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거듭난 삶 2024. 9. 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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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에 대한 의무 2

 

성 경: [13:2-7]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 논리는 매우 간단하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주셨다.

그러므로 그 권세를 거스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니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권세자들이 하나님의 선한 사자들로서

선과 악을 구분하여 상과 벌을 준다면 이 말은 수긍할 수 있는 말이 될 것이다.

 

(3-4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나 브루스(F.F. Bruce)가 제기한 질문처럼

만일 가이사가 자기 권세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영역을 주장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떠한 권력이나 위정자가 하나님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

가령 가이사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이 부여해준 권세의 범위를 넘어 하나님의 자리에서 경배받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경우 우리는,

즉 사람과 하나님이 대립되는 경우,

그리고 반드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선택해야 한다.

 

(4: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만약 그렇지 않고 이 본문이 시간과 공간, 조건을 초월하여 적용되는

불변의 원리라면 이것은 공의와 정의에 반()하는

각종 전제 정치체재와 독재체재를 정당화해주는 구실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혹자는 넓은 의미,

즉 하나님의 섭리의 면에서 본문을 이해하려 한다.

이들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바로'라고 하는 악한 왕도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세워졌던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높으신 뜻과 경륜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어떤 권력은 하나님의 정의에 합당하지 않으나

그것은 세상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질서의 한 부분을 이룬다는 것이다(Lenski).

 

반면 혹자는 본문을 사도들의 서신 전체 문맥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그럴 경우 어떠한 권력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세의 목적과

 

(3-4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범위 내에서만 복종을 요구할 수 있고

기독교인 역시 그러한 범위 안에서만 복종의 의무를 질 뿐,

정도를 벗어나 하나님께 돌려야 할 충성마저도 권력이 요구할 때는

저항할 수 있고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본다(Bruce).

 

어떠한 개인이나 국가가 정권이나 권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을 때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기대하는 바와 상관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세를 오용(誤用)하거나 남용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을 감안할 때 후자의 견해가,

권력에 대한 성도들의 태도를 바로 세우는데 타당한 견해라고 여겨진다.

 

한편 본문에서 언급하는 '심판'은 더 이상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명료하게 판단하기가 어렵다.

 

가령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받게 될 궁극적인 심판을 뜻하는지

아니면 지상의 권력에 의한 형벌을 의미하는지 분명치 않다.

 

그런데 3, 4절에 나타난 관원에 대한 언급과 '두려움의 동기'

후자의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고 본다.

 

일단 그것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간에

사람이 지상의 권력에 복종하지 않고 저항하면

그에 상응하는 법적제재 및 보복적인 조치가 뒤따르는 것이 상례이다.

 

실제 성도들 가운데는 바르지 않은 권력에 저항하여

목숨까지 잃은 경우도 많은데,

목숨을 잃은 것은 말하자면 권력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인간의 심판을 받는 것이 낫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는 없다는

구약의 선지자적 정신의 구현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4:19;5:29)

 

사도들의 신앙정신과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10:28)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신앙의 정조를 지키다가 당하는 숭고한 믿음의 결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권세를 거스려 '심판'을 자취하는 자는

정당한 신앙적 이유를 떠나서 권세자들에 대한 그릇된 이해 속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반항하여 불순종하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13: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관원들은 - 이 복수형은 특정한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통치 세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통치자들'로 표현되는 대상은 권력의 상층부

즉 최고 통지권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로마의 관리들을 다 포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표현 속에서 바울은 아마 자기가 겪었던

로마의 관리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19:35-41 서기장이 무리를 안돈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것이 있거든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21:31-40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4)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35)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포행을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36)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37)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22:24-30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

25)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29)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30)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24: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나이다).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통치자들은

악을 행하는 자에게나 두려운 존재이지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1, 2절에 나오는 권세의 개념이 어떤 전제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1-2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즉 권세는 선을 보장하고 악을 규제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이다.

만약 어떤 권세가 이 전제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선을 담보하거나

악을 제어하는 기능에서 이탈하여 애초의 전제에 반()하는 방식으로

권세가 행사될 때 그 권세는 권세의 수여자(授與者)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그런데 바울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아마 이것은 바울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는 로마법에 의한 통치

또는 법에 의한 질서 유지가 여러 차례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 바울은 복수를 사용하지 않고

''라는 2인칭 대표단수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복수를 써서 표현하는 것보다

강한 인상을 주는 표현법이라고 할 수 있다.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는 표현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대단히 강한 인상을 남기는 수사적 표현이다.

 

사실 권력은 사람들에게 두려운 대상이다.

왜냐하면 권력은 막강한 힘으로 사람의 정신과 육체에 타격을 주거나

제한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을 행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다.

여기서의 ''은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악, 즉 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것은 통치자들의 권한이,

궁극적인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허락된 권력과 그 권력의 효력이 미치는 영역 내에서의

질서를 깨뜨리는 행위 즉 실정법(實定法)을 위반하는

행위만을 처벌하는 것으로 한정됨을 의미한다.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 본문에서 '그에게'

물론 통치자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칭찬을 받는다'는 말은 어떤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여기에는 보상의 개념이 없으며

단지 인정을 받는다는 정도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여기서 선을 행해야 하는 동기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세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상당히 현실적인 동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