 apokaradokia의 원의는 이것이다).

 

천연은 사람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 아니다. 사람과 운명을 함께하고 훼예를 함께 한다.

 

사람, 오예되면 천연도 오예 되고, 사람, 구속되면 천연도 구속된다.

조화의 기초가 놓일 때에는,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외쳤다’(38:7)고 한다.

 

또 하나님의 선민이 구속되는 때에는

 

산과 뫼는 소리 내어 앞에서 노래하고, 들에 있는 나무도 다 손을 칠 것이다’(이사야서 55:12)라고 있다.

 

이는 시가(詩歌)적으로만 그럴 것 아니다. 인류와 천연과의 사이에 있는 가장 친밀한 관계를 아는 자는, 이자 사이에 이 동정 동감이 있음을 듣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람은 그 죄로써 등류를 욕되게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천사가 인류의 구원을 대망하듯, 천연도 역시 이것을 대망한다고.

 

깊도다, 이 말씀이야 말로. ‘희망은 기다린다는 것은 히브리적 어법이다.

희망의 절절함을 말한다.

 

 

(20 ‘대저 수조물은 공허에 붙여졌기(종속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다. 이것을 붙이신 자에 의해서이다. - 희망을 가지고’)

 

대저’ - 천연물은 인류가 구원되기를 기다리고 있다(19).

 

그 까닭은 무엇인가 하면,

 

공허에 붙여짐’ - 존재의 목적을 그르침. 도로되게 함.

인류의 타락의 결과로서, 천연도 또 그 수조의 목적을 잃게 되었다고.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 천연물 스스로 구하여 이 배경에 빠진 것 아니다.

 

천연은 그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완전한 발달을 성취하려 했다.

하지만 어떠한 것에 의해 방해되었다.

 

이것은 붙이신(종속케 하신)자에 의해서이다

 

스스로 원하여 공허에 종속케 된 것 아니다. 그렇게 명령된 것이다.

인류의 죄의 결과로서, 그 저주를 하나님께로 부터 입은 것이다.

 

만물은, 그 영인 사람과 운명을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희망을 가지고’ - 천연도 인류와 함께 공허에 붙여졌다.

 

그 존재의 목적이 헛것으로 되었다. 하지만 회복의 희망 없이 저주 된 것 아니다.

구원은 타락 당시부터 이에 약속되었다.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천연물이 저주 된 것도 역시 만물 부흥(사도행전 3:21)의 희망을 가지고서 였다.

 

(사도행전 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하나님은 영구히 그 수조물을 저주 않으신다. 저주해도 반드시 희망을 가지고서 하신다.

 

희망을 가지고서’ - 간단한 이 일구 중에 무한한 위자가 있다.

 

 

(21 ‘그것은 수조물도 패괴의 기반을 피하여(벗어나)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의 자유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저주받은 것은 희망을 가지고 저주 되었다(20).

 

그것은 수조물도 하나님의 자녀와 함께 구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패괴의 기반’ - 패괴로 끝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 마치 묶이어 공허에 붙여짐과 같다.

 

파괴, 공허, 타락, 모두 동일한 것을 말함이다.

 

즉 인류의 죄의 결과인 천연물에 미친 영향을 말함이다.

 

영광의 자유’ - 영광에 따르는 자유. 혹은 영광과 함께 오는 자유.

패괴의 기반을 벗어나(풀려) 완전한 발달을 이룩하는 자유.

천연물도 또한 인류의 구원됨과 동시에 구원될 것이다.

 

인류가 죄의 기반을 벗어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과, 이에 따르는 그 자유를 함께 받을 것이다. 천연이 천연답게 되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때이다.

 

산은 다시 구시의, 처녀림으로서 뒤덮이고, 강은 다시 그 경계를 넘는 일 없고, 독류는 전야를 침범치 않고, 금수(禽獸)는 사람을 무서워 않고, 만물이 모두 다 울타리 안에 편안히 살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영광을 받아 이 세상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로 되는 때에 이 일 있다고.

 

 

(22 ‘대저 우리는 모든 수조물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생함을 아는 것이다’)

 

대저’ - 천연물은 인류와 함께 영광의 자유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21).

