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랴의 찬가 3
성 경: [눅 1:75-80]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눅 1: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 종신토록 - 이 문구는 '우리의 모든 날들' 이라는 의미가 된다. 즉 지상에서의 우리의 평생을 의미한다.
▶ 주의 앞에서 - 이 문구의 의미는 '그의 목전에서' 또는 '그의 면전에서'가 된다.
이는 제의(祭儀)적인 용어로서 이 어구에 담긴 의미 가운데는 제사장적 섬김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이 용어가 본 구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사람들과 관련하여 사용된 것은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의 만인 제사장직에 대한 암시를 엿볼 수 있다(Lenski).
▶ 성결과 의 - 이 단어는 주로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드러내는 경건성과 관련하여 쓰이며 신약성경에서 '거룩함과 의로움 안에서'라는 표현으로 2회 나타난다.
본 구절에서 이 단어는 구원의 시대에 사는 신자들의 삶을 묘사하며, 엡 4:24에서는 중생으로 얻어진 새로운 본성을 가리킨다.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의'에 해당하는 '디카이오쉬네'는 70인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지킨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사 5: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랍비들에게 있어서는 특히 가장 많은 공로가 쌓이게 되는 행위들 중 하나로서의 자선행위를 의미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주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의로운 행위를 지칭하는데 사용된다.
하나님의 언약 성취는 이스라엘에게 새롭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즉 소극적으로는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며, 적극적으로는 '성결과 의'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시 5:8-9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눅 1: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 - '지극히 높으신 이'는 하나님의 또 다른 명칭 중의 하나이다.
(32절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그리고 '선지자' 침례 요한은 두 가지 면에서 선지자보다 큰 자, 혹은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다.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 시대적인 위치의 면에서, 그는 신약과 구약의 가교적(架橋的) 위치에 있었다.
그는 예수와 동시대에 살면서 친히 예수의 권능을 목격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선지자였다. 즉 그는 복음의 여명이 동터오는 것을 목격하였던 것이다.
(2) 사역의 내용면에서, 그는 메시야의 선구자였다는 점에서 위대한 선지자였다.
구약에 탁월한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메시야의 앞길을 평탄케 하는 사역을 직접 수행한 선지자는 침례 요한뿐이었다.
한편, 예수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로서 표현이 되고 요한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로서 표현이 되는 것은 현격한 신분적 차이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서로가 중요하고도 내밀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을 나타낸다.
▶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 이 말씀은 사 40:3;말 3:1; 4:5 말씀의 성취이며,
(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이 구약 말씀과 비교할 때, 누가는 침례 요한을 엘리야와 연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침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을 가진 자로서,
(1: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회개를 선포함으로써 가난하고 상한 심령을 주 앞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은 선구자였던 것이다.
(3:3-6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마 3:1-6 그 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니).
[눅 1: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 주의 백성 - 17절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 54절 '그 종 이스라엘'
▶ 죄 사함 - 성경상에서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큰 소망과 위로를 주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곧 '죄 사함'이라는 말이다. 구약의 모든 희생 제사는 예수의 대속 죽으심을 예표한 것이므로 반복적으로 드려져야 했다.
그러나 흠없고 완전한 희생 양이신 예수는 단 한 번의 희생을 통해 영원하고도 완전한 죄 사함을 이루셨다.
(히 9:25-26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또한 하나님은 아무리 큰 죄라 할지라도 용서하시고,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한번 용서한 죄는 기억치도 않으심으로써,
(사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죄에 대한 앙금이나 미련을 갖지 않으시며 그 흔적을 조금도 남기시지 않으시며, 완전하고도 무한한 죄 사함을 이루신다(Lenski).
(시 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미 7: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 구원을 알게 하리니 - 구원을 알기 위한 전제조건은 선행되어 나온 '죄 사함'이다.
즉 회개와 함께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이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정치적 개념을 넘어선 보다 깊은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애당초 인간은 하나님과의 신령한 인격적 교제를 누리며 참 생명을 누리도록 피조 되었으나 인간의 죄악 된 행위가 둘 사이를 갈라놓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고 손을 내밀 때, 하나님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가운데 죄악이 있기 때문이다.
(사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의 행위 가운데는 철저한 회개와, 죄 사함의 요청이 포함되어있는 것이다.
요한은 후에 그 '죄 사함'을 위한 회개의 침례를 베풀게 된다.
(3: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눅 1:78-79]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
캄캄한 어둠을 물리치고 동녘에서 떠오르는 태양에 관한 이미지는 이미 말 4:2에 나오며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사 9:2; 60:1에는 '빛'으로 그리고 민 24:17에는 야곱에게서 나온 한 '별'로 등장한다.
이는 모두 흑암과 죽음을 몰아내고 의와 진리와 사랑으로 충만한 세계를 도래케 할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다.
▶ 임하여 - 이 단어는 68절에서는 '돌아보사'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메시야의 도래 그 자체가 곧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를 뜻함을 암시한다.
▶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 - 이 구절은 사 9:2을 인용하고 있다.
(사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마 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는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방인들을 제외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비참한 인생들에게 진리와 생명의 빛을 비추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 '평강'에는
(1) 전쟁이나 투쟁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평화,
(14: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행 12: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 하나님과 인간간의 바른 관계의 회복을 뜻하는
화목,
(고후 5: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3) 심령의 평화, 등을 의미한다.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이 평강은 신. 구약을 통털어
풍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신학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본 구절에서 메시야와 평강의 길은 밀접한 관계를 드러내 보인다.
사 9:6에서 메시야는 평강의 왕으로서 예언된 바 있으며,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도 바울도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설명하였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또한 예수께서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영속적이고도 완전한 평안을 성도들에게 끼치노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인도하시리로다 - 원형 '카튜뒤노'는
'곧게 하다', '똑바로 하다', '바로 안내하다' 등의 듯을 나타낸다.
즉 왜곡되고 잘못된 길을 바로 잡아 똑바로 가게 하는 것이다.
밝은 빛 가운데서 길을 잘못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평강의 길은 주께서 가시는 길이며 그분께서 예비하신 길이다.
구원의 빛이 길을 잘 못 가지 않도록
우리의 앞을 비추어 평강의 길로 나가게 하신다.
한편 이렇게 하여 사가랴의 찬가는 끝을 맺는다.
사가랴 찬가는
첫말이 '찬송하리로다'로서 시작되어 '평강'이라는 말로 그 끝을 맺는다.
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찬송'과 '평강'으로 특징지워지는 것을 반영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을 드림으로써
그분과 인격적 교류를 갖고 그의 구원의 계획 속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평강을 얻게 된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찬송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으로 주시는 것은 평강이다.
[눅 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 자라며 - 신체적 성장을 뜻하는 말이다.
요한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쳤음을 나타낸다.
▶ 심령이 강하여지며 - 요한은 신체적 성장과 아울러
영적으로도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이 성장 과정은 예수의 성장 과정과 흡사하고,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어린 사무엘이 성장할 때와도 유사하다.
(삼상 2: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모든 일이 그렇듯이
어린아이의 자라나는 것 역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것이다.
▶ 빈 들에 있으니라 - 혹자는 요한이 사해(死海) 부근의
유대 광야 어느 곳에 있었던 에세네파(Essenes)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나 그것을 입증할 만한
별다른 자료가 발견되고 있지는 않다.
요한은 에세네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요한은 곧 오실 메시야의 도래를 전파하며
회개의 침례를 베풀었지만 에세네파는 그리스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행동했다.
또한 요한은 회개의 침례를 베풀면서 민족적 구원을 시도했지만
에세네파 사람들은 사회를 외면하고 고립된 생활을 지향했다.
아울러 요한이 민족적,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정의를 집행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으나
에세네인들은 개인 구원의 수단과 방법에 집착해
철저한 금욕적 생활과 고립된 생활을 지향했다.
또한, 쿰란(Qumran) 공동체와 침례 요한을 연결시키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와 관련이 있다는 아무런 증거는 없으며
또한 요한이 머물렀던 지역이 어느 곳인지도 정확히 확인되고 있지 않다.
여하튼 그는 광야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사역을 준비했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보면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광야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준비했던 것을 볼 수 있다(모세, 엘리야 등).
요한은 광야에서 외롭고 고독한 생활을 보낸 후에
회개의 복음을 외치며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전파한다. (Geldenhuys, Liefeld).
(3: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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