 

대저 그것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와 함께 탄식하고 고생하며 자유를 바라고 있음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함께 탄식하고 함께 고생’ - 천연물상 모두 탄식(신음)하고. 또 인류와 함께 탄식(신음)하고. 또 인류와 함께 탄식(신음)하고

 

탄식’(신음)은 공허에 붙여진 것을 탄식함의 뜻이리라.

고생’(고통)은 해산의 고통으로서 신천지를 산출하렴의 고통일 것이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 인류의 타락과 동시에 저주되어서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연의 면에 비통의 상 있다. 그 하류에 피권의 모습 있다.

그 산야는 수풀이 벗겨져 빈자 나체의 상을 보인다.

금수 서로 먹고, 인축 서로 살해한다. 사람은 사람을 적으로 하고, 천연을 겁략한다.

 

귀를 지반에 대고서 들을 것인가, 신음 소리는 전지에 울려 하나님의 구원을 불러 구하는 듯하다.

천연은 소아갔다. 이에 죄책할 바 없다. 하지만 그 주인의 죄를 지고서 그와 함께 탄식하여 또 고통 한다.

 

 

(23 ‘뿐만 아니라, 성령의 처음 열매를 가진 우리들 자신도, 자기 속으로(안에) 탄식(신음)하며 아들로 되는 일, 즉 우리 몸이 구원되기를 대망한다’)

 

뿐만 아니라’ - 천연물이 탄식(신음)하며 고통할 분 아니라(22).

 

성령의 처음 맺은 열매를 가진 우리들 자신도’ - 성령의 첫 열매인 우리들 그리스도 신자도. 우리들은 성령의 첫 열매(이삭)이다. 후의 수확을 예표하는 자이다.

 

현세에 있어서, 후세에 있어서의 거룩하고도 큰 가족을 대표하는 자이다.

 

첫 열매’(첫 이삭)란 최초에 맺은 열매의 뜻이 아니다.

 

열매를 가진이란, ‘열매라는 것과 같다.

 

안에 성령의 열매를 가진 자는 그 열매로 된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의 질을 우리의 마음에 주시었다(고린도후서 1:12)는 것과 같다.

 

(고린도후서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천연도 탄식하고 우리들도 탄식한다.

 

아들로 되려고 신음(탄식)한다. ‘즉 우리의 몸이 구원되기를하나님의 아들 됨의 열매가 나타나기를 대망한다고.

 

그리스도의 경우에 있어서도, 다시 살아나심에 의해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 되심이 나타나셨다.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도, 부활체를 옷 입혀 분명히 우리들이 아들된 것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기 속으로 탄식’ - 우리들의 탄식은 밖의 천박한 탄식이 아니다.

 

()의 깊은 탄식이다. 또는, 천연은 사물로서 밖으로 탄식(신음)하고, 우리들은 마음으로서 안()으로 탄식(신음)한다.

 

 

(24 ‘대저 우리들은 희망으로 구원되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 그 누구가 눈으로 보는 것을 바라랴?’)

 

대저’ - 우리들은 구원되기를 대망한다(23).

 

그것은 우리들은 내세에 있어서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여 현세에 있어서 구원되었기 때문이다.

 

희망으로서 구원되었다’ - 신앙에 의해서와 같이, 희망에 의해서 구원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희망을 기초로 하여, 혹은 희망을 조건으로 하여서의 뜻이다.

희망적으로 구원되었다고 할지. 아직 사실적으로 구원된 것이 아니다.

구원의 약속을 받았을 뿐. 그러므로 그 목적물을 얻기 위해 대망하여 마지않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 희망은 눈에 달하지 않는 곳에 있다.

 

눈에 보일 때, 희망은 희망이 아니기에 이른다. 대망은 그리스도 신자의 특성이다.

 

그는 손으로 만든 것 아닌, 즉 육안으로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는 때문이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획득해야 할 보상이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가 대망함은 당연하다.

 

그것은 누가 눈으로 보는 것을 바라랴’ - 우리들도 역시 눈으로 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아직 사실로 되어 나타나지 않은 우리들의 구원을 대망하는 것이다.

즉 우리들의 몸이 구원되기를 대망하는 것이다.

 

 

* 내촌감삼의 로마서 8장 주석을 옮겨옴.

 

 

* (8:18-24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개정개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